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된 살육극마저 현실로 만드는 부동산 가격
집이 인간을 집어삼키는 주객전도의 세상
21세기 도시 괴담의 본질은 원한이 아니라 평당 가격이다. 2010년 홍콩에서 개봉해 16년 만에 한국을 찾은 펑하오샹 감독의 영화 '드림홈'은 이 서늘한 진리를 피의 제의(祭儀)처럼 수행한다. 도구는 잔혹하고 태도는 냉소적이다. 과장된 판타지로 치부될 법한 지옥도지만, 서울의 풍경과 겹치는 순간 섬뜩한 우화가 된다.
영화는 살육에 앞서 건조한 통계로 관객을 압도한다. "2007년 홍콩의 집값은 15%가 올라, 600평방 피트(약 17평)의 가격이 700만(12억4000만원) 홍콩달러를 넘어섰다. (중략) 이 미친 도시에서 살길 원하는 사람은 도시보다 더 미쳐야 한다." 주인공 라이(조시 호)가 왜 괴물이 되는지를 변호하는 공소장이다.
노동은 자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이 잔인한 생태계에서 성실함은 무능의 동의어일 뿐이다. 라이는 아버지의 병원비까지 쥐어짜 아파트 매입 자금을 마련하지만, 집주인의 일방적인 호가 인상으로 계약에 실패한다. 절망의 끝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부동산 대책을 설계한다. 사람이 죽어 나간 집은 값이 폭락한다는 부동산의 속성을 떠올리고는, 멀쩡한 아파트를 인위적인 흉가로 만들어 헐값에 주워 담기로 결심한다.
냉정히 보면 서사의 개연성은 헐겁기 그지없다. 가냘픈 체구의 여성이 건장한 장정들을 도륙하고, 온 아파트가 떠나가라 비명을 질러대도 경찰은 오지 않는다. 이 서사의 빈틈을 메우는 건 역설적이게도 현실의 무게다. 관객은 잔혹한 살육극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묘한 기시감을 떨치기 어렵다. 살인의 방식은 비현실적이지만, 집을 향한 절박한 욕망만큼은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살인적인 집값은 단순한 수급 불균형이 아니다. 정부의 고지가(高地價) 정책과 재벌의 독점, 그리고 철거 용역인 삼합회의 공생이 빚어낸 구조적 합작품이다. 어릴 적 라이의 가족을 쫓아내던 깡패들의 폭력은 바로 이 시스템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결정적 장면이다. 그녀에게 내 집 마련은 누군가를 짓밟아야 쟁취할 수 있는 전쟁임을 각인시키는 원초적 트라우마가 된다. 그녀의 살인은 단순한 광기가 아니라 도시가 주입한 구조적 폭력의 내면화인 것이다.
생존을 위해 라이는 가해자의 문법을 답습한다. 자본이 개발을 명분으로 원주민을 밀어냈듯, 생존을 내세워 이웃을 도살한다. 진공청소기와 도어록, 공구함 같은 생활용품이 흉기로 돌변하는 연출은 아이러니하다. 안식처를 지키던 도구가 파괴하는 무기로 전락한다. 자본주의가 평범한 개인을 어떻게 시스템의 청부살인업자로 개조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서늘한 은유다.
라이의 계획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진정한 공포는 '집'의 의미가 붕괴하는 과정 그 자체다. 그녀는 집값을 떨어뜨리기 위해 아파트를 물리적 흉가로 만들지만, 자본의 논리에 영혼을 잠식당해 걸어 다니는 흉기가 돼버린다. 인간의 존엄을 지불하고 얻은 콘크리트 상자를 과연 '스위트 홈'이라 부를 수 있을까. 피를 닦아낸 자리에 남는 건 안식이 아니라 지독한 허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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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홈'이 허술한 개연성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사회학적 보고서로 읽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살인마의 칼부림은 개인의 일탈이 아닌, 시스템이 잉태한 필연적 비극이다. 욕망이라는 전차를 타고 파국으로 질주하는 도시에서, 우리는 과연 라이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이 집을 소유하는 게 아니라, 집이 사람을 집어삼키는 주객전도의 세상. 이 영화는 그 전복된 세계를 증언하는 묵시록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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