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빼가기 통로 된 FDI
일본 2019년부터 파격 하향
미국도 안보위해 판단땐 개입
재계 "지나치게 느슨 개정 필요"
우회·그린필드투자도 사각지대
외국인직접투자(FDI)가 우리 첨단기술을 빼가기 위한 우회 경로로 악용되면서 제도의 '안보 사각지대'를 서둘러 메워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주요 선진국들이 지분 1%까지 꼼꼼히 들여다보며 빗장을 걸어 잠그는 동안, 한국은 '지분 50%'라는 높은 문턱을 고수하며 사실상 기술 유출의 통로를 방치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14일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가 조수정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의뢰해 내놓은 '외국인투자 안보심사제도 개선 방안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외국인이 국내 기업 의결권 지분을 50% 이상 취득해야만 산업통상자원부의 안보심사 대상이 된다. 이는 기술안보를 국가 생존과 직결된 문제로 보고 심사망을 촘촘히 하는 세계적 흐름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日·美 '1% 안보 현미경' vs 韓 '50% 방치'
일본은 이미 2007년 '외국환 및 외국무역법(FEFTA)'을 개정하며 국가안보 관점의 규제를 본격화한 데 이어 2019년에는 심사 기준이 되는 외국인 의결권 취득 지분율을 기존 10%에서 1%로 파격 하향했다. 특히 방위·전략기술·중요 인프라 등을 '핵심업종'으로 지정해 단 1%의 지분 이동만 있어도 사전 신고를 의무화하는 등 '안보 현미경'을 가동 중이다. 이에 더해 일본 정부는 부처 합동 심사기구 신설까지 추진하며 올해 출범을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 역시 2018년 제정된 '외국인투자심사현대화법(FIRRMA)'을 통해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의 권한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확대했다. 단순 인수·합병(M&A)은 물론, 항공·반도체 등 27개 핵심기술(TID) 분야 기업에 대한 소수지분 확보나 군사 시설 인근의 부동산 취득까지도 심사 대상에 묶었다. 사실상 지분율 1% 미만의 아주 미미한 투자라 할지라도 안보 위해성이 판단되면 즉각 개입하겠다는 의지다.
유럽연합(EU)도 2019년 통합 가이드라인 발표 이후 2023년 '경제안보전략'을 통해 안보 심사를 핵심 정책 수단으로 채택했다. 회원국들의 심사 지분율 기준은 10~25% 수준으로 한국의 절반 이하다. 최근에는 미디어와 핵심 원자재 등 전략 산업으로 대상을 넓히고 27개 회원국 전체에 제도 도입 의무화를 추진하는 등 포위망을 더욱 좁히고 있다.
재계에선 국내 첨단기술을 노리고 들어오는 외국인투자를 걸러내기에는 지분 50% 기준이 지나치게 느슨하다며 소수 지분 매입을 통한 기술 탈취와 경영 개입을 막기 위해 심사 기준을 즉각 손봐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우회·그린필드' 등 곳곳이 사각지대…"기술안보가 동맹 전제조건"
투자의 형태가 복잡해지고 있음에도 제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점도 치명적이다. 자회사나 펀드를 내세워 정체를 숨기는 '간접 투자'나 아예 공장을 새로 짓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그린필드 투자'가 대표적인 사각지대다.
EU는 2016년 독일 로봇 강자 '쿠카'가 중국 기업에 인수되며 기술이 유출된 사건을 계기로 민간 기술과 우회 경로까지 심사 범위를 전방위로 확대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인수·합병(M&A) 위주의 낡은 체계에 머물러 있어 유사한 기술 유출 사건을 자초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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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전문가들은 이제 기술안보가 단순한 산업 보호를 넘어 국가 간 '동맹의 전제조건'이 됐다고 경고한다. 미국이 동맹국에 투자심사 강화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보안 체계가 허술한 국가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소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수정 교수는 "출처가 불분명한 간접 투자와 우회 수출 경로를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경협은 이를 위해 ▲심사 대상 분야 확대 ▲심사 기준 지분율 하향 ▲그린필드 투자 심사 도입 ▲우회 투자 감시 등 4대 방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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