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7조대 손실 예상
엔비디아, 삼성·하닉까지 주가 하락
업계 "반도체 시장 위축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칩 H20의 중국 수출을 무기한 제한하면서 해당 칩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해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AI 반도체 수요 축소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고부가 메모리 사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엔비디아는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정부로부터 H20 칩의 중국 수출에 대해 별도 허가가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았으며, 해당 조치가 무기한 적용된다는 추가 통지를 받았다고 15일 밝혔다. 미국 정부는 H20이 중국 슈퍼컴퓨터에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규제 근거로 제시했다. H20은 고성능 메모리 및 연산 칩 간의 연결성이 우수해 고성능 컴퓨팅에 활용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H20은 미국의 고사양 반도체 수출 통제 이후 중국에 합법적으로 공급 가능한 최고 사양 칩으로, 중국 내 AI 수요를 겨냥해 개발된 제품이다. 특히 중국의 주요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과 AI 스타트업들이 이 칩을 대거 도입하면서 사실상 중국향 AI 칩 수요의 중심에 있던 제품이었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공개한 AI 모델도 이 칩을 학습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트댄스 등 중국 기술 대기업이 올 1~3월 사이 H20 칩을 160억달러(약 22조8000억원) 이상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전 분기 대비 40% 이상 늘어난 수치로, 미국의 수출 규제가 본격화되기 전 주문이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조치로 엔비디아는 재고와 구매 약정 손실 등으로 1분기에만 약 55억달러(약 7조8567억원)의 비용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의 우려는 H20에 탑재되는 4세대 HBM3 공급 때문이다. 국내에선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이 HBM을 공급한다. H20과 같은 제품의 출하 차질은 곧 관련 메모리 판매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HBM은 전체 메모리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크지 않지만 수익성이 높아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고부가 사업 전략에서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수출 제한으로 AI 칩 시장 전반이 위축될 경우 HBM 수요 감소와 함께 메모리 단가 하락, 패키징 설비 가동률 저하 등 연쇄적인 영향이 우려된다. 특히 SK하이닉스는 HBM을 중심으로 AI 반도체 생태계에 깊숙이 연결돼 있어 실적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는 단기적으로는 기존 주문 물량이 일부 조정되며 영향이 제한될 수 있지만, 규제가 장기화될 경우 시장 구조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HBM 외에도 엔비디아와 패키징 및 후공정 협력을 진행 중으로, 엔비디아의 AI 칩 수출 제한은 다양한 부문에서 국내 기업과의 협업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수출 규제가 시장 자체를 축소시키기 때문에 우려할 수밖에 없다"며 "그동안 수출 규제가 계속 번복되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을지는 계속해서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엔비디아 수출을 규제하더라도 일부 활로만 막힐 뿐 전체 시장 파이 자체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 기업의 성장을 막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도 "HBM의 경우 주문형 제품이기 때문에 당장 영향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면서도 "다만 장기적으로는 AI 칩 시장 자체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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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수출 규제 발표 직후 국내 반도체 관련주는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6일 오전 10시45분 기준 전일 대비 각각 2.3%, 2.55% 하락했다.
박준이 기자 gi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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