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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 창백한 푸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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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늘] 창백한 푸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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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여름. 목성과 토성, 천왕성, 해왕성 등 네 행성이 일렬로 섰다. 드문 일이었고, 드문 기회였다. 이 해 8월20일과 9월5일 미국 플로리다의 케이프커내버럴 공군 기지에서 탐사선 두 대가 잇달아 지구를 떠났다. 보이저 2호가 먼저, 1호가 나중이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외태양계 연구를 위해 우주 탐사선을 만들어 쏘아올린 과학 프로젝트를 보이저 계획(Voyager program)이라고 한다. 미지와 가없음을 향한 여정의 시작이었다.


두 탐사선의 임무는 '접근 통과'였다. 보이저 2호는 1979년 7월 목성, 1981년 8월 토성, 1986년 1월 천왕성, 1989년 8월 해왕성을 지났다. 1호는 1979년 3월 목성, 1980년 11월 토성을 통과했다. 탐사선들은 행성과 위성에 대한 자료와 사진을 수없이 전송했다.


행성 탐사를 끝낸 두 보이저호는 계속 비행하면서 새로운 임무를 수행했다. 보이저 1호는 2012년 8월 인간의 피조물로서는 처음으로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우주(星間宇宙·interstellar space)에 진입했다. 성간우주는 별이 없는 공간으로, 은하와 외부 은하 사이를 말한다.


보이저 1호는 1977년 12월19일 보이저 2호를 앞질렀다. 지금은 지구에서 222억㎞ 떨어진 곳에 있다. 2호는 185억㎞ 밖에 있다. 지구에서 보이저 2호가 있는 곳까지 빛의 속도로 달려도 열일곱 시간이 걸린다. 보이저 2호가 관측 결과를 담은 신호를 NASA에 보낸 다음 지구 기술진의 지시를 받으려면 서른네 시간이 필요하다. 두 탐사선은 지구와 다른 환경 속에서 제작된 지 오래된 장비들이 낡으면서 서서히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 과학자들은 보이저 탐사선들의 운명이 2024년을 전후해 끝나리라고 본다. 그때까지 보이저 1, 2호는 지구에 사는 우리가 태양계 밖을 내다볼 수 있는 귀중한 창(窓)이다.


영원을 향해 열린 탐사선의 렌즈가 문득 뒤를 돌아본 순간이 있다. 보이저 1호가 지구를 떠나 60억㎞를 여행했을 때다. NASA는 보이저 1호의 카메라를 돌려 지구를 촬영하도록 했다. 보이저 계획에서 화상 팀을 맡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이 사진을 찍기 위해 여러 해 동안 동료를 설득했다. 보이저 1호는 1990년 오늘 태양과 여섯 행성의 사진을 찍어 보냈다. 해왕성, 천왕성, 토성, 태양, 금성, 지구, 목성. 수성은 태양빛에 묻혀서, 화성은 카메라에 반사된 태양광 때문에 촬영할 수 없었다.


보이저 1호가 태양계에 작별을 고하며 남긴 이 사진을 '가족사진(Family Portrait)'이라고 한다. 사진 속 지구의 크기는 0.12화소에 불과하다. 세이건은 보이저 1호가 보낸 지구 사진에 감동했다. 그래서 쓴 책이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1994)'이다.


"저 점이 우리가 있는 이곳입니다. 저 곳이 우리의 집, 우리 자신입니다(That's here. That's home. That's us). 여러분이 사랑하는, 당신이 아는, 당신이 들어본, 그리고 세상에 존재한 모든 사람이 바로 저 작은 점 위에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중략)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를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있는 외로운 하나의 점입니다. 그 광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안다면, 우리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 해도 우리를 구원해줄 도움이 외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허진석 시인·한국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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