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베일런트 '파이어 웨더'
불, 인류 문명 꽃 피운 원동력
대형화재땐 모든 것 잃어
석유산업 커지며 탄소배출
지구 온도 높여 火 '악순환'
석유시대 이후 생명 남아도
그게 인간이란 보장 있을가
불은 지극히 양면적이다. 인류 문명을 꽃피운 원동력이지만, 동시에 쌓아온 모든 것을 단숨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파괴력이 있다. 최근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대형 산불은 10일 넘게 이어지며 여의도의 166배에 달하는 면적(4만8239ha)을 삼켰고, 지난 4일 기준으로 82명의 인명 피해를 남겼다. 캐나다의 논픽션 작가는 이 책에서 이러한 화재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결과라고 지적한다.
문명을 위협하는 화마의 포악성은 과학기술이 발전한 현대에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1657년 3월 일본 에도(현 도쿄)에서 발생한 메이레키 대화재는 도시 면적의 3분의 2를 불태우며 1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871년 미국 시카고 대화재는 30여 시간 만에 약 2만채의 건물을 태워 10만명 이상의 이재민을 낳았다. 1904년 볼티모어 대화재 역시 이틀간 2500여 채의 건물을 파괴했다.
2016년 5월 캐나다 앨버타주 포트맥머리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주민 대피를 기록했다. 하루 만에 1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이 화재는 무려 15개월 동안 이어졌다. 피해액은 100억 달러(약 14조4000억원)에 달했고, 주택 2500여 채가 불탔으며, 2590㎢의 산림이 사라졌다.
포트맥머리 화재에서 주목할 점은 불을 이용한 석유산업(아스팔트 등의 원료가 되는 역청 생산)의 호황으로 형성된 도시가 불로 인해 흩어졌다는 것이다. 2000~2010년 사이 1.5m 간격으로 찍어내듯 똑같이 지은 집들은 불길이 번지는 촉매로 작용했다. 폴리염화비닐 소재의 외장재는 '고체 휘발유' 역할을 했다. "현대인 대다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석유에서 나온 고인화성 물질을 두르고 하루를 시작한다. (...) 포트맥머리 화재는 과거 150년 동안 나란히 성장한 석유산업과 화재의 양상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탄화수소 자원 개발, 그로 인해 열을 가두는 온실가스가 실시간으로 증가하고 날씨가 급변하는 현상 사이에서 발생한 맹렬한 시너지였다."
21세기 산업 중심지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바로 '화재 적란운'이다. 너비는 320km, 높이는 성층권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이 구름은 지구 자전에 영향을 줄 정도의 에너지를 품는다. 동시에 일산화탄소, 사이안화수소, 암모니아, 미립자와 탄소 등 각종 오염물질을 성층권까지 끌어올리는 통로가 된다. 이 미립자들은 극지방의 제트기류를 타고 지구 곳곳으로 퍼진다.
저자는 석유 산업의 확장과 함께 탄소 과다 배출이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에너지 전문가 대니얼 예긴에 따르면 2019년 전 세계 경제 규모(약 90조 달러)의 84%가 화석연료에서 비롯됐고, 전 인류가 하루에 사용하는 원유량은 158억 리터에 달했다. "방대한 양의 석유가 전 세계 거의 모든 자동차, 트럭, 비행기, 기차, 배의 연료가 되고, 플라스틱이나 섬유 비료의 핵심 원료가 된다. 원유는 우리 생활의 모든 면은 물론이고 우리 몸 대부분과도 안팎으로 맞닿아 있다."
탄소의 과도한 배출은 대기 속 열의 정체를 가속화하며, 이는 다시 화재 발생을 부추기는 악순환을 낳는다. 저자는 "대형 화재는 지구 기후가 바뀔 만큼 다량의 탄소를 성층권에 유입시킬 수 있다"는 과학계 의견을 전하면서 "대기에 열이 정체될수록 화제가 잦아지고 화재 적란운이 많아진다"고 지적한다.
위기감에 따른 변화 움직임은 법원에서 관측된다. 2021년 5월26일 네덜란드 헤이그 지방법원 재판부는 환경 단체 '지구의 벗' 네덜란드 지부가 석유업체 셸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셸이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19년 배출량의 55%까지 줄여야 할 '주의 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이 민간기업에 이런 제재 조치를 내린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상황이 엄중하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2018년 8월 캘리포니아 레딩에 불 토네이도가 몰아치며 마을 전체를 파괴한 직후, 저자는 잿더미 속 땅에서 솟아오른 새싹 하나를 발견한다. 불길을 피한 뿌리에서 다시금 생명이 돋아난 것이다. 그는 말한다. "이제 우리가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하는 건 불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 석유 시대가 끝나도 지구에 생명은 남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생물이, 얼마나, 어디에 남게 될지는 분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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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 웨더 | 존 베일런트 지음 | 곰출판 | 588쪽 | 2만8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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