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상준기자
영화 '신부의 아버지'(1950)에 출연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전설적인 여배우답게 사생활 역시 '레전드' 급이었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여덟 번에 걸친 결혼과 이혼이다. 1951년 5월, 테일러는 TWA 호텔 재벌 콘라드 힐튼 주니어와 처음 결혼했지만, 이듬해 바로 파경을 맞는다. 이후 테일러는 영국 출신의 배우 마이클 윌딩과 1952년 결혼해 5년 뒤인 57년에 결별한다. 같은 해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제작한 할리우드의 명 프로듀서 마이클 토드와 세 번째 결혼을 감행하지만 1958년 마이클 토드가 비극적인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면서 이마저 마무리된다. 테일러는 토드의 절친한 친구이자 자신의 친구였던 여배우 데비 레이놀즈의 남편인 배우 에디 피셔('스타 워즈'의 '레이아 공주' 캐리 피셔의 아버지)와 염문을 뿌리며 1959년 결혼해 영국 런던으로 이주한다.□ 20세기 폭스의 '클레오파트라'의 촬영장에서 리차드 버튼을 만난 테일러는 첫눈에 그와 사랑에 빠졌다. '클레오파트라'에서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로 출연한 테일러와 버튼은 극 중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두 주인공처럼 스크린 밖에서도 실제 연인이 되었고, 1964년 에디 피셔와 이혼한 테일러는 바로 버튼과 통산 다섯 번째 결혼에 골인한다. □ 1974년 버튼과 갈라선 테일러는 1975년 다시 버튼과 재결합하며 명실공히 '세기의 연인'임을 입증했지만, 1976년 다시 버튼과 이혼함으로써 그와의 긴 인연을 마감한다. 테일러는 생전 "내가 죽으면 리차드 버튼의 고향에 뿌려지길 원한다"고 말할 정도로 버튼은 테일러가 가장 사랑한 남자로 기억되고 있다. 이후 테일러는 정치인 존 워너와 1976년 결혼해 1982년 이혼했으며, 1991년에는 20년 연하인 운전기사 래리 포텐스키와 통산 8번째 결혼을 감행하여 큰 화제를 일으켰지만 1996년 파경을 맞았다.□ 복잡한 남성편력과 과도한 성형수술 등 테일러는 일생 동안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연기 활동 이외에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펼쳐 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09년 6월 사망한 절친한 친구 마이클 잭슨과 함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운동가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91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에이즈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테일러는 2000년 영국 왕실로부터 '데임(dame)' 이란 작위를 하사받기도 했다. 태상준 기자 birdcag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