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우의 경제레터] 다문화가족의 나들이

한식이자 식목일인 지난 일요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습니다. ‘푸른 세상 만들기 마라톤대회’에 수천 명의 마라톤 마니아들이 참가해 한강 강바람을 맞으며 건강을 과시하고 기록에 도전했습니다. 여느 평범한 마라톤대회처럼 보였지만 이 날 행사의 특이한 점은 다문화가족이 초청돼 함께 달렸고 즐겼다는 것입니다. 물론 많은 주한 외교사절들도 참석해 축하해 주었습니다. 이날 식전행사는 다문화가족 등 외국인들로 구성된 태권도 시범단의 묘기로 시작됐습니다. 피부색이 다른 30여명의 시범단은 격파와 수준 높은 묘기로 참가자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어 주한 외교사절들이 소개되고 서울 등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는 다문화가정 20여가족에 대한 장학금 전달식도 있었습니다. 중국, 필리핀, 베트남, 러시아, 우크라이나 중앙아시아부터 중남미 국가까지 다양한 국적의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평소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문화행사와 교육은 있었으나 각지에서 모여 야외에서 달리기를 하고 장학금을 주는 행사는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온양에서 올라왔다는 한 다문화가족은 버스와 지하철로 월드컵경기장까지 오는 데 무척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들이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떠나 이동하는 것은 무척 고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자국 대사도 만나 기념촬영도 하고 정말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고 흡족해 합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주변에서 다문화가족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결혼한 부부 9쌍 중 1쌍이 국제결혼입니다. 10%가 넘는 수치지요. 이러다 보니 다문화가정의 자녀도 1만5000여명이 넘고 있습니다. 도시 지역도 그렇지만 농촌 지역은 더욱 심각한 실정입니다. 정부에서 지난해 ‘다문화가족 지원법’을 만들었으나 이들에 대한 지원과 교육은 아직 부족합니다. 혹자는 실질적 도움과 고민이 없는 문구만 요란한 전시성 정책이라고 비난합니다. 다문화가족 지원법에는 다문화가족을 한국인의 배우자 혹은 한국국적을 취득한 이주민을 가족 구성원으로 하는 한국인 가족으로 제한해 한국인과 혼인관계가 없는 이주 노동자 가정이나 난민 가정, 화교 가정 등은 배제하고 있습니다. 다문화가족의 의미를 대폭 축소한 것입니다. 또 법을 위반했을 때 벌칙을 주는 강제 규정이 없으며 법에서 열거한 지원 사업들은 이미 지자체나 시민사회단체에서 실행하고 있는 것들이란 주장입니다. 다문화가정의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려움을 바로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 온 지 1년여 된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 남편은 카센터를 하고 아직 아이는 없답니다. 그 녀가 가장 어려운 것은 언어 소통입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며 더듬더듬 배우고 있답니다. 교육기관을 찾아가려해도 어디에 있는지 잘 알 수 없고 또 시어머니 등 식구들이 집에서 외출하는 것을 싫어해 나가기도 어렵답니다. 이주여성들이 도망쳤다는 일부 왜곡된 소문이 발목을 붙잡고, 이러다 보니 자녀들의 언어도 잘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밖에서 일하고 주로 어머니하고 생활하는데 자연히 적응이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취학연령이 돼서 학교에 입학해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 한국 남성과 이주여성이 결혼하는 방식이 대부분 결혼브로커를 통해 성사돼 남성 측에서 결혼비용이 들다보니 이상한 우월감도 있답니다. 특히 정부의 다문화가정에 대한 정책이 동화정책 위주로 돼 있는 것도 어려움이라고 지적합니다. 각종 정책은 결혼이민자를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 역사, 예절과 전통교육 등 한국에의 동화를 강요하는 내용으로 짜여져 있습니다. 배우자를 상대로 배우자의 나라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교육이나 지원은 전혀 고려되고 있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잘 적응하고 있는 이도 있습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통역사가 돼 자신과 같은 결혼이민자를 돌보는 이도 있습니다. 어엿한 직장을 가지고 출근한다는 것이 매일 아침마다 설렘을 준다고 합니다. 자신이 겪은 문화차이에 따른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그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또 한 지자체는 다문화가족에 암송아지 1마리를 분양해 첫 번째 태어난 암송아지는 다른 다문화가족에 전달하고 다음 송아지는 자신이 길러 재산을 늘려나가는 사업도 전개하고 있습니다. 한때 ‘백호주의’를 표방해 이방인을 거부했던 호주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다문화주의를 공식적으로 채택한 뒤 이민자와 난민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 호주의 인구는 2000만여명, 이 중 43%가 외국에서 태어났거나 부모 중 1인이 외국출신이랍니다. 이들은 비영어권 이민자를 위해 체계적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한인 2세들에게는 한글교실도 열어준다고 합니다. 외국인 학생은 일정기간 언어교육 후 입학시키고 다문화가정들이 교류할 수 있는 많은 시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무엇보다 옛날의 백인 우월주의에서 벗어나 누구나 같은 국민이라는 의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답니다. 이제 우리도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은 놓아야 할 시점이 지났습니다. 다민족 국가로 들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또 얄팍하게 강대국에는 위축되고 약소국에는 뻐기는 국민들의 마음도 바꿔야 할 시점입니다. 다문화가족은 이미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편견과 이질감을 버리고 함께 나누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또한 소통과 통합입니다. 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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