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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모금]그토록 바라던 친밀한 관계…'여백' 마련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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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목회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기석 목사의 칼럼 63편을 엮었다. 저자는 경제 불안, 기후 위기, 사회 갈등이 사회적 경계선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사회적 약자들을 극단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배제와 적대감이 만연한 사회에 '환대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다양한 가치와 차이를 포용하는 것이 민주주의와 신앙의 본질이라고 강조하며, 동서고전에 기반한 인문학적 통찰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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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모금]그토록 바라던 친밀한 관계…'여백' 마련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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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과 그 가족들을 침묵시키려 한다. ‘조용히 해!’ ‘기다려!’ ‘그만하면 됐지 뭘 더 바라!’라며 몇 푼의 보상으로 그 사건이 완료된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다. 어처구니없는 참사를 겪은 이들에 대한 진정한 애도는 그런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사회 제도를 개선하고 생명 존중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조롱과 모욕을 당하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이들, 망각에 저항하며 기억 투쟁을 벌이는 이들은 결코 지지 않는다. 흐릿해지는 기억을 되살리려는 이들이 있는 한 정의는 무너지지 않는다. 버밍햄 교도소에서 루터가 성직자들에게 편지를 보낸 날짜는 공교롭게도 4월 16일이었다. <22~23쪽>

플라톤의 철인왕까지는 기대하지 못한다 해도 인문적 교양을 갖춘 이들이 국민의 대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복잡하고 다양한 인간의 실상을 깊이 통찰하고, 주변화된 이들의 소리를 귀담아듣고, 역사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시대다. 그는 또한 우리 시대가 직면한 다양한 위기를 직시하고 그 위기를 헤쳐 나갈 실천적 지혜를 갖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의 사고는 유연해야 하고, 인간에 대한 존중이 그의 심성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깎아내리는 것으로 자기 존립의 근거를 삼으려는 사람들, 버럭버럭 피새를 부려 다른 이들의 입을 막아버리는 사람들이 역사의 무대에 오른다면 역사는 퇴행하기 마련이다. <70~71쪽>

욕망이라는 전차에 올라탄 인류는 카산드라의 시간을 살고 있다. 소비주의라는 종교가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다. 욕망의 확대 재생산을 통해 유지되는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희소성의 기호를 만들어내 사람들을 유혹한다. 욕망과 만족의 시차를 사람들은 견디지 못한다. 안간힘을 다해 얻은 행복의 기호를 손에 쥐는 순간 또 다른 결핍이 눈에 띈다. 행복은 유보되고 피곤한 일상만 남는다. 피로사회는 그렇게 도래한다. <132쪽>

이름은 전조라는 말이 있다. 이름을 듣는 순간 우리 몸과 마음이 동시에 반응한다. 좋아하는 음식 이름을 들을 때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지고 입에 침이 고인다. 싫어하는 음식 이름을 듣는 순간 낯이 찌푸려진다.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그리움이 물안개처럼 번져오고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마음 가득 불쾌함이 몰려오고 몸이 굳어지게 하는 사람이 있다. 이름은 구별을 위한 기호다. 이름을 안다는 것은 개별성에 눈을 뜬다는 말이다. <192쪽>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을 맞아들일 여백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지 허물없이 이웃을 맞아들이기도 했던 집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으로 변했고, 모처럼 벗들을 만나도 설면하기 이를 데 없다. 직접 대면보다 익숙한 것은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한 간접적 만남이다. 그 공간에서는 상대방의 글에 ‘좋아요’ ‘힘내요’ ‘슬퍼요’ 등으로 공감을 표현할 수는 있지만, 그의 현실에 깊이 연루되지는 않는다. 안전한 거리가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는 다른 이들의 필요에 응답할 때 주어지는 선물이다. <236쪽>

삶의 무게에 짓눌려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찾아갈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야 한다. 물론 그 장소는 특정한 공간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공동체일 수도 있다. 아무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곳에서는 혹은 그의 곁에서는 그저 나답게 있어도 괜찮은 장소가 있다면 우리는 삶의 곤고함을 이겨낼 수 있다. 정원을 가꾸며 시름을 달래는 이들도 있고, 밭에서 호미질을 하며 마음을 가지런히 하는 이들도 있다. (...) 세상 도처에 환대를 통해 장소를 아름답게 만드는 이들이 있다. 적대의 바다에서 환대의 샘물을 솟쳐 올리는 이들 덕분에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264~266쪽>


최소한의 품격 | 김기석 지음 | 현암사 | 308쪽 | 2만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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