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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때]죽음을 선택한다는 건…죄악일까, 존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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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란 단어는 그리스어 eu와 thanatos에서 유래했다.

중세 말기부터 계몽주의 시대까지 '좋은 죽음'이란 단순히 고통 없는 죽음을 의미하기보다는, '신의 은총으로 축복받은 죽음'을 뜻했다.

오리건주의 정신과 의사 린다 간지니는 "그들이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력 사망을 하려는 환자 중 이런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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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타 해닉 '내가 죽는 날'
조력 사망 핵심은 '자기결정권'
삶의 지속 여부를 스스로 선택
종교계는 명백한 '살인'으로 규정

존엄사 신청, 65세 이상 백인 많아
유색인종은 문화·신앙 영향탓 적어
우울감으로 인한 '자살 충동' 혼동
존엄사 시도 후 혼수상태 됐을 때
치료 여부 등 깊은 고민거리 던져

안락사란 단어는 그리스어 eu(좋은)와 thanatos(죽음)에서 유래했다. 중세 말기부터 계몽주의 시대까지 '좋은 죽음'이란 단순히 고통 없는 죽음을 의미하기보다는, '신의 은총으로 축복받은 죽음'을 뜻했다. 당시 유행했던 죽음 안내서 '아르스 모리엔디'는 독자들에게 임종 시 어떻게 행동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가르쳤다. 죽음을 앞둔 이들의 침대 곁으로 불려 간 사제들은 이 책을 들고 신자들이 죽음을 준비하도록 도왔다.

[이 책 어때]죽음을 선택한다는 건…죄악일까, 존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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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임종 시 사제의 역할을 의사가 대신하게 됐고, 이 시기를 전후로 안락사라는 용어는 점차 '고통 없는 죽음'으로 의미가 바뀌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에는 오늘날처럼 의사의 도움과 치사 약물을 통한 빠르고 평온한 죽음을 뜻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이 책은 바로 그 안락사, 다시 말해 '조력 사망'의 현황과 한계를 깊이 있게 조명한다.


조력 사망은 현재 미국에서도 찬반 논쟁이 뜨거운 이슈다. 일부 주에서는 법적으로 허용됐지만, 그 조건은 엄격하다. 만 18세 이상 성인으로, 두 명 이상의 의사로부터 6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아야 하며, 조력 사망을 원한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히고, 알약을 스스로 복용할 수 있어야 한다. 조력 사망의 핵심은 자기결정권이다. 삶의 지속 여부를 스스로 선택할 권리. 즉, 삶에 희망이 없고 고통이 극심할 때 죽음을 선택할 권리다. 하지만 '희망'과 '고통'의 기준을 두고서는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책은 조력 사망의 역사와 함께 찬반 양측의 논리를 균형 있게 소개한다. 찬성론자들의 주장은 단순하다. "내 생명은 내 것이며, 내 삶의 끝도 내가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질병으로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고, 회복 가능성도 없다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자신은 물론 가족에게도 더 나은 선택이라는 입장이다.


또한 누군가는 조력 사망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안전하게 이뤄진다는 점에서 오히려 필요하다고 본다. 조력 사망은 약물을 복용하는 방식으로 신체 훼손 없이 진행되지만, 합법적 선택이 어려운 이들은 스스로 죽음을 시도하다 극심한 신체 손상을 입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다.


반면 종교계는 조력 사망을 명백한 '살인'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대한다. 생사의 주관자인 신의 권한을 인간이 침해하고, 생명의 신성함을 훼손하며, 삶이라는 투쟁의 여정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고통을 구원의 과정으로 보는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임종 시 겪는 시련 또한 중요한 영적 성장의 기회로 여긴다. 이들은 "쉽게 벗어나려 하기보다는, 마지막까지 고통을 견디는 것이 미덕"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런 종교적 관점과 문화적 배경은 조력 사망에 대한 인식에 뚜렷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책의 저자인 문화인류학자 애니타 해닉은 5년간 의료 현장에서 존엄사 제도를 관찰하며 조력 사망에 대한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중 하나는 조력 사망 신청자의 대다수가 '서양의 백인 고령자'라는 점이다. 미국 오리건주에서 2020년 조력 사망을 신청한 사람 중 81%가 65세 이상이었고, 실제 조력 사망을 시행한 환자의 97%가 백인이었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전체 인구 중 백인의 비율은 37%에 불과하지만, 2019년 조력 사망자의 87%가 백인이었다.


그렇다면 유색인종의 조력 사망 비중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 수준과 의료 접근성의 차이를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의료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경험 탓에, 적극적인 연명 치료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문화와 신앙 역시 큰 영향을 미친다. 흑인과 라틴계는 미국 내에서 신앙심이 강한 집단으로 분류되며, 조력 사망을 신앙에 어긋나는 행위로 보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개인보다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에서는 가족 구성원의 반대가 조력 사망 희망자의 의사를 눌러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저자는 조력 사망을 논할 때 '자살 충동'과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질병으로 인한 고통보다는, 현재 상황에 대한 비관과 미래에 대한 낙담에서 우울감을 느끼고 자살을 충동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오리건주의 정신과 의사 린다 간지니는 "그들이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력 사망을 하려는 환자 중 이런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책 어때]죽음을 선택한다는 건…죄악일까, 존엄일까

조력 사망은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있다. 충분히 준비된 평온한 죽음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주목받는 반면, 시행 과정에서는 불확실성과 우려도 존재한다. 실제로 약 복용 후 사망까지 최장 나흘이 걸리는 사례도 있고, 심지어 의식을 되찾은 사람도 있다. 1997년부터 2020년까지 오리건주에서만 이런 사례가 8건 보고됐다. 조력 사망 시도 후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이를 두고 적극적 치료를 해야 할지 여부에 대한 법적 규정도 여전히 미비한 실정이다.


저자는 수많은 실제 사례를 통해 조력 사망의 복잡한 현실을 보여준다. 전체적인 논조는 찬성 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는 듯하지만, 독자의 사고를 제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조력 사망이라는 첨예한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와 관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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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는 날 | 애니타 해닉 지음 | 신소희 옮김 | 수오서재 | 248쪽 | 2만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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