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이티’(1982)는 대규모 흥행작이라는 타이틀로만은 설명이 부족한 영화다. 할리우드 배우 출신의 강성 대통령 지배 하의 할리우드는 구 소련의 붉은 군대를 상징화한 사악하고 흉측한 외모의 외계인들이 등장하는 SF 영화들을 대거 쏟아냈다. 지구의 안위를 위험에 빠뜨리는 외계인 영화들을 통해서 할리우드는 ‘팍스 아메리카나’ 정신을 암암리에 전 세계에 유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티’는 조금 달랐다. 왜소한 체구에 인형 같은 얼굴의 이티는 지구를 위험에 빠뜨리기는커녕, 식물 조사를 위해 지구에 온 지적인 식물학자였으며, 편모 슬하의 엘리어트와 눈물 겨운 우정을 나눈다. 처단되어야 할 존재가 아닌, 공존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외계인의 모습을 부각시킨 ‘이티’는 (다소 과장해서 말하면) 미국과 구 소련 사이의 얼음이 녹는 시발점 역할을 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주 개봉된 J.J. 에이브람스 감독(‘로스트’ ‘클로버필드’ 제작)의 ‘슈퍼 에이트 Super 8’는 ‘이티’의 클라이맥스인 이티와 엘리엇의 자전거 비행 장면을 형상화한 스티븐 스필버그 소유의 영화사 앰블린 로고에서 시작된다. 내용도 ‘이티’와 상당히 닮아있다. 1979년 미국 오하이오 주의 소도시인 릴리안, 6명의 아이들이 ‘슈퍼 8’ 카메라로 괴물 영화를 찍고 있다. 기차 전복 사고로 밖으로 탈출한 외계인들은 전자 제품과 강아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납치하고 마을을 패닉 상태에 빠뜨린다. 대규모 병력의 군대는 마을 소개령을 선언하고, 아이들은 괴물에게 납치된 소녀를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의 마을로 숨어든다.“슈퍼 에이트’에서는 112분 러닝타임 내내 다양한 영화들이 ‘데자뷔’처럼 스쳐간다. ‘이티’에서 출발한 ‘슈퍼 에이트’는 ‘미지와의 조우’나 ’구니스’, ‘피라미드의 공포’ 등 앰블린 스튜디오의 70~80년대 주요 어드벤처 영화들의 요소들을 짜맞춘다. 또한 매카시즘의 광풍이 지배하던 1950년대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냉전 SF 영화들의 요소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에일리언’ ‘고질라’에 더해 심지어 봉준호 감독의 ‘괴물’(J.J. 에이브람스는 자신이 봉준호의 열렬한 팬임을 밝힌 바 있다) 등 괴수 영화의 느낌도 분명하다. 시종일관 흔들리는 조악한 6mm 디지털 화면으로 지구 멸망의 엄청난 강도를 최대치로 표현했던 ‘클로버필드’의 제작자 J.J. 에이브람스는 1980년대 SF 클래식 재료를 자신의 장기인 속도감 있는 편집과 특수 효과 양념으로 ‘업데이트’한다.결론이다. ‘슈퍼 에이트’는 J.J. 에이브람스 감독의 재능과 관심의 영역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웰 메이드’ 상업 영화다. 그는 상업 영화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흥미 요소들을 영화 속에 비벼 넣었다. 이상하다. 매 화면은 ‘빵빵' 터지는데, 전체적인 영화 구성은 나른하다. 마치 오래된 재료로 싼 최고급 모듬 김밥을 먹은 느낌이랄까? 태상준 기자 birdcag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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