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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이춘재 사과해라" 연쇄살인마, 유족에 입 열까 [한승곤의 사건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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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 이춘재 고향 화성 주민들 "피해자에 사과해야" 한목소리
'8차 사건' 억울한 옥살이 윤 씨 재심 증인 이춘재
재판 출석해 윤 씨에 직접 사과할까

[르포]"이춘재 사과해라" 연쇄살인마, 유족에 입 열까 [한승곤의 사건수첩] 화성시 태안읍 진안동 일대. 멀리 보이는 고층 아파트 등 이곳 일대는 논 밭이었다. 이 지역은 이춘재의 고향으로 지난 2일 오후 이곳 일대서 만난 주민들은 이춘재 사형과 함께 유족에 대한 사과를 촉구했다. 사진은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과 무관함.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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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유족에게 정식으로 사과해야지, 사람을 그렇게 살해하고…"


30여 년이 흐른 역대 최악의 강력사건이자 장기미제사건이었던 이춘재(57)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마무리됐다. 경찰은 이춘재가 살인 14건과 강간 9건을 저지른 것으로 결론 냈다. 그러면서 당시 사법기관의 잘못된 수사 등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 무고한 시민들에게도 공식 사과했다.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은 지난 2일 이춘재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춘재의 잔혹한 범행으로 희생되신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이어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분과 그의 가족, 그 외 당시 경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해 피해를 보신 모든 분께 사죄드린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경찰 사과에 대해 이날 오후 이춘재 고향으로 알려진 경기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현 진안동) 한 아파트 단지 앞에서 만난 주민들은 이춘재도 직접 사과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아파트는 이춘재 친모가 거주했던 곳으로 진안동 일대는 아직 이춘재 친인척이 거주하고 있다.


이날 한 사거리에서 만난 70대 노인 박 모 씨는 "이춘재는 물론 그의 가족이 나와서 무릎 꿇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나라에서) 보상만 한다고 다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사람을 죽지 않았느냐, 사과해도 모자란다"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인근에 있던 또 다른 40대 주민 김 모 씨도 "아무래도 사과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과를 한다고 해서, 유족이 용서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개를 숙이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르포]"이춘재 사과해라" 연쇄살인마, 유족에 입 열까 [한승곤의 사건수첩]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복역한 윤모씨가 재심 첫 공판 출석을 위해 지난 5월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하동 수원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주민들이 입을 모아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피해자는 '8차 사건'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윤 모(53) 씨다. 그는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32년이 지나서야 경찰 사과를 받게 됐다.


1988년 9월16일 당시 22세 농기계 수리공이었던 윤 씨는 경기도 화성군(현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현 진안동)의 한 주택에서 박 모(13) 양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윤 씨는 즉각 상소를 제기했으나 모두 기각됐다. 20년간 옥살이를 한 그는 2009년 42세의 나이로 가석방됐다.


윤 씨의 누명은 2019년 9월 이춘재 신원이 드러나면서 비로소 벗겨졌다. 이춘재는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8차 사건을 비롯해 14건의 살인과 9건의 강간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윤씨 측은 지난해 수원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검찰도 이 사건의 재심 필요성을 인정, 법원에 청구서를 제출하면서 재심이 이뤄지게 됐다.


[르포]"이춘재 사과해라" 연쇄살인마, 유족에 입 열까 [한승곤의 사건수첩] 이춘재의 학창시절 모습 [사진=연합뉴스 ]


윤씨 측 변호인은 재심청구서 제출 전 지난 11월13일 경기지방중앙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재심 과정이 단순히 승패 예측에 머물지 않고 당시 사건 진행 과정에서의 경찰과 검찰, 국과수, 재판, 언론까지 왜 아무도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지 않았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재심 청구의 의미를 설명했다.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 청구를 통해 2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겪은 윤 씨의 무죄를 밝히고, 사법 관행을 바로 잡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면서 "인권 수사, 과학수사 원칙, 무죄 추정 원칙, 증거재판에 관한 원칙 등이 좀 더 명확하게 개선돼야 하고, 재심의 엄격함을 보다 완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도 이춘재를 포함해 당시 사건을 수사하며 무고한 시민들을 잡아다가 구타하고 폭행을 하는 등 온갖 불법을 저지른 사법기관 관계자들의 진심 어린 사과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50대 김 모 씨는 "세월이 흘러도 피해자나 유족들은 매일 매일 고통 속에 살고 있다"라면서 "우리도 이렇게 가슴이 아프고 그런데, 피해자들은 오죽하겠나"라면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나와서 좀 사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재심 재판부는 앞서 지난 2월 윤 씨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김병찬 전 수원지법 형사12부 부장판사는 지난 2월 6일 윤 씨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인 뒤 열린 1차 공판 준비기일에서 사법부를 대표해 윤 씨에게 사과의 뜻을 내비쳤다.


김 전 부장판사는 "윤 씨는 억울하게 잘못된 재판을 받아 장기간 구금됐다"면서 "법원의 판사로 근무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죄송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울러 "검찰은 윤씨가 무죄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기록을 제출하고 있고, 이에 관해 변호인이 별다른 이의 없이 동의한다면 무죄 선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부연했다.


[르포]"이춘재 사과해라" 연쇄살인마, 유족에 입 열까 [한승곤의 사건수첩] 경찰 재수사 결과 이춘재(57)가 경기도 화성 등에서 저지른 연쇄살인 사건 희생자가 14명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범행동기는 성적 욕구 해소였으며 명백한 사이코패스 성향으로 조사됐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주민들의 성토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춘재가 직접 8차 사건에 대한 사법 피해자 윤 씨에 대해 사과의 말을 꺼낼 가능성도 있다. 윤 씨 변호인 측이 이춘재에 대해 재심 재판 증인으로 요청해 이춘재가 재판에 출석,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기 때문이다.


윤 씨 재심을 맡은 박 변호사는 이춘재 증인 신청 이유에 대해 한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왜 이 사람이 연쇄살인범이 됐는지에 대해 법정에서 질문 좀 해봤으면 좋겠다. 그래서 정말 악마가 나오게 된 과정과 원인에 대해서 국민들이 알고, 우리가 (연쇄살인범이 나오지 않도록) 뭘 좀 바꿔 봐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또 "이춘재가 저지른 다른 범행 중 초등생 실종사건의 경우 재심 사건은 아니지만 법정에서 몇 가지라도 물어서 유가족 분들한테 도움이 되는 상황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라면서 8차 사건 재심 결과에 대해 "판사님이 특별기일을 지정해가면서 빨리 심의하고 있는데, 올해 12월 또는 내년 1월이면 결론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에 따르면 이춘재는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뒤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특히 살인을 이어가면서 연쇄살인으로 이어졌고, 범행수법도 점차 잔혹해지고 가학적인 형태로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실시한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에서 이춘재는 "피검사자는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등 사이코패스 성향이 뚜렷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경찰은 이춘재가 자백한 사건 외에 여죄를 찾기 위해 검찰 송치 후에도 수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그러나 모든 혐의에 대한 처벌은 공소시효가 지난 탓에 이뤄질 수 없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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