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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경의 창]고기 먹고 튀어! 올해의 유쾌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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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경의 창]고기 먹고 튀어! 올해의 유쾌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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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카를 힘겹게 끌며 폐지 줍는 노인을 보면서 집에 들어가면 '저녁은 뭘 드실까' '누구와 같이 드시고 싶을까'라며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거리에서 가끔 보는 풍경이지만 우리 사회가 외면해 온 빈곤 노인들의 일상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폐지 줍는 노인들이 의기투합해 고기를 먹고 튀는 독립영화 '사람과 고기'가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와 포브스는 '올해의 유쾌한 발견'이라 극찬했고 최근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돼 평단의 반응도 뜨거웠다. 이에 힘입어 지난 추석 명절 때 개봉했으나 상업영화에 밀려 상영관을 찾지 못하는 악조건 속에서 관객들의 호평과 유명 배우들의 후원상영회로 조용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돈이 있어야 먹을 수 있고 혼자 먹기엔 서러운 음식, 고기" 이 영화의 공식 소개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과 고기'는 폐지 줍는 두 독거노인 형준(박근형), 우식(장용)과 길에서 채소를 팔며 대학생 손주를 부양하는 화진(예수정)이 우연히 만나 무전취식이란 일탈을 하는 '먹튀 노인 3인방'에 대한 이야기다.


온종일 폐지를 주워도 우식이 손에 쥐는 돈은 고작 몇천 원. 마트 고기 판매대 앞에서 돼지고기를 한참 바라보다 결국 우유 한 팩만 사서 돌아선다. 가난에 찌든 친구는 자신의 병명은 "영양실조"라며 곡기를 끊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결국, 이들의 선택은 '고기 먹고 튀기'이다.

결코 합리화할 수 없는 범죄행위지만 고기를 함께 먹고 오랜만에 '살아있음'과 '친구'라는 소중한 가치를 느낀다. 고기를 먹고 튀며 식당 종업원에게 잡힐까 도망 다니며 전력 질주를 할 때마다 이상하게 가슴이 뛴다. 이들의 일탈에도 윤리는 있다. 자영업자를 생각해서 각각 1인분씩만 먹고, 장사가 잘되는 집에서만 먹고, 비싼 특수부위는 먹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기 위한 선택이다.


그러나 이들의 일탈은 오래가지 못하고 붙잡혀 법의 심판대에서 무거운 처벌을 받는다. 이들의 죄는 '고기를 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도덕적 일탈에 대한 응징보다는 공공의 실패와 무관심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민폐 끼치지 말라는 사회적 시선에 항변한다. "늙었으니까, 세상 사람들 불편하지 않게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다가 그냥 죽으라고?" 그리고 묻는다. 굶지 않는 삶만으로 충분한가.


한국은 노인의 노동참여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지만, 노인빈곤율도 1위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의 월평균 연금 수급액은 약 60만원으로 1인 가구 최저생계비(약 125만원)의 절반 수준이다. 10월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만명에 달하는 초고령 홀몸 보훈대상자들이 '영양 부족'으로 고독사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급식 지원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보훈대상자 급식지원 6법'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혀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제대로 식사조차 못 하는 노인의 빈곤과 고독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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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식욕과 육식은 삶의 활력을 상징한다. 고기는 친목의 음식이다. 함께 나누어 먹는 경험은 외로움과 정서적 허기까지 채울 수 있다. 생의 막바지에 이른 노인들이 고기를 함께 먹고 튀며 살아 있음을 느끼는 '사람과 고기'가 어쩌면 올해의 한국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




조영철 팀장 yccho21@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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