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 시·도 적정성 심사 '0건'
위반 처벌도 3년간 3건 그쳐
美처럼 입찰단계 하도급 공개 필요
예외 조항 없애고 과징금 부과해야
이재명 정부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지역경제 버팀목인 건설 현장에서는 하도급 관리가 20년째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자체가 발주하는 공사 규모가 연간 40조원을 넘어섰으나 제도가 제구실을 못 하면서 지역 자재·장비·인력 투입을 기반으로 한 지역경제 선순환이 끊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2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방계약법상 하도급관리계획 적정성 평가제도 개선 방안' 보고서에서 "2005년 지방계약법 제정과 함께 도입된 하도급 관리제도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자체가 발주하는 공사계약 규모는 지난해 기준 연 40조8000억원으로, 지자체가 시장에 푸는 사업비(조달계약)의 절반 가까이(43.4%)가 공사판에 쓰인다.
이재명 정부는 '5극3특 균형성장'을 국정과제로 삼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월 전국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균형 발전은 국가의 생존 전략"이라고 했고, 이달 8일 지방시대위원회 업무보고에서도 "재정 배분 시 지방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을 더 체계화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예산을 지방에 아무리 풀어도, 현장에서 지역 업체를 보호하는 하도급 관리가 부실하면 그 돈은 지역 업체가 아닌 외지 업체로 새어 나간다.
지방일수록 타격이 크다. 서울은 주요 산업 중 건설업 순위가 12위에 불과하고 지역내총생산(GRDP) 비중도 2.9%로 낮다. 반면 울산·충남은 건설업이 주요 산업 2위, 강원·충북·전남·경북은 3위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건설업 의존도가 높은 만큼 하도급 관리 부실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1800여개 업체가 한 공사에 '몰빵'…"페이퍼컴퍼니 심각"
보고서는 먼저 공사 업체를 뽑는 입찰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지자체는 지방계약법상 일반적인 공사 계약이 공사 규모(추정가격)에 따라 적격심사낙찰제(300억원 미만 공사)와 종합평가낙찰제(300억원 이상 공사) 방식으로 낙찰자를 정한다.
두 방식 모두 현재는 업체가 공사를 따내기 위해 처음 입찰에 참여할 때 누구에게 하도급을 줄지 미리 밝힐 의무가 없다. 일단 가격만 써서 입찰에 참여하고, 낙찰 예정자로 뽑힌 뒤에야 어떤 업체에 얼마에 하도급 줄 건지 계획서를 낸다.
적격심사제는 입찰 단계에서 별다른 서류가 필요 없다 보니, 낙찰만 되면 그만이라는 식의 '묻지 마 입찰'이 판친다. 실질적인 공사 능력보다는 일단 따내고 보자는 식의 가짜 업체들이 대거 몰린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100억원대 공사 한 건에 1829개 업체가 달려들었다. 40억원대 공사에도 1200개가 넘는 업체가 써냈다. 보고서는 "적격심사낙찰제 대상 공사에는 과당경쟁 입찰이 만연하여 발주자의 행정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다수의 입찰자가 입찰대행사를 통해 복수 법인(페이퍼컴퍼니)으로 참여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종합평가제는 대형 공사라 절차가 복잡하지만, 역시나 낙찰이 유력해진 뒤에 계획서를 내기 때문에 원청이 하도급 금액을 나중에 삭감하거나 업체 간 경쟁을 붙이는 등의 '갑질'을 할 시간적 여유를 주게 된다.
낙찰받고 나면 하도급업체 '후려치기'…위반해도 처벌은 '찔끔'
더 큰 문제는 낙찰 이후다. 원청업체는 일단 최저가로 낙찰받은 뒤 하도급업체와 가격 흥정에 나선다. 하도급업체들끼리 과당 경쟁이 붙으면서 단가가 후려쳐지는 구조다.
법적으로는 하도급 금액이 원도급의 82% 미만이면 '적정성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전문건설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공공공사에서 하도급률 82% 미만인 경우가 절반(49.4%)에 달했다.
하지만 하도급 업체에 주는 돈이 적정한지 따져보는 심사는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전국 17개 시·도 중 하도급 적정성 심사를 한 곳은 지난해 기준 서울(32건)과 세종(3건) 단 두 곳뿐이었다. 나머지 15개 시·도는 실적이 '0건'이다.
원칙적으로는 공사비가 너무 낮으면 발주처가 개입해야 하지만 '경쟁입찰로 뽑았으면 통과' '계획서대로 계약했으면 통과' 식의 예외 조항이 많다.
제도를 어겨도 처벌이 거의 없다. 최근 3년간(2021~2023년) 하도급 위반으로 부정당업자 제재를 받은 건수는 전국에서 고작 3건. 하도급계획 미이행으로 과태료를 맞은 경우는 단 1건에 그쳤다.
감사원 감사에서는 하도급률이 79%인데도 82% 이상인 것처럼 '거짓 통보'한 사례가 적발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의결서에는 적정성 심사를 피하려고 아예 '이중계약'을 체결한 정황도 담겼다.
"입찰 때부터 하도급 계획 내라"
보고서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사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원청업체가 입찰할 때부터 하도급업체 정보를 의무적으로 밝혀야 한다. 낙찰 후 하도급업체를 마음대로 바꾸는 것도 금지다. 바꾸려면 발주기관 승인을 받아야 하고, 하도급업체에는 이의제기 기회가 주어진다.
보고서는 하도급 금액이 너무 낮으니 올리라는 발주처의 변경 요구를 원청 업체가 따르지 않는 경우 과징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현재는 발주처가 이를 요구해도 원청이 안 따르면 시정명령 외에 별다른 제재 수단이 없다. 이어 현재 국토교통부와 지자체가 운영하는 '불법 하도급 상시단속'에 하도급 계획서 이행 여부 점검을 추가해, 계획서대로 실제 공사가 이뤄지는지 확인해야 한다고도 했다.
건설공사는 지역 자재와 장비, 인력을 쓰기 때문에 생산 유발 효과가 크고 고용 창출로도 이어진다. 실제로 건설투자액이 1% 늘면 하도급을 주로 맡는 전문건설업 고용은 1.12%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각 지자체도 이를 알기에 '지역건설산업 활성화 촉진 조례'를 만들어 지역 업체 하도급 비율을 60~70% 이상 권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관리 제도가 허술하니 취지가 무색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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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진 대건연 연구위원은 "하도급 제도가 제대로 작동해야 실력 있는 지역 업체가 공사에 참여하고, 그래야 지역 자재와 인력이 쓰이면서 돈이 지역에서 돈다"며 "결국 하도급 관리가 지역경제 선순환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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