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고율관세, 협상용 확인…수출 위축 우려↓
韓 5월 수출 감소, 일시적 공백 그칠 듯
미국과 중국이 상호 부과했던 고율 관세를 대폭 인하하기로 합의하면서 한미 간 관세 협상에도 청신호가 켜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 공급망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극단적인 보호무역 기조가 누그러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우리 산업계도 우려를 덜어내는 분위기다.
13일 국내 산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번 미·중 관세 협상에 따른 중간재 수요 개선과 공급망 불안이 해소가 국내 업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앞서 미·중 양국은 지난 10~1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첫 고위급 무역 협상에서 지난 2월 이후 경쟁적으로 올렸던 상호관세를 90일간 낮추기로 했다고 12일 발표한 바 있다.
"트럼프 고율 관세, 협상용 확인…수출 위축 우려 완화"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간 트럼프 행정부가 높은 관세를 부여한 것이 협상용에 불과했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한국도 대미 수출 주력 상품들에 대한 협상 여지가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이 불리해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빠르게 봉합 국면으로 전환한 것"이라며 "두 나라를 가장 큰 교역국이자 공급망으로 둔 한국에 긍정적 요인이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대중 중간재 수출,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가는 수출, 중국 내수용 수출 위축 우려가 완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중국의 핵심광물 수출 통제로 인한 불확실성도 일부 해소됐다"고 덧붙였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압박은 계속될 것으로 봤다. 장 원장은 "미·영 합의 내용처럼 한국에 대해서도 중국산 우회 수출 방지 등을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며 "상호관세는 하한선까지 낮아지겠지만 협상의 포인트는 자동차·철강·반도체 등 품목별 관세를 얼마나 낮출지를 두고 양국 간 팽팽한 줄다리기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태규 한국경제인협회 글로벌리스크팀장은 "불확실성은 남아 있지만, 한국에 긍정적 시그널"이라며 "중국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계속되겠지만, 교역에서 중국을 100% 배제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인지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양국의 갈등이 어느 수준에서 봉합될지, 그것이 한국의 미·중 수출에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업종별로는 이번 협상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나타났다. 석유화학 업계는 중국산 제품이 미국으로 분산되면 공급 과잉이 완화되며 밀어내기 저가 물량이 감소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한국화학산업협회 관계자는 "한국의 대중 수출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했다. 반면, 배터리 업계는 중국산 저가 제품의 대미 수출 확대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이 관세 완화로 더 부각될 경우 일부 항목에선 경쟁 심화가 불가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 원장은 "대중 관세가 100% 이상일 때와 비교해 우리 기업들의 반사 이익이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韓 5월 수출 감소, 일시적 공백 그칠 듯…의도적 수출 속도조절도
앞서 5월 한국은 수출이 감소하며 휘청대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특히 대미 수출(1~10일)은 전년 대비 30.4% 급감, 전달(-6.8%)에 이어 감소 폭이 확대됐다. 전체 수출은 23.8% 줄며 4년 7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감소했다. 일각에서는 미국발 관세 충격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판단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연휴로 조업일수가 감소한 영향과 철강, 자동차 등 업종의 수출 속도 조절 영향이 오히려 더 크다는 것이다.
대미 철강 수출은 5월 1~10일 기준 전년 대비 41.2% 급감했지만, 업계는 관세 충격 탓이라는 해석을 경계했다. 업계 관계자는 "철강은 선적 일정에 따라 수출량 변동이 크다"며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월보다 오히려 늘었다. 이른 시점의 통계만 보고 관세 충격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조선업 수출은 5월 초 기준 전년 동기 대비 8.7% 감소했으나, 업계에선 조업일수 축소와 인도 일정에 따른 일시적 공백으로 보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은 제작·인도 기간이 길어 단기간 수출 통계로 산업 상황을 진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관세 영향을 주시하며 수출 선적 속도를 늦추고 있다. 앞서 25% 고율관세가 부과되기 직전인 3월까지 수출을 늘리며 재고를 넉넉히 확보해두기도 했다. 지난달 실적발표에서 현대차는 3개월분, 기아는 2개월분의 재고를 확보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현대차·기아의 경우 미국 현지 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가 3월 이후 본격적으로 가동률을 높이면서 전기차 수출이 줄어든 영향도 있다. 현재 HMGMA에서는 아이오닉 5와 아이오닉 9 등 2개 차종을 생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이 시시각각 변하면서 국내 수출 기업의 전략에도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번 주 한미 통상 실무협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품목 중 유일하게 수출액이 증가한(14.0%) 반도체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가치 메모리가 선전하면서 관세 정국의 영향을 피해 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업계에서는 품목 관세가 부과되기 전 고객사들이 반도체 재고 확보에 나서면서 수출액이 증가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PC, 스마트폰 등에 쓰이는 범용 반도체의 경우 관세가 부과되기 전까지 공급을 당겨서 요청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시간이 갈수록 불확실성이 증대될 수 있기 때문에 고객사와의 협력을 강화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전년 동기 대비 47.2%로 수출액이 가장 크게 감소한 가전제품 업계의 경우 관세 유예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입지 않았지만, 불확실한 정책으로 인한 전반적인 소비 위축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이 전 세계 각 지역의 소비 심리 위축으로 이어졌을 것"이라며 "아울러 지난해 관세 정책이 예고되면서 선행 수주를 했거나 현지 재고 영향에 따라서 일시적으로 줄어든 것처럼 보였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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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관세청은 줄어든 조업일수가 착시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이달 초 조업일수는 5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5일보다 줄었다. 관세청 관계자는 "단순 수출액은 줄었지만, 조업일수로 보정한 일평균 수출 감소 폭은 1% 안팎"이라며 "관세 영향으로 보긴 어렵다"고 했다.
심성아 기자 hea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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