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독립운동엔 1915년 '광복회'
국가보훈부는 2025년 7월 이달의 6·25 전쟁영웅에 롤랑 가브릴로프 프랑스 육군 상사를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가브릴로프 상사는 1926년 프랑스 암네빌르에서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 12월 입대했다. 그는 1951년 3월 6·25전쟁에 파병을 자원해 이듬해 유엔 프랑스대대 소속으로 한국에 도착해 대대본부 공병소대장으로 부임했다.
당시 유엔 프랑스대대는 제23연대에 배속돼 강원도 철원 일대에서 중공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1952년 10월 3일 화살머리고지를 방어 중이던 프랑스대대는 곧 중공군의 대규모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고지 좌측 전초진지에 공병소대를 배치했다.
10월 6일 밤,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 일대에 중공군의 집중 포격이 가해진 후 대규모 병력이 공병소대를 향해 공격을 감행했다. 가브릴로프 상사는 대검을 뽑아 적과 뒤엉키며 백병전을 전개했다. 전투 중 프랑스대대장이 무전으로 "진지를 사수하라"고 명령하자 가브릴로프 상사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대장님. 버텨낼 것입니다"라는 통신을 남기고 전사했다.
이 전투에서 공병소대원 20명이 전사했다. 이들이 중공군의 초반 기세를 꺾은 덕분에 프랑스대대는 이후 사흘간 이어진 전투에서 고지를 사수하며 승리할 수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가브릴로프 상사의 군인 정신과 헌신을 기려 당시 계급 중사에서 상사로 1계급 특진시키고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추서했다.
한편 보훈부는 2025년 7월의 독립운동엔 '광복회 조직'을 선정했다. 광복회는 1915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창립됐다. 광복회는 한말 의병운동과 계몽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이 연합한 조직으로, 의병운동의 무장투쟁과 계몽운동을 통한 실력양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독립군을 양성하여 일제와 전쟁을 벌여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했다.
광복회는 그해 12월 만주 길림에 길림광복회를 설치해 독립군 양성을 위한 거점을 마련했고 전국 8도에 지부를 설치해 회원 확보 등 독립 운동의 저변을 확대했다. 또 독립군 양성과 무장 투쟁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회원들의 재산 헌납은 물론, 일제의 우편마차를 공격하여 세금을 탈취하거나 전국의 부호를 대상으로 의연금을 모집하는 등 다양하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군자금을 모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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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는 1918년 1월부터 일제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인해 많은 회원이 체포되면서 사실상 와해 됐다. 김한종(1963, 독립장), 김경태(1963, 독립장), 박상진(1963, 독립장), 채기중(1963, 독립장) 등 주요 인사들은 사형을 선고 받고 순국했다. 그러나 광복회의 정신은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 단체인 주비단(籌備團)과 광복단 결사대 등으로 계승되며 독립운동의 명맥을 이어갔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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