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전쟁과 경영] 피로스의 승리

시계아이콘읽는 시간54초
뉴스듣기 글자크기
[전쟁과 경영] 피로스의 승리 기원전 3세기 그리스 에피로스의 국왕 피로스1세의 조각 모습[이미지출처=나폴리 국립 고고학박물관 홈페이지/www.museoarcheologiconapoli.it]
AD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기업이 어려운 경쟁을 뚫고 유력 사업체를 인수합병한 후 오히려 그 후유증으로 큰 난관에 부딪히는 경우를 가리켜 '피로스의 승리'라고 한다. '승자의 저주'와 같은 말로 쓰이는 이 말은 기원전 3세기 그리스 북서부 에피로스의 왕이자 뛰어난 장군이었던 피로스 1세의 일대기에서 나왔다. 그는 어려운 전투에 참여해 모두 승리를 거뒀지만, 정작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았던 인물로 유명하다.


피로스의 승리는 그가 기원전 280년, 남부 이탈리아 일대 그리스계 도시국가들의 지원요청으로 참전한 '피로스전쟁'에서 비롯됐다. 당시 피로스는 이탈리아로 출병해 아직 동네싸움에만 익숙했던 한수 낮은 로마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 로마군은 8000명의 전사자를 냈고 피로스군은 3000명의 전사자를 냈다. 모두가 승리를 축하하는 가운데 피로스는 "우리가 로마군에게 또 이렇게 승리를 거두면 우린 모두 끝장이다"라고 일갈했다.


이후 5년간 피로스는 이탈리아 내의 수없이 많은 전투에서 로마군과 맞서 연전연승했으나 끝내 이탈리아에서 물러나 에피로스로 돌아가야만 했다. 계속되는 병력 손실에 전체 병력의 3분의 2 이상이 죽어 더 이상 전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로마는 계속되는 패전 속에서도 끊임없이 본국에서 신병을 충원할 수 있었지만, 피로스 군은 충원이 불가능했다. 로마군이 그의 약점을 정확하게 꿰뚫고 소모전으로 전쟁을 몰고 갔고, 결국 피로스는 전투는 모두 이겼지만 전쟁은 지고 말았다.


그가 이렇게 전략적 패배를 당한 것은 동맹관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않고 자신의 군사력만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리스계 도시국가들에게 로마군과 싸우는 대신 막대한 전비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실상 동맹국들의 구원보다는 군자금으로 병력을 키워 이탈리아 남부 전역을 지배하려는 계획이었다. 군자금만 요구하며 자기 이익대로만 움직이는 그에게 그리스계 도시국가들은 즉시 등을 돌려버렸고, 제대로 된 지원을 보내주지 않게 됐다. 피로스가 제아무리 알렉산더 대왕의 재림이란 평가까지 받았던 군사적 천재였다해도 보급없이 전쟁을 계속 이어갈 도리는 없었다.



그의 일대기는 단순히 승자의 저주뿐만 아니라 본국에서 지정학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전쟁을 벌일 때, 동맹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일화로 남게 됐다. 동맹의 전략적 가치는 결코 돈으로만 계산할 수 없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긴 셈이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