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주=이지혜
사진. 전주=이진혁
양익준 감독(왼쪽), 부지영 감독.
<div class="blockquote">제 12회 전주국제영화제(이하 JIFF) 민병록 집행위원장은 두 사람의 만남을 “터프함과 섬세함의 부딪침”이라고 표현했다. 장편 데뷔작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로 자매라는 관계의 오묘한 순간들을 정교하게 포착해낸 부지영 감독과 역시 장편 데뷔작 <똥파리>로 그 누구보다 뜨거운 한 해를 보낸 양익준 감독. 이 두 사람이 JIFF의 단편영화 지원 프로젝트 숏숏숏 ‘애정만세’로 사랑에 대해 말한다. 물론 그렇다고 멋진 남녀의 그린 듯이 아름다운 로맨스는 절대 아니다. 부지영 감독은 <산정호수의 맛>의 순임(서주희)을 통해 “낭만적 사랑의 변방에 위치한” 이들의 척박한 현실을, 양익준 감독은 <미성년>을 통해 성인 남자와 여고생과의 하룻밤이 연애로 이어지기까지의 좌충우돌을 보여준다. 너무 달라 보여 더욱 흥미로운 조합인 이들과의 대화는 질문을 던질 새도 없이 합이 잘 맞아 떨어지는 수다로 이어졌다.양익준 감독의 [미성년](왼쪽)과 부지영 감독의 [산정호수의 맛].
아무래도 굉장한 관심을 모았던 전작 <똥파리> 이후 첫 작품이라 부담이 됐을 것 같다.양익준 감독: 이번 영화 제목이 <미성년>인데 영어 제목은 <미성숙>이다. 영화 자체가 성숙되지 않은 나의 결점들이 들어간 작품이다. <똥파리>는 첫 방이니까 모든 걸 쏟아 부었는데 이번 영화는 두 번째 방인지 1.5방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미 탈진한 상태에서 만든 거라 아쉽긴 하다. 악재라면 악재랄 수도 있는데 그것도 어차피 내가 선택한 거니까. 아쉽기도 하고 전작에 대한 비교는 아마 수만 가지로 나오겠지만 이 작품은 그냥 쉽게 이거대로 쏠쏠하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내가 찍는 영화가 계속 변하길 바라는 게 관객의 심리겠지만 영화가 변화의 과정을 겪는 것 이전에 내가 변화의 과정을 겪어야 되는 거다. 근데 대다수들이 그 순서를 착각한다. 내가 변해가는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기는 그릇 자체가 변하는 거지. 몇 년 전부터 내가 변화돼야 한다는 거에 대해 의식이 많이 생겼다. 이번 숏숏숏 프로젝트는 ‘애정만세’라는 이름으로 묶였는데 처음 사랑이라는 주제를 들었을 때 무엇이 떠올랐나.부지영 감독: 젊은 남녀의 연애가 떠오르진 않았다. 워낙 그 쪽에 관심이 없기도 하고 언제든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의 로맨스보다는 낭만적 사랑의 변방에 위치한 사람들의 사랑을 그리고 싶었다. 사랑이라는 주제가 외부에서 주어지니까 다른 게 뭐가 있나 주변을 더 살피게 됐다. <산정호수의 맛>은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걸 굳이 영화로 만들어야하나 했던 이야기였다. 너무 내 얘기니까. (웃음) 양익준 감독: 하나도 안 떠올랐다. 처음 제의 받고 며칠 있다가 제주도로 요양을 떠났다. (웃음) 거기서 아이디어를 생각해봤는데 안 나오더라. 계속 그러다가 억지로 쓰다가 엎은 것들이 몇 개있는데 하나를 빼곤 다 ‘고삐리’들이 나왔다. 내 영화에는 나의 중, 고등학교때 기억이 다 들어간다. 무의식적으로 그 때의 정서를 발췌해서 캐릭터에 이식하더라. 근데 신기하게도 20년 전의 기억을 현재 젊은이들도 수용하는 걸 보면 기본적으로 그 근간에 대한 답답증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로 차이가 없는 거 같다. 순임이 낭만적 사랑의 변방에, 그것도 굉장히 척박한 곳에 위치했다는 걸 보여주는 한 장면을 꼽는다면 버스 정류장 신이 있겠다. 고등학생 커플이 다정하게 발장난을 하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는 순임의 모습에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이 생겨나더라. 연민과 슬픔,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웃음)부지영 감독: 지금은 모를 거다. (웃음) 순임처럼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밀려난 느낌을. 사회적으로든 돈이 없어서든 지금 자기가 처한 상황이 애들이나 남편 뒷바라지 하다보니 낭만적 사랑이 불능하게 되는 위치가 있다. 또 신체적으로도 서로 맹렬하게 서로 부딪칠 수 없는 나이도 있다. 나도 그런 나이에 속해 있는 사람인데 참 딱하지. 그들이 낭만적인 사랑을 갈구하지 않는 건 아닐 텐데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못하는 거니까. 그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도 갑갑하고. 양익준 감독: 그런 것들을 영화 속에서 표현하지 않으면 사리가 생긴다. (웃음)부지영 감독: 작업 하면서 이런 부분에 목말랐었구나 느꼈다. 영화랑 나를 떨어트려놓으려고 했는데도 잘 안되더라. 이렇게 영화랑 가까이 있는 게 너무 싫었다. 자위하듯이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닌가 괴롭기도 했고. 근데 이건 정말 하고 싶었다. 하고 나니까 굿한 느낌이랄까? 되게 시원했다. 양익준 감독: 역시 사리는 쏟아내야 한다. (웃음) 이번 영화를 통해 그간 쌓였던 게 굉장히 많이 해소된 모양이다.부지영 감독: 그런데 좀 걱정되는 게 <산정호수의 맛>을 찍고 나서는 (양)익준이를 비롯해서 친한 후배 감독들 눈치가 보인다. 평소에 되게 친한 척도 하고 살갑게 구는데 이거 찍고 나서 그러면 얘네들이 ‘이거 완전 아줌마의 해소하지 못한 욕구를 나한테 쏟아내는 거 아니야’ 이럴까봐 좀 겁나기도 한다. (웃음) 양익준 감독: 난 반대로 세상의 관념을 되게 많이 포기하고, 주변에서 쳐다보는 것에 대해서도 다 잘라버린 거 같다. 우리도 모르게 세상이 맞다고 했던 것들을 자꾸만 의식한다. 그래서 영화에 거기에서 탈피하려는 욕구가 반영되는 거 같다. 나도 <똥파리> 만들고 나서 굿한 거 같았으니까. 몸에 있는 고름 다 쏟아낸 것처럼. 영화에는 대중에 대한 몫도 있겠지만 나를 위한 몫도 있어야 하는 것 같다.부지영 감독: (양)익준이가 말한 대로 그런 걸 떨쳐 버릴 시기였던 거 같다. 첫 장편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를 찍고 나서 틀에 박힌 걸 할 수도 있던 시기에 예전에 단편 찍듯이 오로지 나를 위한 영화를 찍는다는 느낌도 좋았다. 어떤 틀 안에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들이 있었는데 이 영화는 좋은 기회였던 같다.<H3>“서로의 첫인상은 헐벗은 야수, 예쁜 언니”</H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