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 유적에 2000년 보존된 빵 화석
매일 아침 노예 시켜 식사 빵 배달 받아
정치 입문도 가능했던 제빵소 주인
1930년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 고고학자들은 완벽한 형상을 유지한 채 약 2000년을 버틴 '빵 화석'을 발견했다. 서기 79년 아침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섭씨 400도의 고열, 화산재에 묻힌 채 순식간에 탄화한 빵이었다.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견된 이 빵은 곧 '헤르쿨라네움 빵'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아침 식사였을 이 빵 안에는 2000년간 보존된 로마인의 삶이 담겨 있었다.
귀족이 매일 아침 먹던 빵…'도장'이 찍혔다
헤르쿨라네움 빵은 둥근 원반 모양이며, 윗부분이 부풀었고, 마치 피자처럼 여덟 조각으로 반듯한 칼자국이 났다. 이 빵은 로마인들이 아침 식사로 즐겨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칼자국이 난 결을 따라 빵을 찢어 향신료, 치즈, 버터, 생선 등을 곁들여 섭취한 것으로 보인다.
폼페이 헤르쿨라네움은 일종의 '공동 제빵소'로 추측된다. 고대 로마인들은 이곳에 빵을 주문했다가, 다음 날 아침 노예를 시켜 완성된 빵을 배달받았다. 이때 빵에는 도둑을 방지하기 위한 독특한 '인장'이 찍혔다. 헤르쿨라네움 빵 겉면에도 인장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는데, "Q. 그라니우스 베루스의 노예, 켈레르의 소유"라는 문구다.
빵 인장은 품질 보증 역할도 겸했다. 빵에 노예의 이름이 새겨졌으니, 만일 빵 맛이 변했거나 반죽 상태가 나쁘다면 해당 노예를 불러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인장에 적힌 빵 배달 노예, 켈레르는 베수비오 화산 폭발의 생존자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은 훗날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인명 기록에 수록됐으며, 노예의 삶을 벗어나 자유인 신분을 얻었다.
귀족과 노예는 먹는 빵 색깔부터 달라
헤르쿨라네움 빵의 성분을 분석하면서 학자들은 고대 로마의 신분제는 아침밥부터 철저히 나뉘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폼페이 유적에는 헤르쿨라네움 빵과 유사한 식사용 빵 화석이 여러 개 발견됐는데, 모두 빵 반죽으로 쓰인 곡물 성분이 제각각이었다.
귀족들이 먹었을 빵은 모두 하얀 밀가루를 빻아 만든 흰 빵이었다. 반면 밀알이나 보리를 짓이겨 만든 거무튀튀하고 거친 빵도 있었는데, 이런 질 낮은 빵은 노예들이 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천연 효모, 포도즙으로 빵 부풀린 고대인들
헤르쿨라네움 빵은 발효 빵, 즉 사워도우다. 2000년 전 고대인들도 빵을 발효시켜 먹었다는 뜻이다. 효모(이스트) 개념이 없었던 고대인들은 어떻게 사워도우를 만들 수 있었을까.
2020년 영국 대영박물관은 폼페이와 협력, '헤르쿨라네움 전시회'를 열면서 이 의문을 해결했다. 이탈리아 출신 유명 셰프 조르지오 로카델리와 함께 효모 없이 헤르쿨라네움 빵을 재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로카델리는 효모 대신 천연 발효종을 사용했다. 밀가루, 물, 곡물 등 내부의 유산균을 장기간 배양해 만들어지는 '천연 효모'다. 주로 이전에 쓰다 남은 밀가루를 조금씩 모아 새 밀가루와 섞는 방식으로 발효를 유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혹은 포도즙을 효모 대용으로 쓰기도 했다.
제빵소, 권력으로 향하는 길이었을까
폼페이 시민들의 식사를 책임지던 헤르쿨라네움 제빵소는 누가 운영했을까. 헤르쿨라네움 유적에는 제빵소 소유주로 보이는 부부의 그림이 보존됐다. 이들은 '테렌티우스 네오 부부'로, 근엄한 표정으로 화가를 정면으로 바라본 채 서있다. 남편인 테렌티우스 네오는 하얀 토가를, 아내는 거래 장부로 보이는 검은 밀랍 판과 펜을 든 모습이다.
부부는 제빵소를 운영하며 상당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추정된다. 테렌티우스가 입은 하얀 토가는 '토가 칸디다', 즉 공직 선거에 출마하는 의원 후보자가 입는 의복이었기 때문이다. 토가 칸디다의 하얀색은 청렴함과 도덕성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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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시대에도 정치에 출마하려면 상당한 재원과 인맥을 보유해야 했다. 부부는 훌륭한 품질의 빵을 구워 귀족들의 환심을 사고, 돈도 벌었을 것이다. 다만 테렌티우스가 실제로 청렴한 사람이었을지, 또 현명한 정치를 펼 위인이었을지는 영원한 미완의 질문으로 남았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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