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소송·사회적 비용 낭비
독일, 대법원 재판 재판소원 인용률 0%대
사법체계 근간을 흔드는 결정
최석진 로앤비즈 스페셜리스트
2016년 축구 경기에 비디오 판독 시스템(VAR)이 도입되기 전까지 백년이 넘는 기간 득점이나 반칙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심판의 몫이었다.
월드컵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 명백한 오심이 나와도 절대 사후에 심판의 판정이나 경기 결과를 번복할 수 없었던 것은 "심판의 판정은 최종적이다"라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심판의 권위가 떨어져 매 경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재판도 마찬가지다. 하급심의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3심제를 보장하되, 법적 안정성을 위해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최종 확정 판결에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한 것이 헌법제정권자인 국민과 입법권자의 결단이다. 그런 점에서 재판소원은 여러 문제점을 갖고 있다.
먼저 우리 헌법 체계와 규정에 맞지 않아 위헌 소지가 크다. 재판소원 도입에 찬성하는 이들이 모델로 삼은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헌법상 법원과 함께 사법부에 속한 것과 달리 우리 헌법은 제5장에 법원을, 제6장에 헌법재판소를 각각 따로 규정, 양 기관이 별개의 독립된 헌법기관임을 분명하게 선언했다.
나아가 헌법 제107조는 '법률'의 위헌성은 헌재가, '명령·규칙·처분'의 위헌성은 대법원이 각각 최종적으로 심사하게 하면서, 헌재가 대법원의 위헌성 판단을 다시 심판할 수 있는 경우를 규정하지 않았다. 헌재가 법원의 재판을 다시 심사하는 것을 헌법이 예정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 개정 없이 법률을 개정해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헌적이다.
애초 헌법재판소법을 제정한 입법자들이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한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정부나 국회와 달리 법원은 기본적으로 기본권 보호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점이었다. 확정된 법원 재판의 위헌성을 헌재가 판단하게 한다는 것이 언뜻 보기에는 기본권 보호에 크게 도움될 것처럼 보이지만,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기본권을 침해하는 재판이 과연 1년에 몇 건이나 되겠는가. 독일의 대법원 재판에 대한 재판소원 인용률이 0%대인 것을 보면 생각처럼 실익이 크지 않은 제도라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대법원 위에 또 다른 헌법기관을 '옥상옥'으로 세워 제4심 역할을 맡기면 유죄를 선고받은 피고인이나 패소한 당사자 상당수가 사건을 다시 헌재로 가져갈 것이다. 수년에 걸친 재판이 끝나도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고, 헌재가 재판을 취소하면 다시 법원에서 재판 절차가 계속되는 무한 소송의 굴레 속에 분쟁 해결은 지연되고, 국가적 낭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또 헌재법상 헌법소원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기 때문에 소송비용이 부담되는 중소기업이나 서민에게는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수 있는 반면,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이나 특권층이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재판 집행을 늦춰 상대방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헌법소원을 이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결국 웃는 건 범죄자나 변호사들 뿐일 것"이라는 자조 섞인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재판소원은 어디까지나 사안에 대한 헌법적 판단이지 제4심이 아니라는 주장도 외면만 강조한 말장난에 가깝다. 법원의 구체적인 사실 인정이나 법률 적용에 대한 검토와 판단 없이 재판의 위헌·위법 여부나 기본권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헌재가 법률에 대한 최종 해석권을 가진 대법원의 판단을 뒤집을 수 있다면 결국 제4심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정치적 사법기관'으로 불리는 헌재는 정치로부터의 독립성, 중립성이 대법원에 비해 현저히 열악하다. 임명권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헌법재판관들이 완전히 상반된 의견을 내며 정치 성향을 드러낸 결정이 어디 한둘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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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사법제도의 근본 틀을 바꾸는 일인데도, 더불어민주당은 충분한 공론화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27일 오후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서 재판소원을 허용하는 헌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보인다.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다"고 생색을 내겠지만, 그로 인해 발생할 숱한 부작용과 피해는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다.
최석진 로앤비즈 스페셜리스트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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