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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길 산책]세계는 왜 한지에 주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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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창조산업의 출발점이 된 전통 재료
한지 위에서 만난 전통과 동시대성

[남산길 산책]세계는 왜 한지에 주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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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그 관심의 결이다. 이제 한국 문화는 더 이상 이국적인 호기심이나 표면적 감상의 대상이 아니다. 세계 유수 박물관의 전문가들, 특히 학문적 권위를 지닌 큐레이터와 보존 연구자들이 한국의 전통 재료와 미학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존중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분명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


필자는 최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그래픽아트 부서 관장 자비에르 살몽(Xavier Salmon)의 사진 전시를 기획하며 이 변화의 현장을 직접 마주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드로잉과 판화 컬렉션을 총괄하는 그는 스스로를 '한지 홍보대사'라고 부를 만큼 한국의 전통 종이 한지에 깊은 애정을 지닌 인물이다.


그의 한지와의 만남은 미학적 취향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문화재 복원 작업을 진행하던 중, 보존 재료로서 한지를 접한 것이 계기였다. 그는 한지가 지닌 질감과 뛰어난 보존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후 루브르 복원 부서에서 다뤄온 서양의 고지, 일본의 화지와 한지를 비교하며 그 구조적 특성을 면밀히 관찰했고, 서양 미술 복원에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확인했다. 특히 섬유의 강도와 복원력, 빛을 다루는 방식은 그의 시선을 오래 붙들었다. 현재 그는 루브르의 복원 작업에 한지를 활용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살몽이 한지에 매료된 이유는 분명하다. 한지는 실용성과 시적 질감을 동시에 지닌 재료이기 때문이다. 예술을 만들고 보존하는 물질인 동시에, 시간과 감성을 담아내는 매체라는 점에서다. 그는 서울과 해인사, 불국사를 포함한 주요 사찰을 직접 촬영한 뒤, 한국의 사진 12점과 파리의 유산 12곳을 짝지어 시각적 대화를 구성했다. 모든 작품은 한국 장인이 제작한 한지 위에 인쇄되어 전시로 선보였다.


사진을 한지에 인화하기로 한 그의 선택은 단순한 실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국 문화에 대한 존중이자, 재료에 대한 학문적 이해의 결과였다. 그의 사진 속에서 한국과 파리의 풍경은 한지 위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기와지붕과 한옥의 선, 사찰의 구조, 파리의 회색 지붕과 석조건축은 한지의 섬유 속에서 서로의 시간성과 미감을 공유하며 조용히 대화를 나눈다. 빛은 한지에 흡수되지 않고 머금어 은은하게 확산되고,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재료와 상호작용하는 유기체로 변모한다. 이 전시는 동양의 재료와 서양의 시선이 만났을 때 가능한 새로운 미학을 또렷이 보여주었다.


[남산길 산책]세계는 왜 한지에 주목하는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그래픽아트 부서 관장인 자비에르 살몽(Xavier Salmon)이 서울 아트큐브 2R2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Spirit of Korea, Spirit of Paris: The Curator’s Eye' 현장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아트큐브2R2

이 경험은 문화창조산업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문화창조산업의 성패는 기술 그 자체에 있지 않다. AI, AR, 메타버스와 같은 첨단 기술은 문화의 창작과 유통 방식을 바꾸고 있지만, 기술은 어디까지나 수단에 불과하다. 진정한 경쟁력은 고유한 문화의 깊이에서 비롯된다. 세계가 한국 문화에 주목하는 이유 역시 한국만이 가진 미감과 재료, 그리고 그 안에 축적된 시간과 서사에 있다.


수백 년 동안 한국의 기록문화와 예술적 실천을 지탱해온 한지는 단순한 전통 종이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인의 사유 방식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응축된 문화적 언어다. 디지털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손끝에서 느껴지는 물질의 감각과 시간이 켜켜이 쌓인 재료의 깊이를 갈망한다. 이 지점에서 한지는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금 세계가 필요로 하는 동시대적 매체가 된다.


문화창조산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전통 재료와 이를 세계적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아티스트를 함께 키워야 한다. 한지 위에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온 한국의 작가들, 천경자의 서사적 색채, 프랑스에서 활동하면서도 끝까지 한지를 고집한 이응노와 방혜자의 조형 언어, 한지를 조형적 단위로 확장해 세계 미술계에서 인정받은 전광영은 그런 점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사례다. 이들은 전통을 과거에 묶어두지 않고, 미래로 밀어 올린 작가들이다.


지금 한국 문화창조산업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콘텐츠가 아니다. 대표 재료와 대표 서사를 중심으로 한 전략적 집중이다. 한 명의 작가, 하나의 전통을 세계화한다고 해서 다른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상징적 브랜드가 세워질 때, 전체 문화 생태계는 함께 성장한다.


자비에르 살몽의 한지 전시는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가 이미 한국의 전통 재료를 학문적으로, 미학적으로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였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그 가치를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산업으로 확장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이다. 문화는 저절로 산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방향이 분명할 때, 문화는 가장 강력한 산업이 된다. 한지는 지금, 그 출발선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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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숙 아트토큰 대표·융합콘텐츠기획자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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