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다녀갔다. 올해로 26년째, 횟수로는 27번째다. 전주 얼굴 없는 천사는 2000년부터 매년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전후해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에 성금을 두고 사라지는 익명의 기부자를 가리킨다.
30일 전주시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43분께 노송동 주민센터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기 너머로 "기자촌 한식뷔페 앞 소나무에 상자 1상자를 두었으니 좋은 곳에 써주세요"라는 말을 남긴 이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곧장 현장으로 달려간 직원은 현금다발, 돼지저금통이 함께 들어있는 종이 박스를 발견했다.
편지에는 "2026년에는 좋은 일들만 있었으면 합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상자에 담긴 성금은 오만원권 묶음 9000만원을 포함해 9004만6000원으로 집계됐다. 이로써 얼굴 없는 천사가 놓고 간 누적 성금은 모두 11억3488만2520원에 달한다.
전북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성금을 놓고 사라졌다. 천사가 성금을 두고 간 30일 오후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에서 직원 등이 성금을 확인하고 있다. 2025.12.30 연합뉴스
전주시는 천사의 뜻에 따라 성금을 노송동 지역의 소년소녀가장과 홀로 사는 노인 등 어려운 계층을 위해 쓸 예정이다. 천사는 2000년 4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놓고 간 것을 시작으로 매년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씩을 놓고 갔다.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전혀 드러내지 않아 '얼굴 없는 천사'로 불린다.
그간 성금은 생활이 어려운 노송동 주민과 학생에게 연탄, 쌀, 장학금으로 전달됐다. 2019년에는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에 놓고 간 6000여만원을 도난당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기부는 이어지고 있다.
그의 뜻을 유지하기 위한 지역사회의 노력도 이어졌다. 전주시는 지난 2009년 얼굴 없는 천사의 뜻을 기리는 기념비를 세웠으며, 노송동 주민센터 일대를 천사의 길로 명명하고 기념공원도 조성했다. 지역주민들은 매년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기념해 불우이웃 나눔 행사를 하고 있다. 전주시는 100년 후 전주의 보물이 될 것이라는 취지에서 '미래 유산'으로 선정했다.
같은 날, 전북 완주군 용진읍에서도 18년째 이어진 얼굴 없는 천사의 나눔이 전해졌다. 용진읍은 크리스마스 직후 직원이 행정복지센터 앞에 편지 한 통과 함께 백미 10kg 60포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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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 남긴 손편지에는 "가장 외지고 어두운 곳에서 고단한 시간을 보내는 이웃들에게 사랑의 온기를 전하고 싶다"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또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용진읍민들의 삶이 희망과 용기로 풍성해지기를 바란다"는 응원의 메시지도 함께 적혀 있었다.
김현정 기자 kimhj202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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