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프랑스 '앙리 부르주아(Domaine Henri Bourgeois)'
루아르 밸리 '상세르' 자리잡은 가족 경영 와이너리
미네랄리티 넘치는 프랑스 소비뇽 블랑의 진수
'클로 앙리' 부르주아 가문의 뉴질랜드 프로젝트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포도 품종 가운데 하나다. 소비뇽 블랑이란 이름은 프랑스어로 '야생'을 뜻하는 '소바쥬(Sauvage)'에서 유래했는데, 실제로 소비뇽 블랑이 지금의 높은 인지도를 갖게 된 데도 야생의 느낌이 가득한 아로마가 절대적인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소비뇽 블랑은 프랑스 보르도(Bordeaux)가 원산지로, 19세기 보르도 품종이 인기를 얻으며 전 세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 뉴질랜드 와인업계가 소비뇽 블랑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재배면적을 빠르게 늘렸고, 이 지역 특유의 선명한 산도와 풀향 가득한 소비뇽 블랑 와인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으며 높은 인지도를 확보하게 됐다.
하지만 산뜻한 풀내음은 소비뇽 블랑이 지닌 다채로운 야성미의 단면에 불과하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의 상징이 풀향이라면 고향인 프랑스의 소비뇽 블랑은 '미네랄리티(Minerality)'로 대표된다. 와인에서 미네랄리티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복잡하고도 모호한 개념이다. 문자 그대로 토양에 존재하는 미네랄 이온이 포도에 흡수돼 와인의 맛에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해석하기도 하고, 포도가 재배된 곳의 독특한 지질·토양이 와인의 풍미 특성에 미친 영향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가장 일반적으로는 와인에서 느껴지는 생동감 있고 활기찬 돌·광물 같은 느낌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미네랄리티 가득한 소비뇽 블랑의 최상급 생산지로 프랑스인들이 입을 모으는 곳이 바로 루아르(Loire Valley)의 상세르(Sancerre)다. 상세르의 소비뇽 블랑은 톡 쏘는 짜릿함과 돌 같은 단단함을 지닌, 야생이란 어원에 충실한 와인이다. 순수하고도 날카로우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고 강렬하다.
앙리 부르주아, 상세르 소비뇽 블랑의 마에스트로
'앙리 부르주아(Domaine Henri Bourgeois)'는 상세르의 대표 생산자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부르주아 가문은 상세르 중심부의 '샤비뇰(Chavignol)' 마을에서 10대에 걸쳐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땅에 대한 애정과 도전 정신으로 와인을 빚어오고 있다. 각 토양의 개성을 오롯이 담아내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한 병의 와인에 예술처럼 풀어내는 것 그리고 지역 고유의 테루아(Terroir·포도밭을 둘러싼 자연환경의 총체)를 세상에 알리겠다는 깊은 책임감. 이것이 오랜 세대를 관통해 이어지고 있는 부르주아 가문의 핵심 양조 철학이다.
부르주아 가문이 오늘의 명성을 확보하게 된 데는 8대손인 앙리 부르주아의 역할이 컸다. 그는 1950년대 샤비뇰 언덕의 1.5헥타르(ha) 규모의 작은 포도밭에서 테루아의 특성에 집중한 와인 생산을 시작했고, 전례 없이 높은 품질의 와인은 금세 입소문을 타고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1960년대 앙리 부르주아의 아들이자 현 소유주인 장-마리(Jean-Marie Bourgeois)가 합류하며 상세르는 물론 인근 푸이-퓌메(Pouilly-Fume) 등으로 포도밭을 확대했고, 현재까지 72헥타르의 경작지를 바탕으로 테루아가 지닌 가장 순수한 표현을 이끌어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앙리 부르주아의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에 대한 비전은 완벽한 정확성을 향한 끊임없는 탐구로 요약된다. 최근 한국을 찾은 장-마리 부르주아는 "마치 금세공사가 정교하게 작품을 만들듯 포도밭과 와인셀라 등 모든 과정에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며 "와인의 생애 각 단계에서 쌓여가는 이러한 작은 디테일들의 총합이 바로 앙리 부르주아의 장인정신을 만들어낸다"고 강조했다.
와인 한 병에 오롯이 담긴 토양의 개성
미네랄리티가 토양에서 비롯되는 특성인 만큼 상세르와 앙리 부르주아를 이해하기 위해선 테루아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루아르는 루아르강을 타고 펼쳐진, 프랑스에서 가장 다채로운 와인 산지로 꼽힌다. 루아르강은 프랑스 중심부의 마시프 상트랄의 분화구에서시작돼 북쪽으로 480km가량 흐르다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다시 480㎞가량을 흘러 대서양에 합류한다. 동에서 서로 흐르는 500㎞ 가까운 구간에는 루아르의 정상급 와인산지가 줄지어 자리 잡고 있는데, 맨 동쪽 끝에 자리 잡은 산지가 상세르와 푸이-퓌메다.
루아르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두 지역은 추운 겨울과 뜨거운 여름의 뚜렷한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무엇보다 이곳의 독보적인 와인은 다채로운 토양에 뿌리를 두고 있다. 토양은 크게 '점토 석회암(Lime Stone)'과 '키메리지안 이회토(Marnes Kimm?ridgiennes)', '실렉스(Silex)'로 구분된다. 우선 샤비뇰 마을 주변은 쥐라기 시대에 형성된 키메리지안 이회토를 바탕으로 방향성이 풍부하고 힘 있는 와인이 생산된다. 이 토양은 조개껍데기의 흔적을 담고 있어 열대과일의 강렬한 풍미와 뛰어난 구조감을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상세르의 중심부에 가까울수록 석회암과 자갈이 섞인 토양으로 화려한 방향성을 지닌 섬세한 와인이 생산되며, 상세르의 중심부는 실렉스 비중이 높은 토양으로 미네랄 향과 풍미를 지닌 장기 숙성용 와인이 생산된다. 일반적으로 석회암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와인은 신선하고 과일향 가득한 와인으로, 실렉스 토양에서 재배된 포도를 기반으로 생산된 와인은 우아한 훈연향과 섬세한 미네랄의 느낌을 지닌다고 평가받는다.
푸이-퓌메의 토양도 실렉스, 즉 부싯돌 성분의 규토와 석회암, 키메리지안 이회토로 구성돼 있다. 특히 상세르와 비교해 실렉스의 비중이 더 높은데, 푸이-퓌메의 '퓌메(Fume=Smoky)'라는 이름의 유래도 스모키한 향과 풍미를 유발하는 토양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한편 푸이는 이곳에 거주했던 로마 장군인 파울루스(Paulus)의 이름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루아르 강변의 청량한 테루아에서 태어난 와인들은 모두 풍부한 미네랄의 감각을 제공한다. 특히 루아르강 양안의 석회암과 점토질 언덕에서 자라는 소비뇽 블랑은 세계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섬세하고 복합미가 뛰어난 와인이 된다. 상세르와 푸이-퓌메 두 지역 모두 고품질의 와인을 생산하기 때문에 전문가가 아닌 이상 둘의 차이를 구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상세르가 조금 더 입에 가득차며 풍미가 확실한 강건한 스타일이고, 푸이-퓌메는 향이 더 풍부하다고 평가받는다.
앙리 부르주아 역시 72헥타르에 걸쳐 모자이크처럼 펼쳐진 여러 개의 작은 포도밭에서 상세르와 푸이-퓌메 와인의 다양한 뉘앙스와 풍미의 층위를 보여준다. 대표 와인은 '앙리 부르주아 상세르 레 바론(Henri Bourgeois Sancerre Les Baronnes)'을 꼽는다. 레 바론은 상세르 지역 테루아의 전형적인 우아함과 소비뇽 블랑 특유의 크리스피함이 섬세한 조화를 이루는 와인이다. 화이트 와인의 청명한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저온으로 발효된 후 병입 전까지 5~6개월 동안 효모 숙성된다. 코에서는 시트러스한 과일의 풍미가 풍부하게 느껴지며, 뒤이어 약간의 유칼립투스 기운이 감도는 둥글면서도 빛나는 맛이 입안을 감싼다. 마무리로는 이 지역 특유의 신선하고 미네랄리티가 돋보인다. 장-마리 부르주아는 "정찬을 시작하기 전 즐거움을 더하기 위한 와인을 생각하고 있다면 가장 훌륭한 선택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앙리 부르주아 푸이-퓌메(Henri Bourgeois Pouilly Fume)'는 푸이-퓌메의 대표 선수다. 점토와 석회암으로 이뤄진 토양의 환경이 푸이-퓌메 특유의 미네랄리티를 부여한다. 상세르와 마찬가지로 스테인리스 스틸 탱크에서 저온 숙성돼 강렬하고 섬세한 향을 보여주며, 병입 전까지 5~6개월 동안 효모 숙성된다. 신선한 꽃향을 지닌 와인은 잘 익은 시트러스, 키위, 유칼립투스 등의 섬세한 아로마와 함께 지역 특유의 부싯돌 향이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클로 앙리' 앙리 부르주아의 신대륙 테루아 프로젝트
앙리 부르주아는 21세기 들어 천혜의 자연을 품은 뉴질랜드로 눈을 돌린다.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새로운 테루아에서 자신들이 강점을 가진 소비뇽 블랑과 피노 누아(Pinot Noir) 와인을 생산해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2002년 뉴질랜드 말보르(Marlborough) 와이라우 밸리(Wairau Valley)의 양 방목지 99헥타르를 매입해 '클로 앙리(Clos Henri)'의 문을 열었다.
장-마리 부르주아는 "앙리 부르주아가 매입한 언덕 부지는 토양 자체가 가진 유기물이 완벽한 비율로 배합돼 있어 곰팡이병 같은 고질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재배과정에서 화학적인 조치가 전혀 필요하지 않은 곳"이라며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기반으로 자갈, 충적토, 진흙 등으로 이뤄진 토양이 두 품종의 큰 잠재력을 표현할 수 있는 테루아라고 판단해 자리를 잡게 됐다"고 설명했다.
'클로 앙리 와이마웅가 싱글 빈야드 피노 누아(Clos Henri Waimaunga Single Vineyard Pinot Noir)'는 피노 누아 100%로 만든 클로 앙리의 대표 와인이다. 와미마웅가는 진흙 토양에서 생산한 피노 누아의 섬세함을 잘 표현하는 테루아로, 프랑스의 전통을 계승해 매우 높은 식재 밀도를 유지해 응축되고 힘 있는 과실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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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의 20%는 줄기를 포함한 전체 송이를 이용하고, 나머지는 줄기를 제거해 분쇄 과정을 거치지 않고 중력을 통한 자연스러운 추출을 진행한다. 발효와 발효 전 침용은 3주까지 진행하며, 12개월 동안 100% 프렌치 오크 배럴에 숙성한다. 와인은 잘 익은 자두와 스파이스가 강렬한 첫 인상을 선보입니다. 체리, 보이젠베리의 노트가 타닌과 어우러져 훌륭한 구조감을 이룬다. 특히 테루아의 미네랄과 함께 복합적이고 여운을 주는 피니시가 인상적이며, 경성 치즈 같은 강렬한 향을 가진 음식과의 페어링이 좋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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