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네슬레, 합작법인 설립 12년만에 청산 돌입
한국 커피 믹스 시장 점유율 1%대, 넘지 못한 높은 벽
12년간 매출 뒷걸음…시장 점유율도 하락
세계 최대 식품기업 네슬레가 국내 인스턴트 커피 시장에서 철수한다. 2014년 국내 최대 유통그룹 롯데와 손잡고 한국 시장을 공략했지만, 토종 커피와 경쟁에서 밀리면서 12년 만에 합작법인이 문을 닫는 것이다. 네슬레는 합작법인과 별도로 국내 시장에서 직접 진출한 네슬레 코리아를 통해 사업 일부를 이어갈 전망이다.
20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롯데웰푸드와 네슬레가 지분 50% 보유한 롯데네슬레코리아는 내년 1분기 문을 닫는다. 두 기업은 글로벌 우선순위와 국내 시장 상황, 양사의 공통된 역량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합작법인을 유지하는 것보다 청산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롯데네슬레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세계 최대 식품기업으로, 네스카페 인스턴트 커피와 커피믹스, 초콜릿 분말음료, 과일 분말음료, 펫푸드 등을 생산·유통했다.
대기업 합작회사 출범…점유율은 1%대
네슬레는 1987년 10월 한국네슬레를 설립하며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1989년 커피믹스 브랜드 '테이스터스 초이스'를 출시하고, 국내 믹스 커피 시장에 도전했다. 롯데그룹도 롯데칠성이 2013년 칸타타를 앞세워 시장 점유율 1%대 그치며 고전하자 롯데그룹이 네슬레에 사업제휴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측은 2014년 합작법인 롯데네슬레코리아를 설립하고 공격적인 시장 확장에 나섰다. 롯데는 합작사 설립을 위해 총 500억원을 출자했다. 네슬레는 롯데의 유통망과 영업망을 이용해 점유율 확대를 노렸고, 롯데는 네슬레의 제품력을 활용해 커피 본연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큰 그림도 그렸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 고전은 계속됐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커피믹스 시장 점유율은 동서식품이 90.8%로 독보적 1위다. 남양유업이 5.6%로 뒤를 이었으며, 롯데네슬레는 1.5%에 불과했다. 인스턴트커피도 동서식품(75%), 네슬레(19.1%), 남양유업(0.1%) 순이었다.
롯데네슬레코리아 매출액은 2014년 2844억에서 2023년 2400억원으로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수익성도 부진했다. 롯데네슬레코리아는 합작법인 설립 이후 5년간 적자를 이어오다 2019년 34억원의 흑자로 전환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2023년 기준 40억원 등 매년 수십억 안팎에 그쳤다. 영업이익률은 1%대에 머물렀다. 롯데그룹이 최근 비효율적인 계열사를 정리하고, 핵심 사업을 강화하는 전략을 추진한 점이 이번 청산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롯데 관계자는 "성과가 미미하다 보니, 합작 법인 운영 종료를 수년 전부터 논의해왔다"면서 "1년간 청산 절차를 밟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와 결별한 네슬레, 한국 시장 독자 공략
롯데네슬레는 지난 14일 이사회를 통해 운영 종료를 최종 결정했다. 롯데네슬레와 별개로 운영한 네슬레코리아가 롯데네슬레의 일부 사업을 이어받는다. 네슬레코리아는 다음 달 1일부터 '네슬레 퓨리나 펫케어' 사업을 진행한다. 네슬레 퓨리나 펫케어는 현재 롯데네슬레코리아에서 운영 중인 반려동물 사업 부문이다. 이달 내 네슬레코리아로 영업권을 이전하고 직원도 네슬레코리아로 이동한다. 네슬레코리아는 네스카페 등 일부 커피 제품을 판매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법인 청산은 주주총회에서 청산 결정을 내리면 법적 절차가 개시된다. 청산인을 선임한 후 부채 및 자산을 정리한다. 통상 청산인은 기존 경영진(법적 대표)가 맡는다. 롯데네슬레의 주요 자산인 청주공장과 네슬레프로패셔널 기업간거래(B2B) 장비도 매각 대상이다. 네슬레 관계자는 "청주공장은 1980년대 지어져 생산시설 경쟁력은 낮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은 자산은 주주의 지분율에 따라 배분한다. 2023년 기준 롯데네슬레코리아는 현금성 자산 17억원을 포함한 자산이 1572억원, 부채는 795억원이다. 부채 변제 후 남은 순자산(777억 원)을 기반으로 주주들에게 분배가 가능하다. 다만 누적 적자로 인한 결손금이 752억원에 달하는 만큼 실제 배당 가능한 자산은 거의 없을 것으로 추정된다.
롯데네슬레가 예상보다 일찍 사업을 종료하면서 네슬레 본사에 지급한 로열티 정산 여부도 관심 대상이다. 롯데네슬레는 2014년 네슬레와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하면서 30년간 기술사용료를 지불하도록 했다. 당시 계약에 따라 총 408억원(50% 선납) 규모의 로얄티가 선지급됐는데, 매년 13억6100만원이 회계상 비용으로 반영했다. 로열티 계약 조기 종료에 따라 남은 선급금은 272억원은 롯데네슬레가 돌려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업계는 전망했다.
한편, 롯데네슬레는 네슬레 본사에 2014년부터 2023년까지 455억원의 기술도입료를 별도로 지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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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직원 거취도 해결할 과제다. 네슬레와 롯데는 임직원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필요한 지원 조치를 진행할 계획이다. 아직 별다른 지침이 없어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롯데네슬레 관계자는 "영업을 종료한다는 발표를 들은 후 아무런 공지가 없다"면서 "미리 전달된 내용도 없어 직원들은 더 불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롯데네슬레 청주공장 근무자가 230여명, 본사가 70여명이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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