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맘 부부니까 아직 시간이 있어요

이혼 위기에 처한 부부들이 마지막으로 잡은 희망, ‘댄스 솔루션’ 프로그램 SBS 플러스 <미워도 다시 한 번>을 보고 있자면 가슴이 철렁할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부부지간의 이런저런 감정 대립이야 그러려니 해도 폭언과 폭력의 난무만큼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불행을 자식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이혼만큼은 피해볼 요량으로 화해를 시도 중인 네 쌍의 부부. 그러나 이미 몸에 밸대로 밴 난폭한 언행들이 결국 발목을 잡을 것만 같아 조마조마 했습니다. 허나 다행히 서로 믿음과 배려가 있어야 가능한 스포츠 댄스 교습과 대화법 교정 솔루션으로 개선이 이루어지나 싶더니 아뿔싸, 다음 주 예고에서 섬뜩한 장면을 보고 말았습니다. 무슨 연유인지 17세 어린 나이에 아이를 출산한 리틀맘 길다인 씨 얼굴에 폭행의 흔적이 선명하더군요. 딸 은비 앞에서는 다시는 화내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최혜성 씨가, 벌써 아빠의 폭력을 모방하기 시작한 은비를 보며 크게 뉘우쳤던 남편이 또 다시 아내에게 손찌검을 한 걸까요? 설마 그랬으리라고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최종 댄스 경연 때 보여준 혜성 씨의 뉘우침어린 눈물이 아직도 잊히지 않기 때문이에요.<H3>아무리 부부싸움이라도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H3>
솔직히 갈등 없이 사는 부부가 세상천지 어디에 있겠습니까. 지난 주말 들른 마트에서도 여러 쌍의 부부들이 여기저기서 툭탁이고 있던 걸요. 이를테면 아내가 어묵을 집어 들라치면 “전에도 샀었잖아? 냉장고 어느 구석에 처박아 두고 또 사려 드는 거야?”하며 남편이 면박을 주고, 아내는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쌩하니 자리를 뜨는 식입니다. 그런가하면 장난감 진열대 앞에서는 또 다른 부부가 로봇을 사달라는 아이를 두고 말다툼 중이었어요. 이번 한 번만 사주자는 남편과 죽어도 안 된다는 아내, 그리고 울어 재끼는 아이의 모습은 가히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습니다. 아마 저 역시 언젠가 해본 가락이어서 일거예요. 그 시점에 누구 하나가 참아 넘기면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가 되고 말겠지만 일단 욕설이 등장하고 나면 싸움은 점점 파국을 향해 치달을 수밖에 없겠지요. 사실 부부 사이에 감당 못할 갈등이 닥쳤을 때 무작정 참고 사는 게 옳은지,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 헤어질 결단을 내리는 것이 옳은지, 쉽게 답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사람에 따라, 형편에 따라 각기 다르지 않겠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이혼율 급증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친정어머니들의 변화라는 얘기가 있더군요. 예전에는 여자가 시집을 가면 죽어도 시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느니, 출가외인이니 하며 국으로 참고 살라 타이르던 친정어머니들이 이젠 ‘나처럼 살지 말라’며 친정으로의 귀환을 적극 권하게 됐다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리틀맘 다인 씨가 저는 너무나 안쓰럽습니다. 솔직히 혜성 씨네 부부가 첫 댄스 연습에 불참하던 날, 다인 씨 머리에서 피가 흐르는 장면을 목격한 순간, 당장 이혼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만약 저라면 당장에 달려가 딸이며 손녀며 죄다 데리고 왔을 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인 씨에게는 어머니가 계시지 않는데다가 아버지조차 다인 씨에게 마음을 써주실 형편이 아니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은비 아빠 혜성 씨가 줄곧 보여 온 난폭한 언행들이 더 밉살스럽기만 하더군요. 다인 씨의 뒤를 받쳐줄, 보호해줄 가족이 없다고 만만히 여기는 게 분명하지 싶어서 말이죠. <H3>천만다행, 혜성 씨네 부부는 어린 나이이지 않습니까? </H3>

그래도 혜성 씨, 딸 은비 양의 아침밥도 챙겨주고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줬잖아요.

일곱 살, 엄마의 보살핌이 절실한 시기에 부모님의 이혼으로 다인 씨는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됐다죠? 그리고 학교 들어갈 때 데리러 온다, 4학년이 되면 데리러 온다 하던 엄마는 끝내 다인 씨를 데리러 오지 않았고 엄마의 부재는 다인 씨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았을 거예요. 그런 다인 씨에게 혜성 씨는 해서는 안 될 말을 서슴지 않더군요. “엄마 없는 티 좀 내지 마라.” 그 말이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지 짐작만으로도 가슴이 아립니다. 평범하게,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은 게 꿈이라는 다인 씨에게 남편 혜성 씨는 왜 그리 모질까요. 더 기막힌 건 폭력적인 아버지를 증오하며 자라난 혜성 씨가 그대로 자신의 아버지를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피해자가 어른이 되고 나니 어느새 가해자가 되었다니, 게다가 두 부부의 마음이 치유되지 않는 한 딸 은비가 또 다른 다인 씨, 혹은 혜성 씨로 자라날지도 모른다니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혜성 씨에게만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겠지요. 주로 방어하는 쪽이긴 해도 다인 씨의 언어폭력도 만만치 않은데다가 특히나 부정적인 대화 방식은 앞으로 아이 교육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테니 어서 빨리 고쳐야 한다고 봐요. 사실 한참 자유를 만끽하고 싶을 이십 대 초반의 청년에게 부양할 아내와 딸의 존재라는 게 얼마나 크나큰 부담이겠습니까. 하지만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떨쳐낼 수 없는 숙명이 아닐는지요. 듣자니 사람이 나이 삼십을 넘고 나면 습성을 바꿀 수가 없다더군요. 이미 굳어져서 바뀌지가 않는다더라고요. 천만다행, 혜성 씨네 부부는 어린 나이이지 않습니까? 부디 하나 둘 퍼즐을 맞추듯 찬찬히 서로 마음을 맞춰나가려 애써보세요. 그리고 제발 폭력만은 즉시 멈추시길 부탁드려요. 무엇보다 딸 은비가 보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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