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강미현 기자] 유로존 출범 이후 '정크' 등급 국가가 처음 등장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가 27일(현지시간) 그리스의 장단기 국채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강등한 것.그리스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이미 '정크' 수준이었지만 등급 하향이 현실로 나타나자 글로벌 증시는 또 한 차례 패닉에 빠졌다. S&P는 또 포르투갈에 대해서도 신용등급 강등 결정을 내리면서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의 그리스 지원결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밖으로 확산되고 있는 뿌리 깊은 재정위기 우려를 반영했다. ◆ 그리스, 유로존 첫 투기등급 '오명' = S&P는 이날 그리스의 국채 등급을 'BBB+'에서 정크본드 등급인 'BB+'로 3단계 하향조정했다. 당장 급한 불을 끈다하더라도 중장기적 경제성장 전망이 취약해 그리스 정부가 긴축을 위해 고를 수 있는 정책적 선택지에는 제약이 뒤따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S&P는 "등급하향조정은 공공부채 부담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는 그리스가 처한 정치적, 경제적, 재정적 상황에 대한 우리의 수정된 평가를 반영한 것"이라며 "그리스 정부가 발표한 긴축안에도 불구하고 부채와 관련된 중기적 금융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S&P는 또 그리스가 디폴트(채무불이행) 혹은 재무재조정 절차에 돌입할 경우, 국채 투자자들은 투자금액의 평균 30~50%를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유로존 회원국의 신용등급이 정크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1999년 유로화 출범 이후 처음있는 일. 이는 투심을 크게 악화시켜 이날 10년물 그리스 국채의 독일 국채와의 수익률 격차(일드 스프레드)는 23bp 상승한 675bp로 1998년 이래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다우존스스톡스유럽600지수는 전거래일 대비 3.1% 하락한 261.65로 종료됐다. ◆ 450억유로로는 부족하다?= 한편 IMF, EU 관계자들은 85억유로의 그리스 국채가 만기도래하는 5월19일 이전 구제금융을 실시하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이다. 현재 미국 시카고에 머물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장 클로드 트리셰 총재는 28일 독일을 방문, 입법자들을 대상으로 그리스의 긴축안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IMF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총재 역시 29일 독일을 방문, 앙겔라 메르켈 총리 및 국제기구 관계자들을 만난다. 총선을 앞둔 독일 정부는 여론을 의식한 듯 그리스 구제금융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이다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IMF는 그리스 지원규모를 100억유로 가량 더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당초 EU와 IMF는 그리스에 각각 300억유로와 150억유로, 총 450억유로를 지원하기로 합의했으나, IMF가 지원액을 250억유로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것. 시장에선 450억유로로 책정된 지원액이 턱 없이 부족하다며 구제금융 규모가 700억유로 이상 900억유로에 이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주 IMF 총회에 참석한 짐 플래허티 캐나다 재무장관은 "그리스가 당초 논의된 것보다 더 많은 자금을 필요로 할 것"이라며 이같은 가능성을 확인했다. ◆ 지원결의 소용없어, 비관론 확산 = S&P 등급 강등과 IMF의 구제금융 증액 검토는 EU와 IMF의 그리스 지원 결의가 시장을 안심시키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뜻한다. 또 위기가 그리스를 넘어 유럽 전체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다. S&P의 데이비드 비어스 헤드는 "유로존 가운데 그 누구도 구제금융 규모가 앞으로 3년 동안 그리스가 갚아야할 부채 전체를 아우른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S&P에 의해 국채 등급을 A+에서 A-로 2단계 하향조정 당한 포르투갈의 10년물 국채와 독일 국채와의 스프레드는 전일대비 59bp 오른 277bp, 스페인의 일드 스프레드는 12bp오른 113에 이르렀다. 유로·달러 환율은 1.3172달러로 작년 4월 이래 1년만에 처음으로 1.31달러대를 밑돌았다. 헤지펀드 매니저 에릭 파인은 "이는 더 이상 그리스나 포르투갈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유로 시스템에 대한 문제"라며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유로존의 공조가 깨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다이와 캐피탈 유럽의 콜린 엘리스 이코노미스트도 "구제금융책은 시장 우려를 완화시키지 못했다"며 "포르투갈과 더불어 그리스 등급 강등과 스프레드 확대 현상은 다른 유로 국가들도 비슷한 운명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우려했다. 강미현 기자 grobe@<ⓒ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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