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현 예술세계 총망라한 아트센터
9월1일 파주서 개관
"동시대 예술 담론의 중심지 될 것"
개관일에 '하종현 미술상'도 시상
한국 모더니즘의 선구자 하종현의 예술세계를 총망라한 '하종현 아트센터'가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에 문을 열었다. 1960년대부터 실천해 온 예술 철학과 실험 정신을 담은 작품들을 4개관에 걸쳐 선보인다.
하종현 작가는 지난 반세기에 걸쳐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화두 아래 지속적인 물성 탐구와 실험에 매진하며 새로운 추상회화의 장을 개척해 온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상징적 인물이다. 하종현 아트센터는 치열한 시대정신과 진지한 탐구 정신으로 회화의 정의 및 개념을 확장해 온 작가의 전 생애를 조망한다. 1960년대 한국미술의 주 경향이었던 앵포르멜부터, 1970년대 하 작가가 회장을 맡은 전위적 실험미술 단체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시기를 거쳐, 1970년대 이후 한국미술사를 풍미한 단색화 시기를 종합적으로 아우른다.
전시장은 한 작가의 연대기와 시기별 대표작, 아카이브 자료를 연면적 약 2967㎡(약 897평) 규모로 조성됐다. 제1전시장에 들어서면 높은 층고의 전시장에 '접합' 대작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특히 단색과 다채색의 작품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2010년대 중반 이후의 '접합' 작품들이 큰 전시장 공간을 무게감 있게 채운다. 제2전시장에서는 앵포르멜과 기하추상에 기반을 둔 1960년대 및 1970년대 초반의 회화 작품들과 AG 활동 시기의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같은 층의 아카이브 공간에는 그간의 주요 전시 도록과 사진, 영상 등이 전시됐다. 제3전시장에는 다양한 시기의 '접합' 연작을 한 자리 선보이며, 마지막으로 제4전시장에서는 수직과 수평을 오가는 '이후 접합'이 눈길을 끈다.
1층 전시관 한쪽 벽면에는 대형 작품 '접합 20-200'(2020)이 관람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여러 작품을 합친 '접합' 연작으로 바닥에 놓인 철조망의 입체성이 두드러진다. 아트센터 관계자는 "하종현 작가는 회화의 본질을 해체하고 도전한 실험가로, 회화는 물론 한국미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시도를 이어 왔다"며 "한국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걸 중시했다"고 설명했다.
2층부터는 하 작가의 사유에 이르는 과정을 깊게 조명한다. '집합' 연작 이전인 앵포르멜과 기하추상 시기(1960~1969), AG 시기(1969~1975년)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1970년대 작품은 당시 한국을 유린했던 군사정권에 대한 소리 없는 저항의 표현이자 상징적 고발로서의 예술을 표방했다. 유독 어두운 느낌의 작품이 많았는데, '작품 C'(1962)는 물감을 올리고 불로 그을려 어둠이 두드러지게 만든 작품이다. 언론탄압을 상징하는 작품도 눈에 띈다.
'접합' 연작은 1974년 이후 선보이기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대 캔버스의 뒷면에서 앞면으로 안료를 밀어내는 노동 집약적이고도 독자적 기법인 '배압법(背押法)'을 통해 1974년부터 작업해 온 대표 연작 '접합'과 2009년부터 이를 확장한 '이후 접합' 연작은 단색화의 흐름 속에서 회화를 대하는 방식 자체를 재해석한 독보적인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9월1일 개관일에는 '제14회 하종현미술상' 시상식도 병행한다. 하종현미술상은 서울시립미술관장을 지낸 하종현 작가가 홍익대학교 교직 퇴임 후 사회 환원 및 후학 양성을 위해 지난 2001년 제정한 상이다. 동시대 작가뿐만 아니라 평론가, 큐레이터 등 국내외 미술계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을 시상하며, 그동안 이배, 권여현, 서성록, 남춘모, 유근택, 이세현, 김수자, 조앤 기(Joan Kee), 알렉산드라 먼로(Alexandra Munroe) 등 20여 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바 있다. 올해는 김선정 아트선재센터 예술감독과 미술사학자이자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애슐리 롤링스(Ashley Rawlings)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특히 롤링스는 한국 단색화를 해석하고 국제무대에 소개하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하종현 아트센터 관계자는 "작가 개인의 아카이브와 전시뿐만 아니라 강연, 세미나, 연구 프로그램 등을 선보이며 동시대 예술 담론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라며 "'예술은 작가만의 것이 아니라 감상자와의 소통을 통해 완성된다'는 작가의 신념처럼, 하종현 아트센터가 후대에 귀감이 되는 중요한 장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현장에 자리한 하종현 작가는 "평생을 걸쳐 준비해왔다"며 "오늘이 인생 최고의 날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종현 작가는?
지금 뜨는 뉴스
1935년 경상남도 산청에서 출생한 하종현은 1959년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1990~1994)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2001~2006)을 역임했으며, 현재 일산에서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뉴욕, LA, 런던, 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선보였으며, 주요 미술관 개인전으로는 대전시립미술관(2020), 국립현대미술관(2012), 가나아트센터(2008), 경남도립미술관(2004), 밀라노 무디마 현대미술재단(2003) 등이 있다. 참여한 주요 단체전으로는 LA 해머 미술관(2024),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2023), 덴버 미술관(2023), 뉴욕 현대미술관(2019), 상하이 파워롱 미술관(2018), 브루클린 미술관(2017), 벨기에 보고시안 재단(2016), 시카고 미술관(2016), 프라하 비엔날레(2009) 등이 있다. 작가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도쿄도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홍콩 M+,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