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나미술관 c-lab 9.0 '미술관/실험실'
언어·리듬·이야기로 흔든 '미술관의 규칙'
"미술관은 왜 실험하는가"
이 질문은 선언이 아니라, 관객을 작업 한가운데로 끌어들이는 장치로 작동한다. 코리아나미술관의 c-lab 9.0 '미술관/실험실'은 미술관을 결과의 저장고가 아니라, 실패와 변이가 허용되는 실험실로 설정한다. 전시는 이 설정을 설명하기보다, 세 개의 서로 다른 실험을 병치해 체감하게 만든다.
김현석의 'CODA'는 언어를 다룬다. 정확히는, 언어가 더 이상 인간의 전유물이 아닐 때 무엇이 붕괴되는지를 묻는다. AGI가 언어를 관리·통제하는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작업에서 관객은 '자연어'의 잔해를 더듬듯 참여한다. 발화는 곧 데이터가 되고, 의미는 번역과 치환의 과정에서 마모된다. 제목처럼 이 작업은 종결부에 가깝다. 언어의 끝을 상상하게 만드는 동시에,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사고 체계가 얼마나 기술 환경에 의존해 있는지를 드러낸다.
안광휘의 'BE KIND, REWIND, DOUBLE BIND'는 리듬으로 미술관을 흔든다. 힙합과 랩은 여기서 장르가 아니라 비평의 방식이다. 서구 미술사와 흑인 문화의 번역본을 소비해온 한국 미술의 조건을 끌어와, '가짜'와 '무근본'이라는 불편한 언어를 정면으로 호출한다. 가장 거리적인 리듬이 가장 제도적인 공간과 충돌할 때, 미술관을 지탱해온 언어와 형식은 삐걱거린다. 이 작업은 그 불편함을 해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견디게 만든다.
차지량의 퍼포먼스 '소설'은 미술관을 이야기의 무대로 바꾼다. 자원이 고갈된 먼 미래, 텅 빈 미술관을 찾은 '사람이자 영혼'으로서 관객은 소리와 이미지, 시공간 장치를 따라 이동한다. 공연은 고정된 무대 없이 발생하고, 관객의 참여에 따라 미세하게 변주된다. 이곳에서 미술관은 보존의 장소가 아니라, 사라진 것들과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것들이 잠시 머무는 페이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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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실험실'은 친절한 전시가 아니다. 설명 대신 상황을 던지고, 감상의 안전지대를 허물어 관객을 실험에 포함시킨다. 미술관은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시험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을 끝까지 회수하지 않은 채, 전시는 다음 실험을 향해 열려 있다. 전시는 3월 14일 까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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