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 개시
반도체 공급망 전반 조사
韓·대만 등 영향 불가피…"공급망 혼란 초래"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반도체와 의약품 등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기 위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듭 예고한 대로 반도체와 의약품에 관세를 부과하기 위한 수순을 밟는 것이다. 한국의 핵심 대미 수출 품목인 자동차와 철강·알루미늄에 이어 반도체도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14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는 관보에서 반도체, 반도체 제조 장비, 파생제품의 수입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기 위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의약품과 그 원료에 대해서도 조사를 개시했다고 전했다.
이는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조사다. 이 법은 특정 품목의 수입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관세 등 적절한 조치로 대통령이 수입을 제한할 권한을 부여한다.
앞서 철강·알루미늄, 자동차에도 232조를 활용해 25% 관세를 부과한 만큼 반도체와 의약품도 무역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의약품은 지난 9일부터 시작한 상호관세 부과 대상에서 빠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의약품 등에 대해 철강·알루미늄, 자동차처럼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전날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반도체 관세가 "아마 한두 달 내로"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반도체 관세가 "아주 가까운 미래에 시행될 것"이라며 다음 주 중 세율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관보에 따르면 반도체와 의약품에 대한 이번 조사는 지난 1일 시작됐다. 상무부는 이번 조사를 오는 16일 관보에 공식 게재한 뒤 21일간 의견을 수렴할 방침이다. 상무부 장관은 조사 시작 270일 이내에 결과를 발표해야 하지만, 실제 관세 부과는 이르면 다음 달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관련 조사 대상에는 반도체 기판과 웨이퍼, 범용 반도체(레거시 반도체), 최첨단 반도체, 미세전자, 반도체 제조 장비 부품 등이 포함된다. 또 상무부는 미국 내 수요와 생산능력, 미국 내 생산력 확대 가능성 등 공급망 전반과 외국 정부의 보조금, 약탈적 무역관행, 관세나 수입량 제한(쿼터) 등의 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달라고 했다. 의약품 관련 조사 대상은 완제약, 원료의약품(API)과 같은 핵심 원료, 백신과 항생제 등 공중보건 위기에 대한 의료 대응책 등이다.
외신들은 반도체 관세가 본격화될 경우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의 TSMC 등 해외 첨단 반도체 제조사들이 가격을 인상하거나 마진 축소를 감수해야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일부 기업들에는 유연성이 있을 것"이라고 했고, 중국의 반도체 역량 강화를 봉쇄하기 위해 동맹국 간 공조가 필수적인 만큼 일부 협상 여지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른 제품에 탑재해 수입되는 반도체에 대해서도 관세가 적용될지도 관심사다. 미국에 수입되는 대다수의 반도체는 아시아나 멕시코 등지에서 전자제품, 장난감, 자동차의 부품으로 조립돼 들어온다. 제품 내 포함된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는 없지만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부터 이와 관련한 조사를 시작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새로운 관세 부과는 자동차부터 항공기, 휴대폰에 이르기까지 필수적인 반도체 산업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며 "이러한 관세는 공급망에 큰 혼란을 초래하고 미국인들의 비용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운동 때부터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제정한 반도체 법을 비판해왔다. 보조금 지급은 예산 낭비며, 관세 부과만으로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촉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반도체 관세 부과는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대만 등은 막대한 보조금과 세금 감면 등 수단을 통해 반도체 제조를 지원하는 만큼 관세가 미국 내 산업 활성화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28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신규 반도체 공장 105개가 가동될 예정인데 이 중 미국에 건설될 곳은 15개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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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라이릴리와 머크 등 주요 글로벌 제약사들은 전 세계에서 제조시설을 운영하는 만큼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제약사들은 최근 노바티스가 향후 5년간 미국에 23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히는 등 관세에 앞서 미국 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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