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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태풍·극한 호우에서 살아남기…기후 적응은 '생존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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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극복에서 공존으로'…도시 인프라·제도·일상에 스며든 적응

네덜란드의 제2 도시 '로테르담(Rotterdam)'의 이름은 "강(Rot)에 댐(dam)을 쌓았다"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국토의 90% 이상이 해수면보다 낮은 이 도시의 역사는 곧 물과의 싸움이었다.


물과 함께 살아가는 로테르담의 지혜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로테르담은 "물을 막는 대신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방식"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2013년 개장한 로테르담의 '벤트헴플레인 수분흡수 공원'은 평소에는 시민 휴식 공간으로 쓰이지만, 폭우가 내리면 빗물을 일시적으로 저장해 침수를 막는다.

폭염·태풍·극한 호우에서 살아남기…기후 적응은 '생존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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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부터 시행된 '녹색 지붕' 건설 보조금제도는 10년 만에 축구장 50개 규모의 녹색 지붕을 탄생시켜 빗물 흡수와 도시 열섬 현상 완화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처럼 "물과 함께 산다(Living with Water)"는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네덜란드의 '기후 적응' 정책은 물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전환한 세계적인 사례다.


기후변화 대응은 '기후 완화(Mitigation)'와 '기후 적응'으로 나뉜다. 완화는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춰서 시간을 버는 것이다. 파리 협약을 비롯한 탄소 배출 저감 노력이 대표적이다. 그간 어떻게 완화할 것인가를 주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금은 적응을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다. 기후변화가 전례 없이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폭염의 땅' 전락한 "사계절 봄과 같은 곳"

지구에서 가장 추운 국가 중 하나로 평균 기온은 2~11도 사이이던 아이슬란드는 지난 5월15일 기온이 26.6도를 기록하며 역대 5월 최고 기온 기록을 경신했다.

폭염·태풍·극한 호우에서 살아남기…기후 적응은 '생존의 기술'

"사계절이 봄과 같은 곳"으로 불릴 정도로 온화한 중국 윈난성의 6월 연평균 기온은 25도 정도지만, 지난 6월 윈난성은 40도 이상의 기온을 기록하는 폭염의 땅으로 변했다. 2023년에는 가뭄으로 심각한 물 부족을 겪었는데, 올해 6월에만 500㎜에 가까운 폭우가 24시간 동안 쏟아지는 100년 만의 홍수가 닥치면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6월 미국 남서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는 최고 기온 48.9도, 37.8도(화씨 100도) 이상인 날이 27일 연속으로 이어지는 등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수많은 온열 질환자가 발생했다. 또 캘리포니아주는 5~7월까지 역대급 대형 산불이 여러 차례 발생해 엄청난 피해를 봤다.


기후가 할퀸 '사회경제'…회복과 생산성 높이는 '적응'

기후 전문가들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했다. 이명인 울산과학기술원(UNIST) 폭염연구센터장(지구환경도시건설공학과 교수)은 "지역적으로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기후재난의 피해를 줄이고, 변화하는 기후에 맞춰 사회경제의 회복력을 유지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적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올해 7월, 한국은 폭염과 집중호우가 교차하는 극단적 날씨를 겪었다. 전국 평균 기온은 27.1도로 1994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였고, 일부 지역은 40도를 넘어섰다. 서울은 열대야가 23일이나 이어져 관측 사상 최다를 기록했으며, 중순에는 충남 서산 하루 강수량이 438.5㎜, 경남 산청군은 며칠간 793.5㎜를 기록해 인명과 재산 피해가 잇따랐다.

폭염·태풍·극한 호우에서 살아남기…기후 적응은 '생존의 기술' 지난 달 21일 오전 경남 산청군 신안면 산청대로 구간에 전날 발생한 호우·산사태로 토사가 쏟아져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다. 연합뉴스 제공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의 '빗물 저금통' 사업과 강서구 마곡지구의 '물순환 생태도시' 사업은 기후 적응의 우수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들 사업은 단순한 물 재활용을 넘어 도시의 물순환 구조를 복원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2024년 4월 기준 약 6700개가 설치된 빗물 저금통은 집중호우 시 하수도 유입량을 줄여 침수 피해를 예방하고, 저장된 물을 조경·청소 등에 재활용해 연간 최대 25만원의 수도료를 절감한다.


서울 마곡지구, 경제성·실효성 모두 갖춘 국내형 모델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는 공원·도로·건물 옥상 등 도시 전반에 빗물 관리 시설을 통합했다. 대표적인 마곡 엠밸리 15단지 공원은 평상시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지만, 폭우 때는 약 1만4000t의 빗물을 저장해 주변 침수를 막는다. 서울시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기반시설 도입으로 30년 빈도 기준 홍수량을 약 2% 저감할 수 있으며, 수질 개선·열섬 완화·상수도 사용 절감 등 다양한 환경 효과도 기대된다. 마곡 사례는 기후 적응이 경제성과 실효성을 모두 갖춘 전략임을 보여주는 국내형 모델이다.


서울시는 '저영향 개발(LID)'을 도시계획에 적극 도입해 투수성 포장과 옥상 녹화로 빗물이 땅에 스며드는 시간을 늘리고 있다. 이는 배수시설을 확장하는 대신 도시 표면의 성질을 바꿔 기후 충격을 흡수하려는 전략이다.


이러한 접근은 네덜란드의 기후 적응 철학과 맞닿아 있다. 제방처럼 외부의 위협을 막는 방식이 아니라, 위협을 일상의 공간과 시스템에 끌어들여 그 에너지를 흡수하는 도시 설계라는 점에서 방향이 같다.


기후 적응에 1달러 투자, 10달러의 사회적 비용 절감

유엔환경계획(UNEP)은 "기후 적응에 1달러를 투자하면 최대 10달러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마곡지구의 사례는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피해 복구 비용 절감은 물론, 시민 안전 확보와 환경 개선, 도시 경쟁력 강화까지 종합적인 효과를 보여주고 있다. 로테르담의 수분흡수공원처럼, 평상시 생활 공간이 기후 위기 상황에서는 방어 인프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회성 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의장도 "기후변화 적응에 대한 투자는 저감 투자보다 훨씬 짧은 시간 내에 기후 회복력과 경제 안보를 동시에 제공한다"면서 "즉각적이고 지역적이라는 특성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폭염·태풍·극한 호우에서 살아남기…기후 적응은 '생존의 기술'

기후 적응 수준이 한 나라를 평가하는 지표가 될 수도 있다. 이명인 센터장은 "선진국은 자연재해로 인한 재산 피해가 경제 규모에 따라 증가하는 것이 필연적일 수 있으나, 인명 피해는 최소화해야 한다. 이것이 진짜 선진국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과학기술 기반의 자연재난에 대한 사전적 대비와 이에 따른 재난 관리 정책의 효율화, 그리고 자연재해에 대한 경각심과 시민의식이 합쳐져야 한다"면서 "폭염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매년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짚었다.


재산 피해는 날 수 있지만, 인명 피해는 국가의 수준

서울시를 포함한 주요 지자체들이 도시 단위의 기후 적응 전략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작용한다. 서울시는 도심 열섬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도시 바람길 숲'을 조성하고, 햇빛 반사율이 높은 소재를 건물 옥상에 적용하는 '쿨루프' 사업 등도 시행 중이다.


부산시는 북항에 2030년 완공을 목표로 '부유식 해상도시' 건설을 추진 중이다. 유엔 해비타트, 미국 기업 오셔닉스와 협력, 해수면 상승에 맞서 방파제를 높이거나 해안선을 매립하는 방식이 아닌, 바다를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끌어안는 프로젝트다. 이는 기후변화에 대한 인류의 대응 방식을 극복에서 공존으로 전환하는 상징적 사례가 될 수 있다.


대구시는 '포레스트(FoRest) 대구 프로젝트'를 통해 금호강과 주변 숲을 녹색 힐링 벨트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라남도는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조성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 기후변화 완화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적응을 현실로 만드는 힘, 제도와 일상의 결합

기후 적응은 정부나 전문가의 과제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폭염·홍수·가뭄의 위협 속에서, 생활 속 작은 실천이야말로 가장 빠르게 작동하는 대응책이 된다.

폭염·태풍·극한 호우에서 살아남기…기후 적응은 '생존의 기술' 이명인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 김종화 기자

이 센터장은 "방송과 미디어를 통한 대비 요령이 꾸준히 확산되고 있고,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폭염 피해를 개인적 대응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그는 "더 강력해지는 기상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단기 예보뿐 아니라 다음 주 전망까지 생활과 업무 계획에 반영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도적 보완은 여전히 과제다. 폭염 시 건설현장 의무휴식제처럼 강화된 제도가 도입되고 있지만, 여전히 대응이 미흡한 영역도 남아 있다. 예컨대 폭염 상황에서 실외 근로자 보호 장치나 야외활동 취소·환불 규정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지 않은 부분은, 기후 적응을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기 위해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그러나 적응은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냉방기술, 기능성 의류, 안전 장비, 재생에너지 같은 산업은 기후 변화에 맞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여름철 태양광 발전량 확대처럼 환경 변화가 새로운 생산성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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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실천과 제도, 그리고 산업과 기술의 진화가 맞물릴 때, 기후 적응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는 구체적 능력이 된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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