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TV 정보공유 '담합'으로 볼 근거 약해
리스크 비용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도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처분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더 많은 이익을 위해 정보를 교환한 탐욕스러운 은행이 되는 겁니다.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 금융당국의 행정지도에 따랐을 뿐인데 말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에 대해 담보인정비율(LTV)을 담합했다며 총 27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데 따른 한 은행권 관계자의 탄식이다.
공정위는 4대 은행이 LTV 정보를 공유해 LTV 비율을 10%포인트가량 내려 대출 한도를 제한한 것을 '담합'으로 봤다. 정보 교환 행위가 담합으로 인정되려면 해당 행위로 은행이 이득을 얻어야 하지만, 정작 은행의 이자 수익은 감소했다. 이에 공정위는 LTV가 낮게 설정되면 대출 금액이 줄어드는 만큼 부족분을 신용대출로 유도해 추가 이자 이익을 얻었다는 논리를 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는 더 높은 LTV를 적용하는 다른 금융권이라는 선택지가 있었다. 무엇보다 신용대출 이용은 소비자들의 자율적 선택일 뿐, 은행이 이를 강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담합 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과도한 해석을 차치하더라도 은행 입장에선 억울할 수밖에 없다. LTV는 금융위원회가 거시건전성을 목표로 설계한 정책 수단이고, 금융감독원은 이를 감독한다. 즉, LTV 정보 자체는 금융 리스크 관리 도구로 봐야 마땅하다. 더욱이 금융당국이 수차례 부행장들을 소집해 가계부채 점검 회의를 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은행 간 LTV 정보 공유는 가계부채 관리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협조 행위'에 가깝다.
공정위의 판단은 세계적인 추세와도 거리가 있다. 유럽연합(EU)과 영국, 호주 등은 소비자 보호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LTV 정보 공유를 장려하기도 한다. 정보 공유가 경쟁을 제한하는 수단이 아닌, 소비자 이익을 위한 공공성을 띤다고 본 것이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가 가장 무섭다'는 말이 있다. 칼자루를 쥔 공정위가 이를 남용할 때 시장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우리는 이미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사건으로 경험했다. 공정위가 4년간 조사했음에도 결국 증거 부족으로 무혐의 결론이 났고, 그사이 발생한 리스크 관리 비용과 불확실성의 대가는 고스란히 은행과 소비자가 떠안았다.
이번 과징금 처분 역시 4대 은행에 2720억원의 직접적 비용뿐 아니라 향후 10년간 약 1조6320억원에 달하는 운영리스크를 위험가중자산(RWA)으로 반영하게 만드는 구조적 부담을 남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생산적 금융과 가계부채의 질적 관리를 동시에 요구받는 상황에서 금융 안정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리스크 관리 행위마저 사후적으로 담합이라 규정된다면 은행은 보수적 영업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그 비용은 결국 다시 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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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질서를 바로잡는 칼이 금융 시스템의 혈관을 자르는 흉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정위가 진정으로 보호해야 할 것이 경쟁 그 자체인지, 아니면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시장의 기반과 신뢰인지 보다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때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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