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우정나눈 두 사람, 연애는 극과극… 일편단심과 바람남
[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호안 미로는 '띠동갑'이다. 피카소가 1881년생으로 열두 살 연상이다. 1920년, 20대 무명화가 미로가 프랑스 파리에 처음 갔을 때 동향인 피카소를 찾아간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미로는 피카소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의 어머니를 잘 알았다. 피카소의 어머니 마리아 피카소 로페스는 파리에 가 아들을 만나면 주라고 미로에게 사블레 과자를 줬다고 한다. 미로와 피카소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돼 평생 이어졌다.
피카소는 1973년 92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미로를 처음 만났을 당시 그의 자화상을 간직하고 있었다. 미로는 1919년 이 자화상을 완성했고 이 그림은 아트 딜러를 거쳐 피카소에게 전해졌다. 현재도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에 보관돼 있다. 피카소는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이 자화상 속 청년 화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하철을 탈 때처럼 하게. 줄을 서야 한다는 말이네. 자네 차례를 기다리게." 미로는 이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말"이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미로는 작품에 있어서는 피카소와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그는 입체파의 기법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속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소화했다. 미로는 입체파의 언어가 갖는 한계를 알렸고 훗날 "그들이 지겹게 되풀이하는 말을 부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피카소는 미로의 창조적인 재능에 주목했고 늘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미로와 피카소는 스페인 출신으로 둘 다 독재 치하의 조국을 떠나 같은 기간 파리에서 활동했고 서로를 아꼈다. 하지만 화풍만큼이나 성격도, 인생관도 달랐다. 이를 잘 알 수 있는 것이 이 두 사람의 판이한 애정관이다. 미로는 1929년 마요르카 출신의 필라르 훈코사 이글레시아스와 결혼했다. 필라르가 10살 연하였다. 미로는 그녀에 대해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내 작업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지만 관여하지 않네. 필라르는 완벽한 동반자네. 그녀가 없다면 나는 이 세상에 버려진 거지같은 존재였을 것이네"라고 썼다. 그의 말대로 미로와 필라르는 평생을 함께 했다. 마요르카의 필라르-호안미로 재단이라는 명칭은 이를 잘 보여준다.
미로와 달리 피카소의 화려한 여성 편력은 잘 알려져 있다. 피카소는 두 명과 결혼했지만 약 10년을 주기로 새로운 연애를 했고 평생 7명의 여인과 깊은 관계였다. 이 여성들은 모두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예를 들어 1억5500만 달러로 피카소의 작품 중 가장 비싸게 팔린 작품 중 하나인 '꿈'은 그의 연인인 마리 테레즈 발터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피카소가 발터를 처음 만난 것은 1927년으로 그의 나이 45세, 발터는 고작 17세였다. 게다가 피카소는 이미 러시아 무용수 올가 코클로바와 결혼한 유부남이었다.
사뭇 달랐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우정을 나눴던 피카소와 미로의 관계는 미로가 손자와 함께 피카소의 집을 방문한 기록에도 잘 나타나있다. 다비드 페르난데스 미로는 이렇게 썼다. "피카소는 요란한 바둑무늬 바지와 줄무늬 셔츠에 노란 가죽 단화를 신고 있었다. 항상 우아한 차림의 할아버지는 나무랄 데 없는 여름정장을 입고 있었다. (중략) 피카소의 힘은 할아버지의 힘과 달랐다. 그의 성 안에는 예외적이고 정신을 교란시키며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한 창조의 힘이 존재했다. 반면 할아버지의 성은 더 많은 평화와 신비가 지배하고 있었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