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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세상은 좀 더 평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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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세상은 좀 더 평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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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저물어간다. 12·3 비상계엄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어지럽게 시작된 올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경험하고 기억하게 될까. 수많은 저항과 고뇌로 점철된 한 해의 종착지는 결국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자명한 진리에 닿아 있었다.


비상계엄으로 인한 헌정 중단 위기는 대통령 탄핵과 체포영장 집행 그리고 이에 따른 저항과 혼란으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빚어진 극심한 갈등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지만, 역설적으로 질서를 되찾기 위한 간절한 몸부림을 끌어내기도 했다. 절대 권력에 대한 맹목적 복종이 혼란을 부추겼다면, 그 부당한 권위에 단호히 맞선 거부의 몸짓은 우리 사회를 정상 궤도로 돌려놓는 동력이 됐다.


자기가 지지한 대통령이라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인식, 위법한 상사의 명령은 거부할 수 있다는 자각, '개인'에 대한 복종보다 '제도'에 대한 충성을 택한 용기가 모여 이뤄낸 결과다. 지난해 비상계엄 당시에도 합리성이 결여된 명령에 대해 유무형의 저항이 있었기에, 위기는 참극으로 번지지 않고 질서 회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정권 교체 이후에도 변화의 물결은 계속되었다. 한 국무위원 후보자의 갑질 논란은 새 정부 출범의 빛이 바래게 했지만, 보좌진을 상대로 언제든 '짐 싸라'고 할 수 있는 국회의원의 절대 권력에 균열을 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여당 내 2인자가 가랑비에 젖어 들듯 각종 의혹 제기 속에서 침몰하는 과정도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권위도 권력도 결국 국민의 동의가 기반이 돼야 한다는 명제를 각인시켰다. 납득할 수 없는 부조리함에 대한 대중의 공분은 권력의 강고한 벽을 넘어 변화의 역동성을 만들어냈다.


사회 곳곳에서도 변화는 감지됐다. 이른바 '노비 관계'로까지 비유되던 연예인과 매니저 사이의 특수한 관계도 대중의 기준 위에서 변화를 요구받게 됐다. 유명인이나 고용주의 이름 앞에 막연하게 굴복하지 않게 된 것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기술의 발달로 대화의 기록은 지시한 자의 기억만이 아니라 쌍방이 공유할 수 있게 됐다. 부당한 지시는 이제 '갑질의 증거'가 될 수 있게 됐고, 강자만이 독점했던 언로는 다양한 미디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장으로 약자에게도 말할 기회를 열어줬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남아 있었던 장애물은 권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었다. 오랫동안 그 두려움이 침묵을 지혜로 여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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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올해 권위의 성채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달라진 세상을 실감한다. 권위에 막연하게 굴종하기보다는,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는 시대로 가고 있다. 알아서 숙여주는 시대는 끝나간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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