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18만명 해외 이주 추산
미국 시민권 포기 신청도 급증
유럽행 거주 허가 급증
'이민자의 나라'로 불려온 미국에서 지난해 인구 순유출이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대공황 시기 이후 처음이라는 추산이다.
25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 등 15개국의 이민·거주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최소 18만명의 미국인이 다른 나라로 이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행정부(1953∼1961년) 이후 해외로 빠져나간 인구를 종합적으로 집계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각국의 거주·이민 통계 등 여러 지표에서 미국인 유출 증가 흐름이 확인된다.
WSJ 분석에 따르면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중 대다수 국가에서 거주·취업을 목적으로 입국한 미국인 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가별로 보면 증가세는 더욱 뚜렷하다. 포르투갈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포르투갈 거주 미국인은 2만6000명으로, 2020년 대비 약 450% 급증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에서는 최근 10년 사이 미국인 거주자가 거의 두 배로 늘었고, 체코에서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아일랜드로 지난해 이주한 미국인은 9600명으로 전년(4900명)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독일로 이주한 미국인 수가 미국으로 건너간 독일인보다 많았다.
미국인의 해외 이주는 시민권 포기 통계에서도 감지된다. 이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외국 여권 취득이나 해외 소득 과세 문제 등을 이유로 미국 시민권 포기를 신청하는 사례가 급증해, 관련 업무 수개월 치가 밀려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2024년 시민권 포기 신청 건수는 전년 대비 48% 늘었으며, 지난해에는 증가 폭이 더 컸을 것으로 WSJ은 추정했다.
미 싱크탱크 브루킹스연구소의 분석도 비슷하다. 연구소는 지난해 미국의 인구 순유출 규모를 약 15만명으로 추산했으며, 올해는 그 규모가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통계상 미국 인구의 마지막 순유출은 193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을 떠난 이주민들이 가장 많이 선택한 국가는 소련이었고, 규모는 10만명을 넘었다.
최근에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이 새로운 목적지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보다 저렴한 의료 서비스와 주거비, 걷기 좋은 도시 환경, 영어 기반 공동 근무 공간, 상대적으로 낮은 학비와 안전한 교육 환경 등이 매력 요인으로 꼽힌다. 일부 유럽 국가는 고소득 전문직이나 원격 근무자를 유치하기 위해 비자 요건을 완화하고 세제를 조정하는 등 경쟁에 나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인구 순유출의 배경으로 총기 폭력 문제, 높은 생활비, 정치적 혼란 등을 지목한다. 동시에 반대로 미국의 높은 임금 수준이 학생·원격 근무자·은퇴자들에게 해외 정착을 가능하게 하는 재정적 기반이 된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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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의 해외 이주를 연구해온 템플대 케이틀린 조이스 연구원은 최근 흐름이 "'미국이 최고의 삶의 질을 제공하며 모두가 이주하고 싶어 하는 나라'라는 미국 예외주의 인식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해외로 이주한 미국인들이 그곳의 생활이 더 낫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김현정 기자 kimhj202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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