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이젠 고추밭으로 변한 운동장…폐교 사진만 찍는 선생님 "누군가의 유년시절이니까"[소멸]⑧

시계아이콘02분 53초 소요
뉴스듣기 글자크기

2008년부터 시작해 폐교 300여개 촬영
가장 기억나는 폐교는 동향초 성산분교
감곡초도 학생 수 18명에 불과
"학교, 경제논리보다는 복지로 접근했으면"

편집자주"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나이지리아의 유명한 속담이다. 하지만 문장 구조를 거꾸로 배치해도 말이 된다. 마을을 유지하려면 아이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마을들이 그러하다. 아이를 키우지 않는 마을들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서 낙후되고 컴컴하고 적막 속에 빠졌다. 방치된 폐교가 지역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직접 살피고자 한다.

"선생님! 선생님!" 15일 논밭으로 가득한 전북 정읍시 감곡면 감곡초등학교 인근은 오후 3시30분이 되자 시끌벅적해졌다. 집으로 가려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나온 것. 5분 전만 해도 사람이 다니지 않아 조용하던 곳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체크무늬 남방을 입은 서영주씨(54·남)에게 찰싹 달라붙어 말을 걸었다. 서씨는 크기가 제각각인 아이들 하나하나 머리를 쓰다듬고 조심히 집에 가라고 인사했다. 곧바로 집에 가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친구와 걸으면서 장난치는 아이도 있었다. 전교생이 18명에 불과한 시골 학교 교사와 학생의 일상이다.


이젠 고추밭으로 변한 운동장…폐교 사진만 찍는 선생님 "누군가의 유년시절이니까"[소멸]⑧ 지난 15일 전북 정읍시 감곡면 감곡초등학교에서 만난 서영주씨(54·남)는 초등교사이자 사진작가다. 그가 2008년 자신이 촬영한 전북 진안군 동향초 성산분교 폐교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공병선
AD

서씨는 26년차 초등교사인 동시에 폐교만 촬영하는 사진작가다. 2008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전남과 전북 지역을 다니면서 폐교를 촬영했다. 그가 지금까지 찍은 폐교만 300여개다. 2011년 폐고 사진을 모아 개인 사진전 '공상'을 열기도 했다. 서씨가 보여준 사진 속에는 정리가 잘 돼 깔끔한 폐교, 무성한 풀숲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폐교, 건물 자재가 부서져 흐트러진 폐교 건물 등이 담겨있었다.


그는 자신이 찍은 폐교들을 보여주면서 언제 갔고, 주변 풍경이 어땠고, 폐교에 무엇이 있었는지 모두 기억했다.


"전북 남원시 남천초등학교 폐교에는 오귀스트 로댕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이 동상으로 있더라고요. 2000년대에 세계화 흐름을 타면서 유럽식 동상이 학교에도 생겼는데, 재밌게도 옆에는 동양의 효를 의미하는 효자 소년 '정재수' 동상이 있고요."


서씨 기억에 가장 많이 남아 있는 폐교는 전북 진안군에 위치한 동향초 성산분교다. 산골 깊숙이 위치한 학교는 교실이 2칸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건물이다. 누가 보면 창고라고 착각할 정도라고 한다. 폐교 앞에 있는 작은 운동장엔 누군가 밭을 일궈 고추를 심어놨다. 폐교 건물의 벽에는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자'고 적혀 있었다.


그는 "동향초 성산분교를 촬영하면서 이 학교에 아이를 보냈던 학부모이자 마을주민을 만났다. 여기는 교사가 출퇴근하기 어려운 곳이라 부부 교사가 건물로 와서 지냈다고 한다"며 "폐교를 찾아다니다 보면 요즘엔 마주하기 어려운 표어가 적혀 있곤 하다. 과거 독재 정권이 필요로 했던 사상의 흔적이 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젠 고추밭으로 변한 운동장…폐교 사진만 찍는 선생님 "누군가의 유년시절이니까"[소멸]⑧ 지난 15일 전북 정읍시 감곡면 감곡초등학교에서 만난 서영주씨(54·남)가 2010년 폐교된 용곽초등학교 사진이 담긴 앨범을 보여주면서 설명하고 있다. 공병선

그가 폐교를 찍게 된 이유는 학교가 가지고 있는 남다른 의미 때문이다. 폐교가 지금은 방치돼 쓸쓸한 느낌을 주지만 이전에는 누군가의 유년 시절이자 기쁨이었다. 서씨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사람들의 유년 시절을 기록하기 위해 폐교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에 폐교 사진을 올리면 사람들이 찾아와서 그 학교에 대한 추억을 댓글로 남겼다. 그러한 댓글을 볼 때마다 서씨는 뿌듯함을 느낀다. "제가 나온 초등학교는 전북 전주시의 덕진초등학교입니다. 덕진초를 가끔 가면 옛날 추억이 떠오르고 그냥 기분이 좋아요. 폐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의 유년 시절 공간이자 기쁨의 공간입니다. 그 공간을 사진으로나마 남기고 싶었어요."


하지만 폐교를 찍으면서 기쁨만을 느낄 수는 없었다. 서씨는 "폐교는 단순히 학교가 문을 닫았다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폐교됐다는 것은 동네에 아이가 없다는 것이고, 어른도 도저히 정착할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 즉, 지역소멸 과정에서 남겨진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전북 지역도 인구 감소로 인한 폐교를 체감하고 있다. 교육지방자치단체 재산 조회사이트 지방교육재정알리미에 따르면 전북에서는 지금까지 61개의 폐교가 발생했고 이가운데 7개 폐교가 미활용 상태다. 감곡초와 멀지 않은 곳에도 폐교가 있다. 차로 7분 거리에 위치한 용곽초등학교는 학생 수 감소로 인해 2010년 감곡초와 통폐합되면서 문을 닫았다. 용곽초는 현재 지방교육재정알리미에서 생태체험장으로 자체 활용 중이라고 조회된다. 하지만 직접 찾아가 보니 문은 잠겼고 폐교 부지는 풀로 무성해 사실상 방치된 상태다. 용곽초 이야기에 서씨는 통폐합되면서 감곡초로 넘어온 용곽초 사진 앨범을 보여줬다. 사진 속에 있는 1970년대 학생들 100여명은 우르르 뛰어다니며 운동회를 즐기고 있었다.


이젠 고추밭으로 변한 운동장…폐교 사진만 찍는 선생님 "누군가의 유년시절이니까"[소멸]⑧ 지난 15일 방문한 전북 정읍시 감곡면 용곽초등학교는 감곡초등학교와 7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용곽초는 2010년 학생 수 감소를 이유로 폐교됐다. 지방교육재정알리미에서는 생태체험장으로 자체 활용 중인 것으로 조회되지만 방문하는 사람 없이 시설이 방치돼 있었다. 공병선

이런 현실은 서씨가 근무 중인 감곡초와도 멀지 않다. 전교생이 18명밖에 없기도 하지만 이가운데 5학년 3명, 6학년 5명이다. 올해 들어온 1학년은 1명이다. 감곡초는 감곡면의 유일한 학교라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5, 6학년 학생이 졸업하면 10명도 채 안 남을 수 있다. 정읍시의 인구는 1970년 기준 약 26만명에 달했지만 지난해 6월 기준 10만2851명으로 크게 줄었다. 시골 교사인 서씨는 학부모들이 자녀 교육 때문에 시골을 떠나 도심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숱하게 듣고 있다. 그가 담임을 맡고 있는 5학년 교실에도 의자는 3개뿐이었다.


하지만 서씨는 시골 학생들도 충분히 좋은 교육을 받고 행복하다는 이야기가 퍼지길 원했다. 그래야 아이와 부모가 시골을 찾지 않겠냐는 것. 감곡초 학생들은 시골에서 살기 때문에 방과 후 학원을 갈 수 없지만 드론, 골프 등 도시 학생도 배우기 어려운 것들을 방과 후 배우는 게 가능하다. 서씨가 무엇보다 강조한 건 선생님과 학생 간의 교감이다. 서씨는 "예전에 큰 학교에서 근무해봤지만 시골 학교만큼 아이들과 관계가 좋은 적이 없었다"며 "하나하나 눈을 마주치면서 수업을 하니까 집중도가 좋다.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고 발표도 모두 할 수 있으니까 아이들의 교육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AD

이젠 고추밭으로 변한 운동장…폐교 사진만 찍는 선생님 "누군가의 유년시절이니까"[소멸]⑧ 지난 15일 전북 정읍시 감곡면 감곡초등학교에서 만난 서영주씨(54·남)가 담임을 맡고 있는 5학년 교실. 책상과 의자가 각각 3개씩만 있다. 공병선

서씨는 학생이 줄었다고 폐교가 쉽게 이뤄지기보다는 가능한 한 오래 버티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번 폐교되면 재활용하기도 쉽지 않고 방치될 때 지역에 가져오는 악영향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교육만큼은 경제 논리로 접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육 복지 차원으로 접근해 몇 명의 학생이라도 충분한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며 "학교 문을 닫을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유입시킬 수 있을지, 지역 공동체를 강화할지 고민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이젠 고추밭으로 변한 운동장…폐교 사진만 찍는 선생님 "누군가의 유년시절이니까"[소멸]⑧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06.1114:00
     송인수 "채용을 바꿔야 교육이 바뀐다"
    송인수 "채용을 바꿔야 교육이 바뀐다"

    "출신 대학을 보고 채용하는 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도 없다." 송인수 교육의봄 대표는 아시아경제의 인터뷰에서 "기업이 채용할 때 지원자의 능력보다 '출신학교'를 보고 뽑기 때문에 학벌 경쟁이 벌어지고, '학벌'을 얻기 위해 사교육비 폭증이 생기는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2020년 창립한 교육의봄은 대한민국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학벌 없는 채용'이 핵심이라고 보고, 기업의 채용 변화에 나

  • 25.06.1114:00
     윤지관 "대학 특성화로 서열 구조 타파해야"
    윤지관 "대학 특성화로 서열 구조 타파해야"

    "대학 특성화를 통해 지방 대학을 살려야 서울 중심 대학 서열 체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윤지관 대학문제연구소 소장은 아시아경제와 만나 "서울 중심의 대학 서열 구조는 교육을 넘어 저출산의 원인이 되는 한국 사회의 근본적 문제"라고 말했다. 2014년 설립된 대학문제연구소는 대학 문제가 고등교육만이 아니라 인구, 사회불평등구조, 국민복지, 지역균형발전 문제 등 국가 의제와 맞닿아 있다는 인식 아래 해법을 연구해

  • 25.06.1114:00
     남궁지영 "정권 변해도 교육 정책은 백년가야"
    남궁지영 "정권 변해도 교육 정책은 백년가야"

    수능 응시자 3명 중 1명은 N수생인 시대다. N수생 증가는 수능 대비를 위한 사교육 증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따른 교육 불평등 확대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는 점에서 개선되어야 할 대표적인 교육 문제로 꼽힌다. 최근 N수생 실태를 조사한 남궁지영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잦은 입시 정책 변화를 최소화하는 것이야말로 교육 개혁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남궁 연구위원은 "2019년 조국

  • 25.06.1015:00
     벤 넬슨 "입시, 대학 자체 기준으로 뽑아야"
    벤 넬슨 "입시, 대학 자체 기준으로 뽑아야"

    "한국의 대학 입시 제도 개혁을 위해서는 모든 대학이 '하나의 시험'으로 인재를 선발할 게 아니라, 각 대학이 원하는 인재상에 따라 자율적으로 뽑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벤 넬슨(Ben Nelson) 미네르바 대학 설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아시아경제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대학별로 자체적인 입학 기준을 가져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넬슨 설립자는 대학의 인재 선발 확대가 수험생(학생)들이 자신에게 적합

  • 25.06.1015:00
     양오봉 "국가교육委 역할과 권한 강화해야"
    양오봉 "국가교육委 역할과 권한 강화해야"

    양오봉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전북대 총장)은 '입시 지옥'으로 대변되는 한국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의적인 토론형 교육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양 총장은 아시아 경제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교육부터 대학 교육까지 지식 전달식(주입식)으로 교육이 이뤄지는 것이 문제"라고 짚으면서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교육보다는 암기,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이 아직도 개선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양 총장은

  • 25.06.1408:00
    트럼프가 가로막은 하버드 유학…美 대학 전역으로 퍼지나
    트럼프가 가로막은 하버드 유학…美 대학 전역으로 퍼지나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대학교를 겨냥한 전방위적 압박에 나서면서 전 세계 유학생들 사이에 큰 혼란이 일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중국 공산당과의 연계를 문제 삼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버드대의 진보적 성향과 반유대주의 시위에 대한 정치적 공세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몇 주간 세 차례에 걸쳐 하버드 대학교 유학생 등록을 막고 비자 발급을 취소하려 했지만, 매번 미국 연방법원의 제동에 부딪혔다. 하

  • 25.06.1109:50
    강원택 "국민의힘 한심, 다투는 것도 한가로워"
    강원택 "국민의힘 한심, 다투는 것도 한가로워"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부 교수가 아시아경제 시사 유튜브 채널 'AK라디오'에 출연해 "이재명 정부의 첫인사는 무난했다. 문재인 정부 첫인사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지난 10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 충무로 아시아경제 스튜디오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강 교수는 "당장은 경제가 급하지만, 이 대통령이 국가의 장기 발전과 관련한 인프라를 깔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입법권이 사법권을 침해하는 듯한 모양새를 연

  • 25.06.0707:30
    美 월가 새 경제용어, '타코'에 트럼프가 격분한 이유
    美 월가 새 경제용어, '타코'에 트럼프가 격분한 이유

    최근 미국 월가에서 '타코(TACO)'라는 신조어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멕시코 음식 타코가 아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하는 관세 정책을 비판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장에서 이 용어를 사용한 기자에게 "무례하다"며 강하게 반발한 가운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조롱하는 영상들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월가의 신조어 타코는 'Trump Always Chicken

  • 25.06.0517:15
    ②박명호 교수 "이 대통령 과반 못 넘은 것 항상 유의해야"[AK라디오]
    ②박명호 교수 "이 대통령 과반 못 넘은 것 항상 유의해야"[AK라디오]

    5일 오전 9시 아시아경제 유튜브 채널 'AK라디오'에 출연한 박명호 동국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재명 대통령은 기회와 위기 요인을 동시에 갖고 있다"며 "단기보다는 중장기를 준비하는 리더십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보수의 키맨은 이준석·한동훈이 될 것"이라면서 "총선이 많이 남아 있어 국민의힘의 변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선 결과가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승부는 이미 결정된 선거였다. 기본적

  • 25.06.0417:35
    ①김만흠·채진원"대선 결과는 계엄 심판, 독주 견제"[AK라디오]
    ①김만흠·채진원"대선 결과는 계엄 심판, 독주 견제"[AK라디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21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다. 이재명 후보는 49.42% 득표율을 기록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41.15%),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8.34%),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0.98%)를 제쳤다. 4일 오전 9시 아시아경제 유튜브채널 'AK라디오'에 출연한 김만흠 전 국회 입법조사처장과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계엄에 대해 심판하면서도 이재명 후보가 과반을 얻지 못하고 김문수 후보와의 격차가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