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K리그 승강제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바 있지만 승강제는 근본적으로 고통과 환희가 교차하는 제도다. ‘희비가 엇갈리다’라는 표현이 이보다 더 적합할 수 없는 상황이 매 시즌 펼쳐진다. 성적이 바닥을 친 팀들에겐 언제 헤어 나올지 알 수 없는 하부 리그의 늪이 기다리고 있는 반면, 하부 리그 투쟁에서 승리한 팀들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상부 리그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가슴이 설레게 된다.2010/11시즌 유럽 유수의 리그들에서도 고통의 늪으로 떨어진 클럽들이 변함없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에는 해당 팀 서포터들을 넘어 다른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아쉬움과 향수를 불러일으킬 법한 친숙한 이름들이 있다. 스페인의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이하 데포르티보), 이탈리아의 삼프도리아, 프랑스의 모나코, 그리고 독일의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이하 프랑크푸르트) 등이 그러한 강등 클럽의 대표격. 이제 이들은 이미 2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잉글랜드의 리즈 유나이티드, 노팅엄 포리스트 등과 같은 길을 걷게 됐다.약 10년 전의 데포르티보는 ‘세계 최고의 팀들 중 하나’라 불려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만큼 훌륭한 팀이었다. 90년대 초중반 요한 크라이프의 ‘드림팀 바르셀로나’와 패권을 다투면서 ‘슈퍼 데포르’의 애칭을 얻었던 데포르티보는 마침내 2000년 사상 처음으로 스페인 리그 정상에 오르는 감격을 누렸다. 그 시절 데포르티보의 위력은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는데, 특히 2001/02시즌 1,2차 조별리그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널, 유벤투스를 모두 무너뜨리기도 했던 데포르티보였다. 또한 2003/04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AC밀란을 상대로 1차전 1-4 대패의 열세를 뒤집어버리는 역전극을 일궈냈던 사건은 축구가 계속되는 한 두고두고 기억될 장면이다.마우로 실바, 마누엘 파블로, 프란, 후안 카를로스 발레론, 자우미냐, 로이 마카이, 디에고 트리스탄 등이 데포르티보의 이러한 전성기를 대표하는 이름들. 하지만 근자의 데포르티보는 영광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스페인 리그 최악의 득점력을 지닌 팀이 되어 있었고, 이러한 그들의 약점을 감안할 때 어쩌면 강등은 얼마간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삼프도리아 또한 데포르티보 못지않게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클럽이다. 지안루카 비알리와 로베르토 만치니가 공격진을 구성하고 브라질의 전설 세레조가 중원에, 지안루카 팔리우카가 골문에 위치했던 시절, 삼프도리아는 유서 깊은 웸블리에서 크라이프의 ‘드림팀’과 유럽 최고의 자리를 다퉜다. 그 경기에서 만치니의 재치 있는 패스를 비알리가 골로 바꾸어놓기만 했다면 어쩌면 바르셀로나는 유럽 정상을 밟아보기 위해 십 수 년을 더 기다려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이후에도 삼프도리아는 감독 스벤 요란 에릭슨을 비롯해 엔리코 키에사, 루드 굴리트, 데이비드 플래트,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클라렌스 세도르프, 빈첸조 몬텔라, 아리엘 오르테가 등을 맞아들이기도 했다.데포르티보의 경우와는 달리 삼프도리아가 강등의 운명을 맞은 것은 파격적인 의미가 있다. 2009/10시즌 4위에 오르면서 실로 오랜만에 챔피언스리그 출전권까지 획득했던 삼프도리아가 불과 한 시즌 만에 이렇게 무너지리라 예상되지는 않았던 까닭이다. 하지만 삼프도리아는 정작 챔피언스리그 최종예선에서 베르더 브레멘을 맞아 추가 시간을 버티지 못함으로써 아깝게 32강 본선행에 실패했는데, 이는 그들의 불행의 서곡이었다. 그리고 시즌 중도에 팀의 첫째, 둘째 가는 선수들(안토니오 카사노, 지암파올로 파치니)을 모두 내주고 나서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박주영의 소속 클럽으로 우리 축구팬들의 관심을 받아온 모나코 또한 34년 만의 강등이라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2005년 3위를 차지한 것을 마지막으로 이후 계속 10위권 언저리에 위치하는 팀으로 내려앉으면서 다소간의 위험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모나코가 강등까지 당하리라 예상하기란 어려웠다. 외관상 전력이 모나코보다 열세인 것으로 보이는 클럽들도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리그를 일곱 차례나 제패했고 2003/04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던 일들은 이제는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한편 독일에서는 선수 차범근의 유럽 경력 전반부와 함께했던 프랑크푸르트가 강등의 아픔을 맛봤다. 물론 프랑크푸르트는 1996년 33년 만에 2부 리그로 떨어진 이후부터 2부와 1부를 오르락내리락했던 이력이 있어 그들의 강등은 그렇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차범근과 더불어 들어올린 1980년의 UEFA컵을 비롯해, 특히 1960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페렌치 푸스카스의 레알 마드리드와 유럽 정상에서 맞닥뜨리기도 했던(물론 이 전설적인 결승전의 승자는 무려 7골을 터뜨린 레알) 역사를 지닌 프랑크푸르트의 강등 또한 ‘격세지감’이라는 표현을 실감하게 한다.
한 준 희 (KBS 축구해설위원 / 아주대 겸임교수)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아시아경제 & 재밌는 뉴스, 즐거운 하루 "스포츠투데이(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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