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반느'서 나약함 직시하는 서늘한 눈빛
시선과 침묵으로 존엄 회복하며 자립 서사 완성
흠집 난 삶이 건네는 씩씩한 위로 연기해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의 미정(고아성)은 철저히 소외된 인물이다. 세상이 규정한 잣대 밑바닥에서 숨죽여 살아간다. 고아성은 이 척박한 삶을 값싼 동정이나 전형적인 피해자의 틀에 가두지 않았다. 얄팍한 장막 뒤에 숨는 대신,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눈빛으로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연대의 서사를 완성했다.
단단한 시선에 도달하기 위한 첫걸음은 나약한 자신과의 대면이었다. 그는 극 초반의 미정에 대해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며 평생을 살아온,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미생물 같은 인물"이라고 정의했다.
이 지독한 투명성을 스크린에 구현하는 과정은 철저한 비워냄에서 출발했다. 파격적인 특수 분장으로 시선을 끄는 손쉬운 길을 외면했다. 대신 자신의 나약한 부분을 뼈저리게 아는 사람의 위축된 눈빛을 가지려 애썼다. 고아성은 "저 역시 자신이 없고 초라한 모습을 혼자 감출 때가 많다"며 "그 나약함을 정면에서 마주해야 가능했던 작업"이라고 고백했다.
지독한 고립 속에서 피어나는 미정과 경록(문상민)의 사랑은 달콤한 로맨스가 아니다. 깊게 흠집 난 남녀의 불완전한 포옹이다. 고아성은 이 아슬아슬한 감정선을 같은 곳을 바라보는 평행의 시선으로 조율했다. 얼굴을 마주 보는 대신, 곁에 서서 짙은 어둠을 함께 응시하며 상대의 결핍을 더듬었다. 그는 "좀처럼 서로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긴장을 주고 싶었다"며 "이 팽팽한 시선이 타자화됐던 미정에게 서사의 축이 넘어온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LP 바의 비좁은 청음실에 나란히 앉아 노래 '이런 마음 아나요'를 감상하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대사는 단 한마디도 없다. 미정은 선율에 고개를 끄덕이다 조심스레 경록의 얼굴을 훔쳐본다. 경록이 고개를 돌리면 황급히 눈을 감아버리고, 시선이 비껴가면 다시 몰래 눈을 뜬다. 엇갈리는 시선만으로 들키고 싶지 않은 떨림을 숨바꼭질처럼 보여준다. 고아성은 "평생 일만 하던 두 사람에게 처음으로 낭만이 허락된 순간"이라며 "호흡을 맞춘 문상민에게 제 심장 소리가 들릴까 봐, 숨을 꾹 참고 연기했다"고 회고했다.
빛을 머금은 미정은 관찰 대상의 굴레를 단호히 벗어던진다. 늘 바닥을 향해 있던 시선을 단단히 들어 올리며 감정의 주체로 도약한다. 자신을 멸시하는 세라(이이담)를 똑바로 바라보며 "너만 특별하다는 착각을 버려"라고 응수한다. 타인의 온기를 동력 삼아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깨닫고, 훼손됐던 고유한 존엄을 찬란하게 복원한다. 고아성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어깨를 쫙 폈으면 좋겠어요'라는 경록의 말을 가슴 깊이 새긴 미정의 변화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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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짚어낸 이들 관계의 본질은 독립적인 홀로서기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미정이 경록이 남긴 온기를 지렛대 삼아 제 몫의 삶을 꼿꼿하게 세울 수 있다고 믿는다. 연민과 연대, 사랑을 차례로 연기하며 얻은 확신이다. "두 인물이 함께 있을 때의 방향도 중요하지만, 혼자 남겨졌을 때 스스로를 씩씩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사랑 아닐까요?"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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