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 교차운행 하루 만에 가동
정부가 추진하는 고속철도 통합의 세부 쟁점을 논의할 '노사정 협의체'가 본격적으로 가동된다. 서울역과 수서역에서 시범 교차운행이 시작된 지 하루 만에 통합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정부와 이해당사자가 머리를 맞대는 것이다. 통합이라는 방향만 제시됐을 뿐, 구체적인 방식이나 조직 편제, 고용승계 등 이견을 좁히기 어려운 쟁점이 여전해 향후 논의 결과에 관심이 모인다.
철도업계에 따르면 26일 충남 천안아산역 인근에서 노사정 협의체 첫 회의가 열린다. 김태병 국토교통부 철도국장이 주재하며 코레일 사측과 전국철도노동조합, 주식회사 에스알(SR) 사측과 에스알 노동조합, 외부 전문가 약 6인이 참석한다. 협의체는 앞으로 매주 1회 정례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기관 통합의 방식과 방향을 포함해 약 7개 안건이 다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첫 회의인 만큼 큰 틀에서 쟁점을 확인하고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일정표는 나왔지만 어떤 형태로 한 조직이 될지가 핵심"이라며 "이 방향이 정해져야 후속 논의가 가능한데,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했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단순 흡수 통합이 아닌 기관 대 기관 통합"이라고 강조해왔으나 통합 기관이 구체적으로 어떤 조직 모델을 뜻하는지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독립사업부로 둘지 지역본부 체계로 흡수할지 등 에스알의 조직 편제 방식도 협의체에서 본격 논의될 전망이다. 영업양수도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되지만 이 경우 고용승계와 처우 조정을 둘러싼 노무 합의가 핵심 변수여서 연내 마무리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원화된 고속철도 통합'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토교통부 업무보고에서 두 기관 통합을 언급하며 "형식적인 절차 거친다고 시간 끌지 말고 빨리 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같은 달 '이원화된 고속철도 통합 로드맵'을 발표하며 올해 기관 통합 완료를 목표로 제시했다.
특수법인 대 주식회사…화학적 통합까지는 먼 길
25일 서울역에 정차한 SRT 열차의 모습. 국내 양대 고속철도인 KTX와 SRT의 통합을 앞두고 이날 KTX 철도차량을 수서역에, SRT 철도차량을 서울역에 투입하는 시범 교차운행이 시작됐다. 연합뉴스
통합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추진되고 있다. 당초 통합 완료 시점은 3년 후로 거론됐으나, 최근 로드맵에서는 2026년 말 또는 그 이전으로 일정이 급격히 단축됐다. 에스알 측은 "정권이 바뀌면서 급속도로 추진되고 있다"며 "통합 후의 부작용에 대해 심도 있게 검토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했다.
국토부는 고속철도 통합 외에도 코레일 자회사 구조조정 태스크포스(TF)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어 행정력이 분산된 상태다. 에스알 노조는 "철도국장이 바뀌고 나서 진행이 빨라지는 듯하더니 지금은 여러 TF가 겹쳐 현장에서는 감을 잡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어제 한 얘기가 오늘 달라질 정도로 정책적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했다.
물리적인 결합을 서두르느라 '화학적 통합'을 위한 제도적 정비가 뒷전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코레일은 공공기관 특수법인이자 호봉제를 채택하고 있는 반면, 에스알은 주식회사로 직무·성과 중심의 연봉제(직무급·성과급) 체계를 적용한다. 근무 형태, 복지 체계도 다르다. 에스알 내부에서는 인사 및 승진 차별에 대한 공포감도 상당하다.
과거 공공기관 통합 과정에서 조직 융합이 난항을 겪은 선례는 적지 않다.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합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출범했지만 양사 출신 노조가 단일 노조로 전환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2017년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통합해 서울교통공사가 됐지만, 내부적으로는 아직도 이원화된 체계다.
8800억 절감 효과 대 21조 부채 압박…운임 쟁점
지난해 10월16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철도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철도노동자 총력결의대회’를 열고 고속철도(KTX·SRT) 기관 통합 등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통합으로 인한 경쟁 체제 종식은 서비스 질 저하와 요금 인상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10년간 에스알은 KTX 대비 10% 낮은 운임을 유지하며 약 8800억원의 국민 교통비를 절감해왔다. 또한 코레일이 기술적 한계를 이유로 미뤄왔던 좌석 충전 설비 도입과 예매 앱 '코레일톡' 열차 실시간 위치 조회, 특실 간식 서비스 재개는 모두 에스알과의 경쟁 과정에서 얻어낸 성과다. 통합 이후 단일 기관이 될 경우 이러한 혁신 동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21조원의 누적 부채를 안고 있는 코레일 상황을 고려할 때, 통합 이후 노사가 한목소리로 요금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코레일은 KTX 운임이 2011년 이후 동결된 상태에서 노후 차량 교체 등을 비용 부담을 이유로 17% 인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다만 노후 차량 교체 자금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철도산업발전기본법 개정으로 마련되면서 운임 인상 압박이 일부 완화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차량 교체비 지원은 신규 투자에 대한 부담을 일부 덜어줄 뿐, 이미 고착화된 21조 원 규모의 누적 부채와 이에 따른 막대한 이자 비용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많다. 특히 최근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동력비 급등과 인건비 상승 등 운영 원가가 지속해서 오르고 있어 정부 보조금만으로는 영업 손실을 메우기에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에스알 노조에 따르면 코레일이 SRT 수준으로 운임을 낮출 경우 연간 2000억~2500억원의 추가 적자가 발생한다.
파업 시 대체 운행 수단이 소멸한다는 점도 안전과 편익 측면에서 풀어야 할 과제다. 그간 코레일 노조가 파업하더라도 에스알이 운행을 유지해 고속철도가 완전히 멈추는 사태를 막아왔지만 단일 기관으로 통합되면 이 완충장치가 사라진다. 정부는 시민 불편을 막기 위해 필수 유지 운행률 상향과 비상 인력 확보 매뉴얼 마련 등의 대책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구체적인 대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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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올 상반기 중 KTX산천과 SRT를 연결하는 중련(重聯) 시범운행을 거쳐 하반기 통합운행으로 확대하고, 연내 예·발매 시스템과 운임 제도를 일원화한다는 계획이다. 정부 로드맵대로 연내 통합이 완료되면 양사는 2013년 분리 이후 13년 만에 재결합하며 2016년 도입된 고속철도 경쟁 체제는 10년 만에 종식된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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