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학개미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일이 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의 '현금화'다. 지난해 말 기준 버크셔 해서웨이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액은 3340억달러에 이른다. 한화로 약 480조원, 역대 최대 규모다. 시총 380조원인 삼성전자를 현찰로 살 수 있는 셈이다. 미국의 각종 경기지표에서 확인되는 위험 신호 역시 투자자들의 우려를 키우는 모습이다. '오마하의 현인'은 무엇을 내다봤을까.
버핏의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면 몇 가지 눈에 띄는 사항이 있다. 하나는 금융주를 대거 처분했다는 점이다. 버핏은 재무구조가 탄탄하고 주주환원을 적극적으로 하는 기업들을 선호한다. 그럼에도 그는 지난해 자신의 포트폴리오에서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주식을 15%가량 덜어냈다. 씨티그룹 주식은 무려 73%를 팔아치웠다. 버핏이 그토록 좋아하는 배당을 포기하면서 경기 민감주인 금융주를 매각하니 미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난해 버핏은 미국의 S&P500 지수 추종 상장지수펀드(ETF)인 VOO와 SPY도 전량 매도했다. 아내에게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유산의 90%를 S&P500 지수 추종 ETF에 투자하라고 조언했을 정도로 인덱스 투자를 신봉했던 사람이 말이다. 올해 미국 증시가 지난해와 같은 퍼포먼스를 기대하긴 힘들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버핏은 이처럼 자신의 애착 주식들을 팔아치우면서도 피자, 맥주, 라디오 등 소비재와 석유 회사 지분은 사들였다. 이에 일각에선 그가 미국의 내전 발발을 상정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웃지 못할 농담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버핏의 행보를 두고 온갖 추측과 음모론이 난무하면서 투자자들의 셈법도 복잡해지리라 생각한다. 정말로 버핏이 미국 증시의 폭락을 예견해 인생 마지막 '베팅'을 준비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포스트 버핏' 시대에 걸맞은 본인만의 포트폴리오를 가꿔 나갈 수 있도록 신변 정리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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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확실한 건 버핏 역시 사람이고 실수한다는 점이다. 지난주 공개된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 서한에는 '실수'(mistake)라는 단어가 13번 등장한다. 과거 구글, 아마존 대신 IBM에 투자한 것을 후회했던 버핏이 자기 또한 기업의 경제성을 잘못 평가해 투자에 실패할 때가 있음을 시인한 것이다. 이처럼 아무리 투자업계의 거물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고 휩쓸리다 보면 본질을 놓친다. 매일 쏟아지는 뉴스에 세계 증시가 요동치는 요즘, 남들이 하는 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지켜나가는 뚝심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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