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어! 지진 또 난 거 아니야 이거?" 지난 11일 오후, 일본 도쿄 신주쿠의 한 카페가 시끄러워졌다. 여기저기서 '지진이 또 났다'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사람들의 손엔 스마트폰이 쥐어져 있었다. 갑자기 '웅ㅡ'하고 진동이 울리기 시작한 스마트폰은 계속해서 진동과 함께 지진경보를 화면에 띄웠다. 스마트폰 화면엔 지진이 난 지역과 시간, 지진 강도가 함께 떠 있었다. 3.11 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100일, 일본엔 대지진이라는 위기가 만들어낸 새로운 삶의 방식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날 카페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 이민주(31)씨는 "3.11 대지진이 일어난 뒤 지진 소식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지진경보 어플리케이션'이 유행하고 있다"며 "하루에 수십 번 알람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어플리케이션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된다고 전한 이씨는 "대지진이라는 위기가 이런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도쿄 신주쿠 지하철역 개찰구 앞엔 '도쿄 현재 전력 사용 현황'을 보여주는 LCD 화면이 설치돼 있었다. 이 화면엔 하루에 공급 가능한 전력 총량과 현재까지 이 가운데 얼마를 사용했는지가 표시된다.
일본 대지진은 전력 공급에서도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냈다. 도쿄전력은 3.11 대지진 이후 정부 방침에 따라 전력을 제한 공급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의외로 적다. 지하철역 개찰구 앞에 설치된 LCD 텔레비전 화면이 실시간으로 도쿄 현재 전력 사용 현황을 보여주고 있는 덕분이다. 도쿄전력은 이 화면에 그날의 전력 사용량과 총 사용량을 표시해 보여준다. 하루에 공급 가능한 전력 총량과 현재까지 이 가운데 얼마를 사용했는지를 보여줘 시민들이 전력을 아끼는 데 동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도쿄 시민인 스즈키 나시히로(36)는 "전력 공급이 제한돼 지하철에서 에어컨이 약하게 나올 때가 있는 등 불편을 겪기도 한다"면서도 "그래도 전력 사용량 총량을 이렇게 눈으로 확인하고 나면 전력 공급을 제한하는 정부 방침을 납득하게 된다"고 했다. 전력을 아끼려는 노력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발휘된 곳은 지하철뿐만이 아니었다. 신주쿠 거리의 상점들에선 '절전 마케팅'이 한창이었다. '50% 절전 가능한 TV'.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대부분의 전자상가 입구엔 절전 관련 홍보 문구가 크게 붙어 있었다. '빅카메라(Big Camera)'라는 상점으로 들어서자 일렬로 늘어선 선풍이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50% 절전 가능한 TV'.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일본 신주쿠 거리에 있는 전자상가엔 절전 관련 홍보 문구들이 크게 붙어 있었다. 3.11 이후 일본에선 절전 냉장고와 절전 세탁기 등 절전 제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빅카메라 점원인 나카야마 히로시(32)는 "3.11 대지진 이후 전력을 아끼자는 분위기가 형성돼 고객들이 당연하게 절전상품에 먼저 관심을 갖는다"며 "요즘 빅카메라에서 파는 전기제품 대부분이 절전상품"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3.11 이후 절전상품 판매율이 약 30% 정도 늘었다"며 "날씨가 습하고 더워 에어컨이 상용화돼 있는 일본에서 대표적인 절전상품인 선풍기가 재등장한 것이 3.11 대지진 일어난 뒤 가장 달라진 점"이라고 덧붙였다. 이 상점에선 같은 양의 빨래를 해도 물의 양이 더 적게 들고 통이 회전하는 수도 적어 일반 세탁기보다 약 20% 가량 전기 절약이 가능한 절전 세탁기, 문을 열었다 닫을 때 일시적으로 냉기가 많이 나오도록 해 온도를 유지하는 방법으로 최대 30%의 전력량을 아낄 수 있는 절전 냉장고도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 상점은 또 지하1층 매장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가전제품을 절전상품으로 바꾸면 얼마나 이익이 되는지 등을 알려주는 '절전상담카운터'제도도 운영하고 있었다. 대지진이 남긴 열악한 상황이 도쿄시민들로 하여금 전기를 아껴 쓰게 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이것이 가전제품 상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온 것이다.
전절을 위해 아예 가동을 멈춘 신주쿠 거리의 한 자판기.
신주쿠 거리에 있는 자판기, 카센터에서도 전력을 아끼려는 창의적인 노력이 엿보였다. 거리를 걸으며 마주치는 자판기 3대 가운데 1대는 불이 아예 꺼져있었는데, 이 역시 절전을 하려는 정부 정책에 시민들이 협조를 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3.11 대지진 이후 신주쿠 거리에 설치된 자판기의 약 30%가 가동을 멈췄다. 이 지역에 있는 한 카센터는 전력 소모를 최소화하려 가장 손님이 많은 월요일과 화요일을 휴일로 정해 영업을 쉬고 있었다. 도쿄=김효진 기자 hjn2529@<ⓒ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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