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해마다 한국 경제 전망 서적을 발간하는 민간 경제연구소의 초대로 송년모임에 참석했다. 덕담이 오가는 가운데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던 경제학자가 대뜸 "인공지능(AI) 거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며 화두를 던졌다. 대통령의 경제자문을 맡고 있는 그는 "새해 AI 거품이 꺼질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AI 거품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 기업들의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수익성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상황이 과연 지속 가능하냐는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듣던 국내 증권사 이사회 의장은 "자본시장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문제"라고 맞장구를 쳤고, 또 다른 경제학자는 "AI와 금융을 어떻게 접목할 것인지 고민인데, 거품 문제는 변수가 될 수 있다"며 자신이 속한 연구모임의 관심사와 이어붙이기도 했다.
AI거품론은 새삼 새로울 게 없는 주제긴 하다. 관련 기업들의 실적이 발표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기업이 오픈AI다. 3년 전 전 세계 AI혁명을 촉발한 오픈AI는 엄청난 매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 IT전문지인 '디 인포메이션(The Information)' 등에 따르면 오픈AI의 지난해 매출 추정치는 130억달러로 예상된다. 하지만 모델 학습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면서 손실 구조는 개선될 기미가 없다. 2029년까지 오픈AI의 누적 손실 규모가 115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파산설 역시 심심찮게 나온다. 오픈AI 파트너인 오라클도 지난달 초 발표한 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에 못 미치면서 AI거품론에 불을 댕기기도 했다.
AI거품 논란은 현재까지 '찻잔 속 태풍'과도 같다. 아직 투자 전선에 이상은 없다. 오픈AI는 전 세계에서 투자자를 끌어모으며 거품 논란을 일축하고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에서 400억달러(약 58조원)를 유치한 것은 물론이고 디즈니에서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도 받았다. 아랍에미리트(UAE) AI·반도체 분야 기술 투자사인 MGX도 오픈AI에 자금을 댔다. AI 성능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반도체 수요 역시 역대급이다. 엔비디아를 비롯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기업의 실적 역시 엄청나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2024년을 'AI 10년 호황의 첫 번째 해'로 규정하기도 했다. 게다가 AI 패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자금을 중단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수익이 담보되지 않는 투자가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 순 없다. 피지컬AI 등 형상을 갖춘 제품이 본격적으로 출시되는 만큼 시장에선 올해가 AI의 수익성을 확인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자금 여력이 우수하거나 효율이 높은 AI모델을 확보한 기업을 중심으로 옥석가리기가 시작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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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내 주요 기업 총수와 CEO들이 신년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단연 AI다. AI가 가져올 산업 혁신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AI거품 같이 소리 없이 다가올 위협에 대해선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AI거품이 꺼지면 반도체는 물론이고 전력, 데이터센터 같은 인프라가 타격을 입게 된다. 우리 주력산업이 모두 악영향을 받는 것이다. 대통령 경제자문이 문제를 제기한 만큼 정부 차원에서도 올해 이 부분에 많은 관심을 둘 것으로 보인다.
최일권 산업IT부장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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