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규 “상경 10년만에 아들이 배우라는 걸 보여드렸다”

<div class="blockquote">지난 1일 종영한 MBC <역전의 여왕>을 통해 가장 역전한 배우는 구용식(박시후)의 역의 임지규가 아닐까. 그에게 <역전의 여왕>은 부산에서 상경한 지 11년 만에 부모님께 아들이 배우라는 것을 보여준 기회였고, 어르신들마저 “황태희랑 구용식을 맺어준 사람”이라고 알아볼 정도로 새로운 팬이 생겼으며, 무엇보다 배우로서 “처음으로 발음 지적을 받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영화 <은하해방전선>과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를 통해 ‘독립영화계의 스타’라는 별명을 얻었고 <과속스캔들>과 SBS <타짜> 등으로 얼굴을 알렸음에도 그 이상의 뭔가를 터뜨리지 못했던 그는 묵묵히 자신이 지닌 한계를 돌파해 왔다. 마치 도자기를 빚는 것처럼 끊임없이 깨고 부수고 다듬는 과정을 통해 속내가 더욱 단단해진, 그러나 올해 서른 넷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는 동안의 외모는 여전한 배우 임지규. “내 인생 자체가 영화 같다”고 말한 그에게 지난 11년의 시간은 어떤 의미였을까.
<역전의 여왕> 종영 직후가 명절 연휴였다. 고향인 부산에 가니 전과 다른 반응이 있던가.임지규: 와, 다르더라. (웃음) 부모님은 일찍 주무셔서 본방 사수를 못 하셨는데, 동네 사람들이 ‘어제 아들이 어떻게 나왔다’고 말씀해주셨다고 하더라. 예전 드라마에서는 하루에 한 신, 그것도 언제 나올지 모르는 단역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래도 꾸준히 나오니까 친척들도 많이 뿌듯해하셨다. 오랜만에 내 얘기로 가득한 설날을 보냈다.<H3>“애드리브는 내가 살려고 했다”</H3>

임지규는 [역전의 여왕]에서 용식의 친구이자, 형이자, 엄마 같은 비서 강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강우는 그동안 연기한 캐릭터들에 비해 밝은 캐릭터에 비서로서도 독특한 인물인데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강우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임지규: 감독님은 오디션을 볼 때부터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하셨다. 때로는 형으로서, 때로는 마누라로서, 또 한편으로는 엄마로서 회장 아들인 용식(박시후)한테 조언을 해주는 비서였기 때문에 시청자들한테 어필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그런 연기를 해본 적도 없고 실제 성격과도 너무 달라서 처음에는 낯간지러웠다. 그런데 대본 자체가 재밌고 힘이 있어서 특별히 내가 뭘 더 하지 않아도 캐릭터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비서로서 주눅들기는커녕 가끔은 오히려 용식이 위축된다는 느낌을 받았던 건 바로 스타카토 같은 말투 때문이었다. 그런 말투는 어떻게 연구했나.임지규: 딱딱한 말투를 재밌게 살리는 게 관건이었는데, 에서 자신이 토성인이라고 생각하는 4차원 캐릭터를 연기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됐다. 대부분의 대사가 “후뢰시맨들은 토성을 중심으로 한 다섯 개의 별에서 자랐다고 들었다”는 식으로, 꼭 교관이 훈련병한테 명령하는 듯한 말투였다. <역전의 여왕>에서 용식이 자기 편을 안 들어준다면서 “너도 확 잘라버린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보통 비서라면 “죄송합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강우는 정색하면서 “어우, 무서워. 역시 인생, 갑과 을이군”이라고 받아쳤다. 감독님도 재밌어 하셨다. 박시후의 반응은 어땠나.임지규: 서로의 대사를 먹고 먹는 만담 커플이라 형도 굉장히 즐거워했다. 처음에는 낯을 가려서 주저했는데,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는 서로 아이디어도 많이 냈다. 아직까지 드라마에서는 신인의 위치기 때문에 애드리브를 시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임지규: 내가 살려고. (웃음) 사실 시후 형은 대본에 충실한 스타일이다. 주연 배우의 입장에서 신인이 아이디어 내는 걸 무시할 수도 있는데, 형은 흔쾌히 “그래? 한 번 해보자”고 하셨다. 박지은 작가님께도 “우리 강우랑 많이 붙게 해달라”고 얘기해주시고, (김)남주 누나도 “네가 나온 장면이 너무 재밌다”고 칭찬해주셨다. 동료 배우들이 내 역할을 많이 밀어주셨다. 강우와의 ‘껌딱지 커플’에 이어 후반부에는 유경(강래연)과의 러브라인까지 성사됐다.임지규: 원래 대본에는 없는 설정이었다. 풀 샷 촬영할 때 드라마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재밌는 시도를 종종 했는데, 한 번은 내가 래연 씨한테 “내가 상추쌈을 싸서 주면 넌 거부해”라고 미리 귀띔했다. 흐흐흐. 동료 배우들 사이에서 “너네 둘이 뭐 했더라?”고 얘기가 돌더니 그게 작가님 귀에 들어가면서 중반 이후부터는 우리 둘 사이에 묘한 장면을 넣어주셨다. 애초의 캐릭터에 적극적으로 살을 많이 붙인 셈이다.임지규: 평범한 비서를 뛰어넘는 캐릭터로 설정돼 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았다. 그리고 임지규라는 사람을 조금이나마 각인시키려면 주어진 것만 받아먹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를 찍는 동안에는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못 잤다. 대본이 새벽에 나오는데, 주인공과 붙는 신이 많다 보니까 거의 아침 첫 신부터 투입됐다. 대사 양도 너무 많아서 초반에는 NG도 많이 냈다. 근데 웬만한 드라마 현장은 다 이런 식으로 돌아가니까 결국엔 내가 이겨낼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촉박한 상황에서 주어진 것만 해내면 재미없지 않나.<H3>“감독이 배우한테 어떤 얘기를 하는지 듣고 싶어 스태프를 자처했다”</H3>
그렇게 정신없이 3개월을 달렸는데,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배운 건 뭐였나.임지규: 예전부터 발음에 대한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는데, <역전의 여왕>은 그런 소리를 안 듣게 만들어 준 작품이었다. 어느 날 남주 누나가 “지규야, 네가 아무리 긴 대사를 해도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겠어. 그 느낌이 참 좋다”고 말씀하시더라. 배우로서 많은 훈련을 할 수 있었던 기회였는데 거기다 칭찬까지 받게 됐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외적인 변화라면 당신을 알아보는 팬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배우 임지규에게 인지도는 어떤 의미인가.임지규: 상경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드디어 부모님한테 아들이 배우라는 걸 보여드릴 수 있게 됐다. 어떻게 보면 효도의 의미가 크다. 또 하나는 신앙 활동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이 작품을 끝내고 전라도 장흥으로 선교 활동을 갔는데, 어떤 할머니께서 “구용식이랑 황태희 맺어준 사람 아니냐”라고 알아봐 주시고 짧은 시간 안에 나한테 마음을 열어주셨다. 하지만 한 때는 작품이 들어오지 않아 방송 스태프로 일을 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임지규: 2004년에 첫 단편영화 <핑거 프린트>를 찍고 다른 기회가 없었다. 아르바이트까지 다 그만두고 방송 현장으로 갔다. 2005년도 고현정 씨 복귀작이었던 SBS <봄날>을 시작으로 <일요일이 좋다-반전드라마>, <솔로몬의 선택>에서 카메라 스태프로 일했다. 그 때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나. (웃음)임지규: 배우들이 연기를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었고, 감독이 배우한테 어떤 얘기를 하는지 듣고 싶었다. <일요일이 좋다-반전드라마>를 1년 가까이 했는데, 그 때 카메라 감독님이 내가 배우에 관심 있어한다는 걸 아셨다. 주인공한테 택배 배달을 해주는 신에서도 그냥 단역 쓰면 되는데 “그거 지규 시켜”라고 배려해주셨다. 덕분에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많이 편해졌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불안한 마음은 없었나.임지규: 불안했지만 당연히 경험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힘들었던 건, 아들로서 효도를 못한다는 것뿐이었다. 주변 친구들은 결혼해서 집도 사고 안정적인 선에 올라섰는데 나는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었으니까. 서른이 되는 과정에서 이 일을 그만둬야 되는 생각도 했다.<H3>“어쨌든 마무리만 짓자, 라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H3>
그 갈림길에서 만났던 작품이 바로 영화 <은하해방전선>이었다.임지규: <은하해방전선>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화술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은하해방전선>의 영재는 정말 말이 많은 캐릭터였다. 절대 못 한다고 했더니, 윤성호 감독님이 “지규 씨, 이 과정을 뛰어넘어야 성장할 수 있어요. 이거 끝나고 나면 분명 뭔가 있을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뭔가 있더라. (웃음) 내 한계는 이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뛰어넘게 해 준 작품이었다. 편한 연기가 잘 맞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고, 연기에 대한 자신감도 붙었다. 편한 연기라고 했지만, 소통에 목마른 영화감독 영재(<은하해방전선>)나 아예 세상에 대해 마음을 닫았던 제휘(<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처럼 캐릭터들의 인생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임지규: 내 인생 자체도 그렇게 평탄하지 않아서 아프고 깨지는 연기는 어렵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술, 담배 문제나 나의 깜깜했던 비전, 가난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학교에서 연기수업을 받진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인생수업을 받은 셈이다. 독립영화 장르 안에서는 ‘독립영화계의 스타’라는 별명까지 얻었지만, 인지도를 높일 기회를 만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는데.임지규: 가끔은 ‘왜 하나님은 나에게 대중들이 알 수 있는 작품을 허락하지 않으실까’라는 원망도 했다. 그런데 다 이유가 있었다. 만약 공중파 드라마로 데뷔하고 상업영화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었다면, 과연 내가 부족한 부분을 고치려고 했을까. 이미 스타가 됐으니 그런 지적들을 객관적으로 듣지 못했을 것 같다. 다수가 주목하지 않는 영화의 주인공을 맡으면서 이게 부족하구나, 이게 안 되는 구나, 라는 걸 깨달았고, 그 뒤에는 그 한계를 깰 수 있는 작품을 만났다. 충분히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배우로서 깎이고 다듬어지는 과정을 통해 인간 임지규가 변한 부분도 있나.임지규: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끈기”라고 적은 쪽지를 건네주셨다. 넌 끈기만 있으면 된다고. 항상 뭘 해도 오래하지 못했다. 근데 이 일을 10년 째 붙들고 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한계도 많았던 나인데, 어떻게 겁도 없이 배우 생활을 시작했을까. 지금 생각해도 내 자신이 놀랍고 웃기다. 10년 넘게 본인의 한계를 인식하고 뛰어넘을 수 있었던 그 힘은 어디서 나왔던 것 같나.임지규: 누군가 내 삶을 영화로 본다고 하면 이런 생각을 할 거 아냐. 저 힘든 거 조금만 참으면 후반에 성공하는 이야기가 나올 텐데, 왜 못 참고 포기하지? 힘들고 기분 나쁘다고 놔버리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 잘하든 못하든 어쨌든 마무리만 짓자, 그러면 뭔가 얻겠지 라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 내 인생 자체가 영화인 것 같다. 여기까지 오는데 오래 걸렸던 이유는 그만큼 오래 가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다음 작품에서 뛰어넘고 싶은 한계는 뭔가.임지규: 체격이 왜소하다 보니까 무게감 있는 연기를 못할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역전의 여왕>을 해보니, 내 방식대로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서워할 필요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최근에 영화 <아저씨>를 봤는데, 원빈 씨에게서 그 전에 보지 못했던 종류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나도 그런 작품을 하고 싶다. 차기작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임지규: 잘 모르겠다. 내가 조바심을 낸다고 잘 풀리는 게 절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다 때가 있는 것 같다. 작품을 끝내자마자 차기작을 만날 수도 있고, 좀 더 걸릴 수도 있고. 뭐, 기다리는 수밖에. (웃음)<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10 아시아 글. 이가온 thirteen@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10 아시아 편집. 장경진 three@<ⓒ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글. 이가온 thirteen@ 사진. 채기원 ten@ 편집. 장경진 three@ⓒ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지합니다.

오늘의 주요 뉴스

헤드라인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