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대한상의, 국정기획위 방문해 제안
'메가 샌드박스', 정책 밑그림으로 쓰기로
지난 1일 대한상의 보고서서 제시
지자체 중심 맞춤형·전방위 지원
"더 큰 샌드박스로 더 큰 혁신"
정부가 대한상공회의소가 제안한 '메가 샌드박스'를 규제 개혁 정책의 밑그림으로 검토하기 시작하면서 재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단일 사업이나 기업이 아니라, 지역 전체를 새로운 기술 실험 공간으로 전환하는 구상으로, 기존의 규제 샌드박스를 넘어선 대형 프로젝트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전날 대한상의는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을 찾아 국정기획위원회에 메가 샌드박스를 설명하고 관련 자료를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위원회 측은 많은 질문을 던지며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재계 단체와 공식적으로 규제 개혁을 놓고 머리를 맞댄 것은 이번 정부 들어 처음이다.
메가 샌드박스는 대한상의가 지난 1일 발표한 '통계로 보는 민간 규제 샌드박스' 보고서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이 보고서는 "지금까지는 너무 좁은 범위에서만 실험해왔다"며, "더 넓고 유연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존 규제 샌드박스만으로는 산업 전반의 변화를 이끌기 어렵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 제안이다.
기존의 규제 샌드박스는 기업이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를 시장에 내놓을 때, 정부가 일정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일부 면제해주는 방식이다. '위험은 정부가 감수하니 일단 해보라'는 일종의 시험 운영 제도다. 정식 허가를 받지 않아도 시장에서 실증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그 결과에 따라 관련 법이나 제도를 손보는 구조다.
하지만 대한상의는 이 방식에 한계가 있다고 봤다. 개별 규제만 풀어주는 식이다 보니 여러 기술이 함께 작동해야 하는 산업에는 맞지 않았고, 수도권에만 집중된 실증 사례도 문제였다. 특히 중앙정부가 모든 판단을 하다 보니, 지역의 여건이나 필요를 반영하기 어려운 점도 반복적으로 지적돼 왔다.
대한상의는 2020년부터 '규제 샌드박스 지원센터'를 운영해 오며 수백 건의 현장을 살펴본 결과, "이제는 기업 하나가 아닌 지역 전체를 단위로 삼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기술 하나의 실험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를 놓고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대한상의는 특정 지자체를 아예 하나의 통합 실험 구역으로 설정하고, 해당 지역이 중심이 돼 직접 산업 분야를 지정한 뒤 필요한 규제를 일괄로 완화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확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인공지능, 바이오, 청정에너지, 미래차 등처럼 규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분야에서 여러 제도를 동시에 풀어야만 실증이 가능하다는 현실 때문이다.
메가 샌드박스는 ▲복수 규제의 일괄 정비 ▲지자체가 주도하는 지역 맞춤형 설계 ▲규제 완화와 함께 교육, 인력 양성, 연구개발(R&D), 세제·입지 인센티브 등 전방위적 지원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기존 제도와 구분된다. 실증 특례만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를 구성할 수 있도록 '인프라 패키지'를 함께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예컨대, 특정 지역이 미래형 모빌리티 산업을 유치하고자 한다면, 단순히 자동차 관련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수준이 아니라 ▲도로 테스트 구간 확보 ▲운전자격 기준 유예 ▲관련 대학·연구소와 연계한 인력 양성 프로그램 ▲데이터센터·통신망 지원 ▲입지 세제 감면 등이 한꺼번에 묶여 지원되는 방식이다.
국정기획위원회 역시 기존 규제 샌드박스가 중앙정부 주도로만 운영돼 구체성이나 속도 면에서 제약이 있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보완할 새로운 방안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위원회는 이번 제안이 지역 단위로 산업과 제도를 통합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보고, 실무 검토를 진행 중이다.
앞으로는 정부와 대한상의가 메가 샌드박스의 제도화 및 시범 도입 가능성을 중심으로 협의를 이어갈 전망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회의 일정은 잡히지 않았지만, 국정기획위 측과 이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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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는 메가 샌드박스가 도입될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신산업 생태계를 유치할 수 있는 여지가 넓어지고, 수도권 중심의 규제 실증 구조가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데이터, 바이오처럼 '하나만 풀어선 작동하지 않는' 산업 분야에서 메가 샌드박스가 제도 실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가 이 제안을 제도화할 경우, 내년부터는 지역이 직접 규제 특례를 설계하고 인프라를 구축하는 '지역 주도 산업정책'이 본격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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