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유통기한 5년도 안 되는 경제정책을 믿고 투자하겠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기존 정책이 폐기되고 뒤집히면 국제사회에서는 결코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한창 '서학개미' 붐이 일 당시 뉴욕에서 만난 전직 당국자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로 경제 정책의 구조적 불안정성을 꼽았다. 정권 교체 시마다 폐기, 리셋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행정력을 낭비하는 것은 물론 정책 일관성을 해치고 시장의 예측 불확실성까지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으로 6월 장미대선을 앞둔 한국은 또다시 이러한 정책 리셋의 기로에 선 상태다. 아직 주요 대선 주자들의 공약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번에도 상당수 정책이 폐기, 사장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살아남은 정책들도 일부 이름만 바뀐 채 ‘재포장’되는 상황이 반복될 전망이다.
사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달라지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민이 선택한 방향이 바뀌었으니 새 국정운영 방향이 그것에 맞게 설정되는 건 당연하다.
다만 문제는 정치적 주기와 무관하게 다뤄져야 할 경제정책까지도 정권에 따라 출렁이면서 자본 시장에 깊은 불신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정책의 경우 정책 효과가 가시화하기까지 수년 이상이 걸리는 특성 등으로 인해 그 어떤 부문보다 일관된 방향성이 중요하다. 특히 자본 시장은 이러한 일관성, 예측 가능성을 바탕으로 작동한다. 즉 외국인 투자자, 기업들에 있어 중요한 것은 '누가 정권을 잡았느냐'가 아니라 '이 나라의 시스템은 신뢰할 만한가'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는 나라에 장기 투자를 결정할 글로벌 자본은 거의 없다는 전직 당국자의 지적은 여기서 출발한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 선진국들이 정권 교체 시에도 핵심 경제정책만은 일관되게 유지해온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시스템 기반의 정책 지속성을 통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이 나라에서는 중장기 전략, 투자가 가능하다'는 신호를 주는 셈이다. 반대로 정치 논리를 경제정책에 끌어들이는 순간 시장의 신뢰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는 대외신인도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
한국 자본 시장은 오랜 기간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고질적 문제점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부터 역점을 두고 추진 중인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그램'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라는 결과물로 이어지기 위해선 장미대선 이후에도 흔들리지 않는, 일관된 추진이 필수적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현재 여야 공통적으로 자본 시장 선진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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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 발표를 앞둔 대선 주자들 역시 밸류업 프로그램이 어느 한 정권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자본 시장의 장기 프로젝트라는 점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누가 집권하든 한국 자본 시장의 펀더멘털을 끌어올리기 위한 정책 일관성은 유지돼야만 한다. 단기적 성과를 위한 포퓰리즘에 그쳐서도, 정권 교체를 이유로 이름만 바꿔 재포장되는 행정력 낭비가 있어서도 안 된다. 정권을 넘어서는 연속성과 일관성, 그게 바로 진짜 밸류업이다.
조슬기나 증권자본시장부 차장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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