이선희 “설레지 않으면 살아있지 않게 돼요” -1
<div class="blockquote">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는 1980년대를 대표하던 주말 버라이어티 쇼다. 매주 그 당시 가장 인기 있는 가수들이 나와 자신의 히트곡을 불렀고, 서로의 노래를 바꿔 불렀으며, 때로는 영화나 드라마를 패러디한 콩트를 연기하기도 했다. 그 때 대중 가수란 TV 쇼의 중심이었고, 동시에 노래를 부르는 대신 방송사가 요구하는 다양한 쇼를 선보일 수 있는 존재였다. 30여년이 지난 2011년의 주말, 가수들은 여전히 주말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한다. 하지만 가수들은 더 이상 함께 노래하거나 웃으며 서로의 노래를 바꿔 부르지 못한다. 대신 그들은 MBC <우리들의 일밤>의 ‘나는 가수다’에서, 또는 KBS <자유선언 토요일>의 ‘불후의 명곡’에서 순위를 놓고 경쟁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경쟁에 대한 부담감은 커지고, 인터넷과 언론에는 ‘노래’와 ‘가수’에 대한 수많은 논쟁이 이어진다. 그래서, 가수 생활 27년째인 이선희가 자신의 공연에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의 무대를 복원한 것은 그저 추억의 회고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부터 ‘나는 가수다’의 시대까지 이선희는 14장의 정규 앨범을 냈고, 여전히 대중 앞에서 노래하고 있다. 그 세월동안 이선희는 어떻게 자신의 노래와 음악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지난 2월 3일 미국 카네기 홀, 5월 21일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지나 7월 2일부터 전국투어를 준비하는, 그래서 ‘레전드’나 ‘신’이라는 말 보다는 문자 그대로 ‘대중 가수’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이선희를 만났다.
얼마 안 되는 기간 동안 미국 카네기 홀과 한국의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하셨어요. 양국의 대표적인 공연장에서 공연을 한 기분은 어떤가요? 이선희: 사실 공연장이 어디든 상관없어요. 오래 노래 해왔으니까. 전에는 장소에 따른 임팩트가 강했는데 어느 순간 그게 사라지고, 소규모 공연장이라도 한결 같아요. 그런데 끝나고 난 다음의 임팩트가 달랐어요. <H3>“관객과 나의 교감만큼이나 또 중요한 것이 있다”</H3>
어떤 점에서요? 이선희: 여운이 더 남아요. 카네기홀도 설 때는 담담했어요. 그냥 담담하게 잘 해야겠다, 그렇다고 너무 막 잘 해야겠다는 욕심이 앞서서 망치고 싶지도 않고. 그랬는데 아무래도 그 날 공연을 보러 오신 분들이 내 노래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멀리서부터 차를 타고 오신 분들도 많았고. 비행기로 오셔서 그 전날 호텔에서 자고 또 공연장에 오시기도 하고. 그런 분들이 공연을 보고 난 다음에 내게 보내오신 것들을 경험했잖아요. 그리고 공연장이 주는 소리가 잘 나왔다던가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공연이 끝난 다음까지 계속 여운이 남아요. 세종문화회관도 마찬가지고요. 미국 공연에서 교포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이선희: 우선 라디오 코리아에 계신 분들이 굉장히 많이 애써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끊임없이 공연 소식을 알려주셨는데, 공연 당시에는 압박감 같은 게 너무 커서 그 분들에 대한 감사를 전할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이 인터뷰를 통해 다시 감사드리고 싶어요. (웃음) 그리고 관객 분들의 경우엔,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잖아요. 특히 요즘은 더 풍족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더 새로운 걸 창조하려고 하고, 그런 것들이 중요한 가치가 되니까 문화도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지금 문화를 뒤쫓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함을 갖기도 하고. 그런 것들이, 공연에서 자연스럽게 풀린 거 같아요. 내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 분들 마음속에 있는 감정이니까. 특히 타향이라 더 그런 걸 느끼신 것 같아요. 이번 공연은 특히 2부에서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를 재현했잖아요. 그 시절의 것들을 복원한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이선희: 어떤 의도를 갖고 기획한 건 아니에요. 난 그냥 느끼고 표현하는 사람이고, 그걸 어떻게 포장하고 관객들에게 갈 것인가는 잘 생각하지 못하는데, 이런 부분을 매니저가 굉장히 채워줘요. 나를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에게서 보이는 것들을 기획을 통해 굉장히 잘 뽑아내요. 그런데 매니저나 내가 늘 잃어버리지 않는 정서가 올드하지 않은 거고, 그게 내 장점이래요. 그래서 “언니는 늘 그냥 하던 대로 취하고 흠뻑 빠져라. 기획은 우리가 하겠다”고 해서 나온 게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였어요. 본인도 그 때 그 프로그램을 즐거워했고, 내가 다른 가수들과 노래를 바꿔 부르기도 했던 추억들을 느껴 보고 싶다고 했으니까. 그런 느낌을 무대에 옮겼는데, 정말 관객 분들이 좋아하더라구요. (웃음) 그런데 2부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사운드는 일관성이 있었어요. 그건 아무래도 밴드 라이브라는 공통점 때문일 텐데요. 앨범에 실리는 곡들도 라이브 가능한 곡들이 대부분이구요. 최근 앨범에 실린 베스트 앨범도 라이브 공연으로 채운 것도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던 거 같았어요. 이선희: 맞아요. 공연에서 밴드 라이브라는 점은 건드리지 않기도 하구요. 하지만 어떤 공연은 파격도 있었고, 무엇인가 공연에서 하고 싶다면 거침없이 해요. 그걸 두려워하진 않아요. 평가는 늘 내려지는 거고, 평가가 좋지 않다면 나한테 뭔가 부족한 거니까 부족한 걸 다시 찾으면 되는 거고. 고여 있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니까. 이번 공연은.... 음, 뭔가 깨달았다고 보시면 돼요. 어떤 깨달음이죠?이선희: 연주자를 늘 사랑하고, 그들이 내는 소리자체를 느끼고 좋아했지만, 전에는 그게 마음속에만 있었어요. 끝나고 뒤풀이를 잘 해본 적이 없어요. (웃음) 성격상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냥 내 마음을 알겠지 뭐, 이런 거였어요. 그런데 아 이게 표현하지 않으면, 느껴지는 건 굉장히 적은 거라는 걸 연습하면서 알았어요. 나못지 않게 연주하는 분들도 감정이 굉장히 풍부한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았구요. 그래서 내 것을 표현하는 것만 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가진 걸 더 뽑아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나이가 어리든 많든 연주경험이 풍부하든 그렇지 않든 그 에너지를 펼치게 하는 사람이 바로 나였구나. 무대에서 관객과 내가 서로 교감을 갖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시하고 난 그게 다인 줄 알았는데, 그것만큼 같이 연주하는 분들도 중요하다는 걸 알아서, 그런 부분에 충실했어요. <H3>“나이가 들면서 나도 모르게 생기는 것들이 있어요”</H3>
뮤지션들과 대화를 많이 나눈 공연이었겠군요. 이선희: 사실 성격상 많은 대화는 하지 않았어요. 연습 끝나고서 스스로 막 감동이 오는 날은 “이 노래는 오늘 제대로 부른 것 같아”라는 문자를 보낸다든가, 아니면 “오늘은 정말 니 피아노 소리 때문에 내가 너무 아팠어. 니가 나를 아프게 했어” 이런다든가. (웃음) 그런 느낌들을 서로 나눴던 것들이 다행스럽게 공연장에서 그대로 나왔어요. 그래서였는지 공연의 사운드가 인상적이었어요. 가수의 목소리가 너무 앞으로 나오지도 않고, 다른 사운드들이 뭉치거나 뒤로 물러나지도 않고. 각각의 소리가 공간을 갖고 숨을 쉬는 게 좋았어요. 보컬리스트로서 자기 목소리를 더 내세우면서 밸런스가 무너질 수도 있었을 텐데. 이선희: 사운드 잡는데 시간적인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카네기홀 공연은 정말 한 10분 쉬었나? 오전 10시에 공연장에 도착해서 공연 시간 직전까지 사운드를 잡고, 관객 들어오는 시간에 메이크업을 했으니까 공연을 두 번 했다고 보시면 돼요. 세종문화회관은 익숙했던 곳이라 그 정도는 아니었구요. 그리고 나머지는 연주하는 분들과 내가 얼마나 서로를 느낄 수 있나, 나만 취해서 느끼는 게 아니라 그분들도 취할 수 있느냐를 생각했어요. 소리와 관련해서, 지난 14집 앨범은 전부 라이브 가능한 밴드 형식의 사운드였어요. 그런데 장르는 국악적인 면부터 타이거 JK가 피처링한 ‘You too’까지 다양해요. 하지만 장르적인 특성을 부각하진 않구요. 한 가수의 스타일 안에서 장르적인 느낌을 조금씩 내는 선을 지킨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이게 뮤지션의 음악관인건가 싶었어요. 이선희: 그렇게 되길 희망하면서 앨범을 냈고, 이런 말 들으면 그게 잘 전달이 된 것 같아서 굉장히 기뻐요. 시간이 주는 것들이 있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나도 모르게 생기는, 내가 그때 정말 옳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그 때 생각하지 못한 다른 게 있었구나 싶은 것들. 다 감정을 뽑아내는 거 말고도 그걸 삭히는 게 또 다른 파괴력을 가진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고, 감춰야 될 때 감추는 거, 덤덤해질 줄 아는 거. 그런 것들이 폭발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니까 지금은 그대로 표현하는 거예요. 그래서 감정적으로 더 절제한 앨범이란 생각도 들어요. 더 뜨거울 수도 있었는데, 한 번씩 절제하는 것 같았거든요. 이선희: 무대에 오를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무대에 오르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 때 그렇게 말해요. 설레요. 설레지 않으면 살아있지 않게 돼요. 그런데 설렘만 가지면 풋사랑을 하는 것처럼 어설퍼요. 그리고 자신감이 있어야 되는데 자신감만 있으면 뽐내다 내려와요. 그런 것들이 다 복합적으로 있어야 해요. 두려움도 있어야 노래를 할 때마다 그 주저주저하는 마음에서 헤어지기 싫고, 그 두려움 때문에 더 소중하게 내놓는 것들이 생겨요. 원래 목소리를 더 거칠게 낸다든가, 더 진하게 낸다든가 하는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이선희: 앨범에서 그런 걸 안하진 않아요. 원래 록을 했으니까, 록을 하고 싶은 그 욕구도 꾸준히 있고. 공연에서 그런 노래를 하기도 해요. 전에 앨범에 안 실린 노래가 있었는데, 그 노래는 그냥 맑은 음색으로 불러서는 절대로 안되겠다 싶어서 되게 낮은 톤으로 읊조리듯이 불렀어요. 그런데 노래는 자신이 가진 이미지와 곡이 어울려야 하잖아요. 하고 싶은 것을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라는 거죠. 대중가수니까. 그래서 음반을 낼 때는 달라요. 귀가 얇아서 (웃음) 매니저 말을 많이 듣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난 다음 매니저가 자기 생각을 말하면 가차 없이 그 말에 따라요. “그래, 그건 내가 부족했던 거구나” 하고 다 엎어버려요. 그러기 어려울 텐데요. (웃음) 이선희: 내 장점이에요. 그래서 소통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 내가 가진 것들에 취해있었다면 발전할 수 없을 거예요. 아니다. 발전? 그건 모르겠고 아무튼 지금의 나는 아닐 거예요.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10 아시아 글. 강명석 기자 two@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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