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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 넘어 직업·성정체성까지…현실화된 '빅브라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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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대변혁의 시대]<10>우려 커지는 '빅브라더' 체제

카드결제내역·휴대전화 위치추적에
CCTV까지 동원한 확진자 동선 파악
감염병 위기 속 정보 수집, '뉴 노멀' 가능성

SNS 통한 신상털기·혐오 빈번
이태원發 인천 확진자
역학조사서 "무직" 거짓말도

인권위, 세밀한 정보공개 기준 마련 권고
방역당국 2차례 지침 개정
방역과 사생활보호 접점 찾아야

동선 넘어 직업·성정체성까지…현실화된 '빅브라더' 인천 지역에서 '서울 이태원 클럽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8명으로 무더기 발생했다. 13일 인천시 등에 따르면 연수구 2명, 미추홀구 3명, 중구 3명 등 총 8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날 확진 판정을 받은 8명은 이태원 클럽 등을 방문했다가 지난 9일 확진판정을 받은 미추홀구 소재 세움학원 학원강사 A씨의 접촉자로 확인됐다. 사진은 이날 인천 미추홀구 소재 세움학원이 입주한 빌딩 출입문 모습./김현민 기자 kimhyun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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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관주 기자] #장면1. 인천 학원강사 A씨는 이달 초 서울 이태원 킹클럽 등을 방문한 뒤 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A씨는 방역당국의 역학조사에서 직업을 '무직'이라 하고 동선도 속였다. 방역당국은 경찰의 협조를 받아 A씨의 동선을 파악했고 확진 사흘 뒤인 12일 학원강사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A씨가 직업과 동선을 속이는 동안 택시기사ㆍ학생 등을 통해 50명의 'n차 감염' 확진자가 발생했다. 인천시는 A씨를 감염병예방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고, A씨는 지금도 '거짓말 학원강사'로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장면2. 서울 강남구 소재 대형 유흥업소 직원인 B씨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은 이달 1일이다. 그러나 B씨는 최초 역학조사 당시 이 사실을 숨겼다. 4월28일 자택에만 머물렀다고 진술했으나 실제 B씨는 27일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해당 업소에서 근무했다. B씨와 접촉한 인원은 모두 116명으로 파악됐다. 거짓말이 없었다면 방역당국은 더욱 신속하게 접촉자를 분류했을 것이다. B씨는 감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중이다.


코로나19 유행 국면에서 확진자의 거짓말은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감염원이 될 수 있고, 이는 무차별 전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감염병예방법에서 방역 당국의 역학조사에서 고의적으로 사실을 누락ㆍ은폐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에 앞서 우리가 먼저 곱씹어봐야 할 부분이 있다. 자신의 거짓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면서도 이들은 왜 거짓말을 해야만 했을까.



동선 넘어 직업·성정체성까지…현실화된 '빅브라더'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개한 한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성큼 다가온 '빅브라더'의 세상= 각 시도는 홈페이지 첫 화면에 코로나19 대응 현황을 띄우고 있다. 그중에서도 일반 시민이 가장 많이 보는 것은 '확진자 동선'이다. 시장ㆍ군수들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직접 올리는 경우도 있다.


동선 추적은 어떻게 이뤄질까. 단서는 차고 넘친다. 개인 카드 결제 내역, 휴대전화 위치와 기지국 접속 기록, 곳곳에 깔려 있는 CCTV까지 공권력이 한 개인의 움직임을 간파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방역 당국이 1차적으로 확인해 파악이 어렵다면 전국 8000여명의 경찰관으로 구성된 코로나19 신속대응팀이 투입된다.


올해 2월 신천지예수교 대구교회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했을 때 경찰은 방역 당국이 요청한 신천지 신도 9020명 전원 소재 파악에 성공했다.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과 관련해서도 경찰은 방문자 등 6065명의 위치 정보를 확인했다.


동선 넘어 직업·성정체성까지…현실화된 '빅브라더'


현행 감염병예방법은 이러한 추적을 강력히 뒷받침한다. 방역 당국은 관계 기관에 확진자 또는 의심자의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는 물론 진료기록부 등 의료 기록, 출입국 관리 기록, 위치 정보 등을 요구할 수 있다. 사실상 방역 당국이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는 개인의 사생활을 모조리 파헤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평상시 이 정도의 기록을 국가가 강제로 수집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정권의 존폐를 좌지우지할 국민적 반발이 일 사안이다. 하지만 감염병 확산 국면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감염 우려로 이러한 국가의 정보 수집 기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이 더 큰 차원의 사회 안전에 유용하기 때문이라 믿어서다. 그러는 사이 국가가 어떤 사안을 '비상'이라고 간주할 경우 이 같은 무차별적 개인정보 수집은 '뉴노멀(new normalㆍ새 시대의 표준)'로 자리 잡을 여지가 커졌다.


동선 넘어 직업·성정체성까지…현실화된 '빅브라더' 서울시가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를 계기호 서울 시내 모든 유흥시설에 대한 '집합금지 명령'을 발동한 10일 확진자가 방문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이태원 클럽에 집합금지 명령문이 붙어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거짓말'의 비극= 위기는 이달 서울 이태원 클럽발 집단감염으로 찾아왔다. 확진자 동선 공개만으로 이른바 '아우팅(본인의 동의 없이 성적 지향ㆍ정체성이 공개되는 행위)'이 되는 상황을 우려해 검사를 받지 않거나 연락처를 거짓으로 기재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방역 당국이 '익명 검사'를 약속한 뒤에야 검사를 받는 인원이 크게 늘어 접촉자까지 포함하면 4만6000여명이 이태원 관련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거짓말을 한 2명의 이야기다. 이들의 거짓말에 방역 당국은 커다란 혼선을 빚었고, 실제 무수한 추가 확진자 발생으로 이어졌다. 그간 코로나19 전개 상황에 대한 국민적 관심에 비춰보면 자신의 거짓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두 사람 모두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더욱 중요한 무엇인가를 숨기고 싶어 했다. 그것은 자신의 성정체성일 수도, 직장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성공하지는 못했는데, 동선과 직업이 드러나면서 이들은 수많은 비판에 직면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이들의 거짓말이 빚어낸 결과를 생각하면 국민에게 용서받기 어려운 행동임은 분명하다. 다만 '거짓말'에 대한 비판을 넘어 '호모'라든가 '화류계'라든가 하는 혐오 단어로 개인에 대한 비난까지 이뤄지는 점은 생각해볼 문제다. 동선이 공개된 확진자에 대해 '신상털기'를 하거나 확진자를 '바이러스' 취급하는 경우도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다. 일례로 국내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한 확진자의 동선이 공개되자 '불륜설'이 퍼지며 대중의 '가십거리'로 전락한 적이 있다. 과도한 비난이 지속되거나 예상되는 경우 당사자는 움츠러들고 더 숨고자 할 것이다. 이러면 감염병 예방이라는 본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게 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도한 신상털기나 비난 여론이 이어질 경우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검사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동선 넘어 직업·성정체성까지…현실화된 '빅브라더'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힘쓰는 의료진 여러분, 고맙습니다!' 문구가 래핑돼 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접점을 찾아라=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3월9일 최영애 위원장 명의의 성명을 내고 "확진자 개인별로 필요 이상의 사생활 정보가 구체적으로 공개되다 보니 내밀한 사생활이 원치 않게 노출되는 인권침해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며 "신종 감염병 확산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면서 감염 환자의 사생활이 과도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확진 환자 정보 공개에 대한 세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방역 당국에 요청했다. 이에 방역 당국은 몇 차례에 걸쳐 '확진 환자 이동 경로에 대한 정보 공개 지침'을 개정했다. 감염병 확산 예방과 사생활 침해 최소화라는 양립하기 쉽지 않은 두 가치의 접점을 찾자는 취지였다.


1차 개정은 지난 3월14일에 이뤄졌다. 신천지 집단감염 사태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격히 늘어날 때였다. 확진자의 경로와 방문 장소 등을 구체적 날짜와 시간대별로 모두 공개하는 조치가 사생활 침해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그러자 방역 당국은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 즉 상세한 나이와 이름 일부 등을 공개 대상에서 제외했다. 또 시간적ㆍ공간적으로 감염을 우려할 만큼 확진자와의 접촉이 일어난 장소 및 이동수단에 한해 공개하도록 했다.


이어 한 달 뒤인 지난달 12일 내놓은 지침 2판에서는 동선에 포함된 업체의 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정보 공개 기간을 단축했다. 공개 기간이 '확진자가 마지막 접촉자와 접촉한 날로부터 14일 경과 시'까지로 변경됨에 따라 2주가 지나면 정보가 삭제되거나 비공개로 전환되도록 했다. 사생활 침해와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방역 당국의 고심이 엿보인다.



코로나19 사태가 언제쯤 정리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누군가는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될 때를, 누군가는 '집단면역'이 형성됐을 때를 거론하기도 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코로나19 유행으로 우리는 정부의 감시 체계가 어느 정도로 강력한지 명확히 확인했으며, 추후에도 이러한 상황은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는 점이다.




이관주 기자 leekj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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