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기]부활 김태원⑤ '팔불출이라도 좋아! 난 아내가 좋다'

2002년 발매된 부활 여덟 번째 앨범에 실린 단체 사진(왼쪽부터 서재혁, 채제민, 이승철, 김태원, 엄수한)

[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1993년 여름. 김태원은 부활 세 번째 앨범을 작업하며 음악색깔에 변화를 꾀했다. 기존 거친 사운드 대신 맑고 잔잔한 선율을 지향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록발라드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 생각의 전환을 제공한 건 그가 작곡한 ‘회상Ⅲ(마지막 콘서트)’ 속의 소녀, 지금의 아내 이현주였다. 1984년 낙원상가 인근 카페에서 둘은 처음 만났다. 친구가 주선한 소개팅. 약속장소로 향하는 김태원은 마음이 설렜다. 이상형인 청순한 소녀라는 친구의 귀띔 때문이었다. 상점 유리창 앞에서 그는 용모를 점검했다. 검정색 바바리코트와 흰색 구두. 갓 파마한 장발머리는 자신감을 북돋았다. 당차게 들어선 카페에서 김태원은 이현주를 단번에 알아봤다. 아담한 체구와 귀여운 외모.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친구의 말 그대로였다.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이 흔들렸다. 화려한 언변으로 가까워지려고 애썼다.” 낯선 음악 이야기에 매료된 그녀는 이후 사랑을 넘어 생명의 은인으로 거듭났다. 김태원은 대마 중독과 두 번의 수감으로 인생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현주는 어둠 속 한줄기 빛이었다. 질타와 소외 속에 박약해진 김태원을 조금씩 일으켰다.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구치소를 찾아 면회를 신청했다. 정신병원을 전전할 때도 그림자를 함께하며 믿음을 심어줬다. 지고지순한 사랑은 만병통치약이었다. 대마 후유증으로 안절부절 떨던 손은 따뜻해졌다. 온기는 손끝에서 가슴으로 전달돼 삶을 향한 열정으로 피어났다. “현주의 노력 덕에 다시 음악을 할 수 있었다. 그녀를 위해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김태원은 재기에 성공했다. 타이틀 곡 '사랑할수록'을 담은 세 번째 앨범이 100만장 이상 팔려나가며 큰 인기를 얻었다. 얼굴에는 잃어버렸던 웃음이 돌아왔다. 대중의 관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내와의 약속을 지킨 것이 뿌듯했다. “앨범 발매 전 치룬 결혼식에서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한 약속을 늘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2000년 발매된 부활 일곱 번째 앨범에 실린 단체 사진(왼쪽부터 이성욱, 김태원, 엄수한, 서재혁, 김관진)

이북출신 집안이라는 공통점으로 겨우 허락받은 결혼. 17년이 흐른 지금 김태원은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둔 한 가정의 아버지가 됐다. 딸 서현의 유학으로 그를 제외한 가족은 모두 필리핀에 거주한다. 서울에 따로 마련한 오피스텔에서 시작한 기러기 아빠 생활. 일주일에 한 번 필리핀행 비행기에 오르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지워지지 않는다.그는 늘 꿈꾼다. 행복한 가족과의 나날을. 더 좋은 남편과 아버지가 된 자신을. “아내와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고 싶다. 내가 죽어 없어지더라도 ‘내 남편, 내 아버지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라고 회상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2003년 부활 멤버들이 공연을 마친 뒤 왼쪽 어깨에 똑같이 새겨진 스티커 문신을 보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부터 정단, 채제민, 김태원, 엄수한, 서재혁).

이종길 기자 leemean@<ⓒ아시아경제 & 스투닷컴(stoo.com)이 만드는 온오프라인 연예뉴스>

대중문화부 황용희 기자 hee21@ⓒ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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