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에 자주파와 동맹파가 싸웠다더라….'
이건 마치 외교가의 구전동화 같은 것이었다. 딱히 공식 기록된 적은 없지만, 입으로 전해져 누구나 아는 이야기.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위성락·이종석' 두 이름이 동시에 등장하자 자연스레 이 해묵은 설이 떠올랐지만 설마설마했다.
그런데 한미 대북정책 협의를 놓고 통일부와 외교부가 실제로 수면 위에서 충돌했다. 다시 자주파와 동맹파의 전쟁일까. 정부 당국자들은 '그리 단순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고들 한다. 갈등의 발화점이 된 '한미 대북정책 협의'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통일부가 '제2의 한미워킹그룹'이라며 거세게 반발, 보이콧까지 해버렸다. 전직 장관들까지 가세해 "전문성 없는 외교부에 대북정책을 맡길 수 없다"며 별안간 힐난을 퍼부었다. 외교부 출신의 위성락 외교안보실장이나 정연두 외교전략정보본부장이 '비전문가'라는 주장에 몇이나 공감할까.
지금 대북정책의 핵심은 북핵이다. 20여년 전 통일부 장관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맡던 시절의 북한과 핵보유국 지위를 노리는 현재의 북한은 천지 차이다. 북핵 이슈를 외교적 뒷받침 없이 통일부 독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되나. 대통령도 북·미 우선 기조를 천명한 바 있다. '한국 패싱' 우려가 나오는 터라, 동맹국인 미국과의 긴밀한 공조는 오히려 우리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럼에도 '외교부는 빠져라'는 식의 호통을 쳐대니 '자주파 어르신들의 대북 인식이 20년 전에 머무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NSC 구성에 대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불만도 수개월 전부터 쌓여왔던 듯하다. NSC 상임위에 진짜 문제가 있다면 대통령 건의와 내부 논의를 거쳐 대통령령을 개정하면 된다. 누가 결사반대하며 막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집권 여당의 5선 출신 장관이 아닌가. 내밀해야 할 안보실 논의를 사회적으로 이슈화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윗선의 작은 균열은 아래로 내려올수록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된다. 외교부와 통일부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지나친 경계와 날 선 언사가 오간다. 통일부의 이런저런 부침은 결국 정체성 혼란에서 온 것인가 싶기도 하다. 한 외교관은 "카운터파트를 잃어버린 통일부가 집안싸움을 벌인 꼴"이라고 일침을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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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반백 년의 전통을 지닌 대북 주무부처로서 통일부가 핵심적 역할을 할 시기가 분명 오리라 믿는다. 그게 꼭 '정동영 장관 임기 중'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 무리해서 서두를 필요도 없지 않을까.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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