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로 여겨지던 식물이 호르몬제 원료를 생산하는 '원료공장'으로 탈바꿈했다. 가짓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 '까마중(Solanum nigrum)'이 주인공이다. 길가나 빈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식물은 검은 열매 모양이 까마귀 눈을 닮았다는 데서 '까마중'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원료공장으로의 탈바꿈은 유전자 교정기술로 식물 대사경로를 재설계해 가능해졌다.
KAIST는 생명과학과 김상규 교수 연구팀과 경상국립대 박순주 교수 연구팀이 까마중의 유전자를 조절해 코르티코스테로이드(소염·면역 조절 치료제)와 성호르몬(피임약·호르몬 치료제) 등의 필수 원료 '디오스게닌(Diosgenin)'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22일 밝혔다.
디오스게닌은 현대 약학에서 핵심적인 출발 물질이다. 소염제와 가려움증 치료제 등 스테로이드 호르몬제의 합성 원료로 사용된다. 이 물질은 주로 '마(Dioscorea)'의 뿌리에서 추출해 왔다. 하지만 마는 수확까지 수년이 소요되고 유전자 조작이 어려워 생산량을 늘리는 데 제약이 따랐다.
공동연구팀은 이를 극복하는 데 까마중의 특성에 주목했다. 한 세대가 3개월 안팎으로 짧고 유전자 조절이 용이한 점 그리고 까마중이 만드는 독성 스테로이드 성분인 '솔라소딘(Solasodine)'과 디오스게닌이 구조적으로 매우 유사한 점을 활용하는 방안을 고안한 것이다.
먼저 유전자 가위(CRISPR-Cas9) 기술로 까마중의 특정 유전자인 '게임4(SnGAME4)'를 교정한 후 이를 통해 독성 성분으로 이어지는 대사 경로를 차단하고 디오스게닌이 생성될 수 있게 대사 흐름을 전환했다.
또 잎 조직에서 반응을 조절하는 '게임25(SnGAME25)' 까마중 유전자를 추가로 억제해 열매와 잎 모두에서 디오스게닌 축적량을 극대화했다.
특히 까마중이 자체적으로 보유한 효소 '베타-글루코시다아제(SaF26G)'를 이용해 성분 추출이 용이한 형태로 전환하는 '자연 발효' 공정을 접목했다. 이 결과 까마중의 녹색 열매에서 기존 산업용 원료 식물인 마와 유사한 수준의 디오스게닌 확보가 가능했다는 게 공동연구팀의 설명이다.
여기에 더해 경상국립대 연구팀이 개발한 '열매 수확량 증대 기술(S 유전자 변이)'을 적용해 식물 1개체당 열매 생산량을 대폭 향상시킨 점도 이번 연구에서 눈여겨볼 지점이다. 이를 통해 공동연구팀은 동일 면적에서 보다 많은 의약품 원료를 생산할 수 있는 산업적 기반을 마련했다.
S 유전자 변이는 식물의 꽃대 형성을 조절하는 유전자로 발현량 조절을 통해 1개체당 열매 생산량을 늘리는 역할을 한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잡초가 가진 고유한 대사 경로를 정밀하게 재설계해 고부가가치 약용 성분을 생산할 수 있게 한 사례"라며 "공동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토대로 향후 스테로이드 의약품 원료를 보다 안정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방식으로 확보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에는 KAIST 임종부 박사와 경상국립대 김근화·허정 박사가 공동 제1 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성과(논문)는 최근 식물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플랜트 바이오테크놀로지 저널(Plant Biotechnology Journal)'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대전=정일웅 기자 jiw30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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