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플랫폼 발란 24일 미정산 사태
이번에는 기업회생 준비 의혹
발란, 셀러들에게 "28일 정산 일정 공지"
실리콘투, 발란에 150억원 규모 투자 결정
최근 판매자(셀러) 미정산 사태를 일으킨 명품 플랫폼 발란이 기업회생(법정관리)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 24일 발란은 정산 시스템 재점검으로 인해 오는 28일까지 정산 일정과 금액을 공지하고 대금을 지급해 나가겠다고 밝혔지만, 직원들이 전원 재택에 들어간 데다 최형록 대표마저 연락이 두절됐다.
발란이 기업회생을 신청하면 사내 자금은 동결되고 회생계획에 따라 변제되는 만큼 셀러들은 당장 정산금을 지급받지 못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제2의 티메프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명품 플랫폼 발란, 셀러 판매대금 정산지연…기업회생 준비 의혹
2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발란은 지난 24일 셀러들에게 지급하기로 한 정산금을 주지 못했다. 종래에 지급된 정산금 자료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오류를 확인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발란 관계자는 "셀러들에게 오지급됐던 부분들이 발견돼 한 번에 정리해 안내하려는 것"이라며 "정산 미지급이 장기화하는 것이 아니고 26일까지 재정산 작업을 완료하고, 28일에는 파트너사별로 정산 금액을 공지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발란이 그동안 기업회생절차를 준비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발란은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기 위해 대리인을 선임하고 회생절차를 밟기 위해 서류를 준비 중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발란 관계자는 "확인하고 있다"면서 "다만 의사결정이 대표 중심으로 이뤄져 내용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발란이 최근 실리콘투로부터 150억원의 투자를 유치한 직후 발생했다. 발란은 이미 실리콘투로부터 75억원을 받았지만, 셀러들에게 지급될지는 미지수다. 기업회생 절차가 시작되면 모든 채무가 동결되고, 법원은 관리인을 지정(지정하지 않으면 회사 경영진)해 자금관리와 경영 활동을 맡긴다. 발란이 마련한 회생계획안에 대해 채권단과 합의하면 해당 계획대로 변제와 회사 운영이 이뤄지게 된다.
발란의 셀러들은 지난 25일 본사에 찾아가 판매 대금 정산을 요구했지만 발란 측은 28일까지 기다려 달라는 입장을 전했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회사에 진입이 어려운 상태"라며 "28일까지 정산 일정과 액수를 공지하겠다는 것이 유효할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단 한 번도 '흑자' 못 낸 발란…완전 자본잠식
2015년 설립된 발란은 코로나19 기간 명품 소비가 급속도로 늘면서 외형이 크게 확대됐다. 2020년 243억원이었던 매출액은 2021년 522억원으로 2배나 증가했고, 2022년에는 891억원으로 300억원이 불어났다.

하지만 수익성은 매년 후퇴했다. 2020년 63억원이었던 영업손실은 이듬해 190억원, 2022년 379억원으로 확대됐다. 명품 플랫폼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마케팅 비용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발란은 김혜수를 TV·온라인 채널 광고모델로 썼다. 올해는 아직 감사보고서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적자가 이어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때문에 발란의 재무구조는 악화됐다. 2023년 기준 발란의 자본총액은 마이너스 77억원으로 자본금 4억7000만원보다 적어 완전 자본잠식에 빠졌다. 결손금은 785억원까지 불어났다.
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자산 규모는 2023년 기준 56억원으로 전년 192억원에서 대폭 줄었다. 이 기간 현금성 자산은 34억원에 그쳤다. 1년 내에 만기가 도래한 유동부채는 138억원에 달하면서 발란은 지난해 투자금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860억 곳간 채운 실리콘투, 발란에 왜 투자했을까
발란은 지난달 실리콘투로부터 15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2022년 10월 이후 2년 4개월 만에 투자를 유치한 것이다. 실리콘투는 글로벌 물류, 유통망을 활용해 중소 K뷰티들의 글로벌 진출을 돕는 회사다.
실리콘투는 지난해 K뷰티의 호황으로 현금성 자산이 크게 늘면서 발란에 대한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리콘투의 지난해 기준 현금성 자산(매출채권·단기 기타금융자산 제외)은 860억원에 달한다. 2023년 172억원 대비 400% 급증한 수치다.
발란은 최형록 대표가 37.64%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고, 네이버(7.98%)가 2대 주주다. 이 밖에도 리앤한과 신한캐피탈, 우리벤처파트너스, 코오롱인베스트먼트, 컴퍼니케이파트너스, 한국성장금융투자운용 등이 실리콘투와 함께 주요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실리콘투는 지난달 28일 투자금의 절반인 75억원을 지급했다. 나머지 75억원은 올해 11월1일부터 내년 5월1일까지 매달 1일 기준으로 거래 조건을 충족하면 지급하기로 약정했다. 전환사채권의 표면이자율은 0%, 만기이자율은 4%다. 실리콘투가 제시한 조건은 ▲직전 2개월간 모두 연속으로 월매출 중 사입판매(직매입제품) 매출 비중이 50% 이상일 것 ▲직전 2개월 연속으로 영업이익 흑자 달성 두 가지였다.
실리콘투는 발란의 성장 가능성에 베팅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달 10일 발란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실리콘투의 글로벌 물류와 마케팅 노하우를 글로벌몰인 '발란닷컴'에 적용해 사업을 키우겠다고 밝혔다. 실리콘투는 명품 패션을 결합한다면 사업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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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 달여 만에 발란이 정산금 미지급사태, 기업회생 신청 의혹들을 일으키면서 실리콘투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실리콘투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해당 사항을 면밀히 확인 중"이라며 "당장 구체적인 답변을 드리기 어려운 상황임을 양해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이민지 기자 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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