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주DNA]역발상의 창조적 사고…위기도 뛰어넘었다

이병철 정주영 회장 등 창업 1세대.. 한강의 기적 주인공

[아시아경제 김정민 기자]우리의 기업사는 유럽이나 미국, 그리고 가까이는 일본과도 또 다른 성장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우리는 근대적 의미에서는 불과 1세기도 안된 시간에 누구도 가능할 것이라고 믿지 못했던 고도성장을 이뤄낸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강의 기적'으로 불린 우리 경제의 성장사는 천운이 아닌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바꾼 '신화창조'의 주역들이 모여 일궈내 고난의 성장사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사업보국'..근대화의 기수 창업 1세대 ="나는 인간사회에서 최고의 미덕은 '봉사'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이것 이상으로 의의와 가치를 지니는 것이 없고 삶의 목표로 이보다 숭고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인간이 경영하는 기업의 사명도 의심할 여지없이 국가, 국민 그리고 인류에 대해 봉사하는 것이어야만한다" -호암 이병철삼성, 현대, LG, SK, 금호, 한진, 두산, 한화, 효성…'재벌'로 통칭되는 이들 기업집단은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대들보로 치켜세워지다가도 어느 순간 '사회 정의'를 위협하는 부도적한 집단으로 몰려 여론의 뭇매를 맞곤 한다. 토대를 닦은 창업 1세대들 역시 때로는 로비와 정권유착 등 부도덕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장사꾼' 취급을 받기도 했으며 또 일부는 정치자금, 분식회계 등 불미스런 일에 연루돼 오욕의 시간을 보내야 하기도 했다. 근대화 이후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업인들중에는 어렵게 일군 대기업을 부도내고 국가 경제에까지 큰 부담을 안기거나 또 어떤 이들은 범법자가 돼 영어의 몸으로 일반인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진 경우도 있다. 그러나 남다른 선견지명으로 반도체 산업에 투신,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라인 증설을 독려한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없었다면 자랑스런 메모리 반도체 1위 기업 삼성전자는 존재하지 못했고 울산의 황량한 백사장에 조선소를 짓겠다며 500원 지폐의 거북선 그림을 꺼내들고 영국의 은행가들을 설득했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일찌감치 그 꿈을 접었다면 세계 1위 조선강국은 먼 미래에나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숱한 시행착오와 임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단파 라디오를 시작으로 전자사업 진출에 나섰던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 '화약없이 산업 근대화를 이룬 나라는 없다'는 신념아래 자체 기술로 다이너마이트 생산에 나섰던 한화 창업주 김종희 회장과 같은 기업가들이야 말로 전란의 폐허속에서 우리 경제를 일으킨 일등공신이다. 이처럼 빼앗긴 나라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6.25 전란의 참상을 온 몸으로 겪은 1세대들은 기업을 일으켜 나라와 국민에 기여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으며 이를 위해 손쉬운 돈벌이를 버리고 남들이 가지 않는 가시밭길을 걷곤 했다. 이 같은 '사업보국'의 창업정신은 2, 3대로 이어지는 세대교체와 급변하는 경제환경의 변화속에서도 연연히 계승돼 삼성, LG, 현대, SK 등 많은 기업의 경영이념으로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역발상ㆍ창조적 사고로 위기돌파="성공한 사람은 불굴의 의지로 도전정신과 신념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밀고 나가는 자이고 철저한 시간속에 불철주야 사고에 매진하는 사람이다" -아산 정주영 창업 1세대들은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그리고 오일쇼크에 이르기까지 그들보다 앞서 있던 경쟁자마저 도태되는 최악의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지금의 성세를 일궜다. 이들은 위기를 새로운 도전의 기회로 삼는 '역발상'과 '창조적 사고'의 소유자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지닌 기업인들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수많은 실패를 딛고 일어나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대표적 기업가다. 초등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한 그가 현대ㆍ기아차그룹을 필두로 현대중공업, 현대그룹, 현대백화점, KCC 등 한국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많은 대기업들을 키워내기까지는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고개젓는 일에도 끝없이 뛰어드는 도전정신과 일반의 상식에 구애받지 않는 열린 사고가 큰 뒷받침이 됐다. 1976년 7월 착공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는 당시 변방의 무명 건설회사인 현대건설이 수세기만의 최대 공사를 따냈다는 것 뿐만 아니라 필요한 시설물을 울산에서 조립해 사우디까지 옮기는 파격적인 발상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 회장은 서산 간척사업 당시 최대 고비였던 물막이 공사 당시 고철 유조선으로 물길을 막는 기상천외한 공법을 개발,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SK 창업주인 최종현 회장 또한 기술 이전을 거부하는 일본에 맞서 사채까지 끌어 연구개발비를 조달하는,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과감한 도전으로 당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4개국만이 보유한 폴리에스테르 필름 생산에 성공함으로써 SK 도약의 발판을 닦았다. 우리 경제가 지난 2008년 하반기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사태로 촉발된 세계적 경제위기속에도 미국, 일본, 유럽 등 어느 선진국보다 빠른 위기극복에 성공, 세계 언론의 찬사와 함께 각국의 벤치마킹 모델이 된 것 역시 1세대들이 남긴 포기를 모르는 불굴의 의지가 아직까지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민 기자 jmk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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